[한승민의 삶과 마음 설명서]
요즘 사람들이 모이면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그때 살걸.” “그때 팔걸.” “괜히 샀어.” “조금만 더 기다릴걸.”
지난해 주식 시장이 가파르게 오를 때는 너도나도 들떴다. 그러다 최근 주가가 크게 출렁이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크게 번 사람도, 뒤늦게 뛰어들어 물린 사람도, 지금 쥔 것을 팔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도, 하나같이 마음이 편치 않다. 이상한 일이다. 돈을 번 사람도, 잃은 사람도, 어쩐지 똑같이 불행해 보인다.
돈을 벌어도, 잃어도 불행한 이유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실 돈을 얼마 벌고 잃었는가가 아니다. 그보다 더 깊고 끈질긴 것은 ‘후회’다. 샀다가 떨어지면 “괜히 샀다”고 후회하고, 사지 않았는데 오르면 “그때 살걸” 하고 후회한다. 팔았는데 더 오르면 “팔지 말걸”, 안 팔았는데 떨어지면 “그때 팔걸.” 어느 쪽을 선택하든, 값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든, 후회는 반드시 찾아온다.
후회란 무엇인가. 그것은 눈앞의 현실을,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더 나은 다른 선택’과 끊임없이 견주는 마음이다. 문제는 가장 쌀 때 사서 가장 비쌀 때 파는 ‘완벽한 선택’이 언제나 일이 다 끝난 뒤에야 선명해진다는 데 있다. 그 순간에는 누구도 알 수 없었던 것을, 우리는 나중에 알게 된 정답과 비교하며 자신을 탓한다. 처음부터 붙잡을 수 없었던 환상과 자신을 견주는 셈이다.
‘조금만 더’, 그 마음의 끝
이 후회의 밑바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자리엔 대개 ‘조금만 더’라는 마음이 웅크리고 있다. 조금만 더 벌 수 있었는데,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는 한 농부가 나온다. 해 질 녘까지 걸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면 그가 밟은 땅을 모두 주겠다는 제안에, 농부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끝없이 걸어나간다. 욕심에 너무 멀리 가버린 그는 해가 지기 전에 닿으려 사력을 다해 뛰다가, 출발점에 도착하는 바로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다. 그가 가진 땅은, 그를 묻을 두 평 남짓의 무덤이 전부였다.
‘조금만 더’라는 마음이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이 이야기는 서늘하게 보여준다. 더 가지려는 마음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다만 그 마음에 끝이 없을 때, 우리는 이미 손에 쥔 것의 가치도, 그것이 주는 안도감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달리기만 한다.
흔들리는 것은 밖이 아니라 마음
주식 시장은 늘 오르고 내렸다. 어제도, 십 년 전에도, 백 년 전에도 그랬다. 오르고 내리는 그 움직임은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바깥에서 오르내리는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를 따라 쉴 새 없이 출렁이는 내 마음이다. 같은 소식을 들어도 사람마다 반응은 전혀 다르다. 값이 크게 떨어진 날, 어떤 사람은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다’하며 담담히 저녁을 먹고, 어떤 사람은 한숨도 못 잔 채 밤새 화면만 들여다본다. 두 사람이 마주한 숫자는 똑같다. 다른 것은 그 숫자를 바라보는 마음의 자리뿐이다.
우리는 흔히 얼마를 가졌느냐가 행복을 정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같은 돈을 손에 쥐고도 누구는 불안에 떨고, 누구는 평온하다. 결국 행복을 가르는 것은 가진 것의 크기가 아니라,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다. 숫자는 바깥에 있지만, 행복은 언제나 안에서 결정된다.
지난해 주식 시장이 가파르게 오를 때는 너도나도 들떴다. 그러다 최근 주가가 크게 출렁이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크게 번 사람도, 뒤늦게 뛰어들어 물린 사람도, 지금 쥔 것을 팔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도, 하나같이 마음이 편치 않다. 이상한 일이다. 돈을 번 사람도, 잃은 사람도, 어쩐지 똑같이 불행해 보인다.
돈을 벌어도, 잃어도 불행한 이유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실 돈을 얼마 벌고 잃었는가가 아니다. 그보다 더 깊고 끈질긴 것은 ‘후회’다. 샀다가 떨어지면 “괜히 샀다”고 후회하고, 사지 않았는데 오르면 “그때 살걸” 하고 후회한다. 팔았는데 더 오르면 “팔지 말걸”, 안 팔았는데 떨어지면 “그때 팔걸.” 어느 쪽을 선택하든, 값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든, 후회는 반드시 찾아온다.
후회란 무엇인가. 그것은 눈앞의 현실을,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더 나은 다른 선택’과 끊임없이 견주는 마음이다. 문제는 가장 쌀 때 사서 가장 비쌀 때 파는 ‘완벽한 선택’이 언제나 일이 다 끝난 뒤에야 선명해진다는 데 있다. 그 순간에는 누구도 알 수 없었던 것을, 우리는 나중에 알게 된 정답과 비교하며 자신을 탓한다. 처음부터 붙잡을 수 없었던 환상과 자신을 견주는 셈이다.
‘조금만 더’, 그 마음의 끝
이 후회의 밑바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자리엔 대개 ‘조금만 더’라는 마음이 웅크리고 있다. 조금만 더 벌 수 있었는데,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는 한 농부가 나온다. 해 질 녘까지 걸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면 그가 밟은 땅을 모두 주겠다는 제안에, 농부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끝없이 걸어나간다. 욕심에 너무 멀리 가버린 그는 해가 지기 전에 닿으려 사력을 다해 뛰다가, 출발점에 도착하는 바로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다. 그가 가진 땅은, 그를 묻을 두 평 남짓의 무덤이 전부였다.
‘조금만 더’라는 마음이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이 이야기는 서늘하게 보여준다. 더 가지려는 마음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다만 그 마음에 끝이 없을 때, 우리는 이미 손에 쥔 것의 가치도, 그것이 주는 안도감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달리기만 한다.
흔들리는 것은 밖이 아니라 마음
주식 시장은 늘 오르고 내렸다. 어제도, 십 년 전에도, 백 년 전에도 그랬다. 오르고 내리는 그 움직임은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바깥에서 오르내리는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를 따라 쉴 새 없이 출렁이는 내 마음이다. 같은 소식을 들어도 사람마다 반응은 전혀 다르다. 값이 크게 떨어진 날, 어떤 사람은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다’하며 담담히 저녁을 먹고, 어떤 사람은 한숨도 못 잔 채 밤새 화면만 들여다본다. 두 사람이 마주한 숫자는 똑같다. 다른 것은 그 숫자를 바라보는 마음의 자리뿐이다.
우리는 흔히 얼마를 가졌느냐가 행복을 정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같은 돈을 손에 쥐고도 누구는 불안에 떨고, 누구는 평온하다. 결국 행복을 가르는 것은 가진 것의 크기가 아니라,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다. 숫자는 바깥에 있지만, 행복은 언제나 안에서 결정된다.
오늘 하루, 숫자를 잠시 내려놓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을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매어두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내일 값이 오를지 내릴지는 내가 어찌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 내가 무엇에 마음을 둘지는 오롯이 내가 정할 수 있다.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오르내리는 숫자를 확인하는 시간을 하루에 몇 번으로 정해두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그 숫자에 끌려다니는 일이 크게 줄어든다. 시시각각 들여다볼수록 마음은 그만큼 더 자주 출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워낸 시간에, 가까운 사람과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거나 한동안 미뤄둔 산책을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 손에 쥔 것이 늘었든 줄었든, 그 한 끼의 온기와 저녁 공기의 산뜻함만큼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렇게 마음을 바깥에서 안으로 돌려놓고 나면, 어제까지 그토록 크게 보이던 그 숫자가 조금은 작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바깥이 아무리 출렁여도 함께 흔들리지 않는 자리가 하나쯤은 필요하다. 그 자리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오늘 저녁 식탁에 마주 앉은 가족의 얼굴일 수도 있고, 아침마다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일 수도 있고, ‘나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자신에게 건네는 한마디일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은 가진 돈이 반으로 줄어도 그대로 남아 있고, 두 배로 불어나도 더 좋아지지 않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우리를 붙잡아주는 닻이 되어준다.
당신의 행복은, 지금 어디에 닻을 내리고 있는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을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매어두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내일 값이 오를지 내릴지는 내가 어찌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 내가 무엇에 마음을 둘지는 오롯이 내가 정할 수 있다.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오르내리는 숫자를 확인하는 시간을 하루에 몇 번으로 정해두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그 숫자에 끌려다니는 일이 크게 줄어든다. 시시각각 들여다볼수록 마음은 그만큼 더 자주 출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워낸 시간에, 가까운 사람과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거나 한동안 미뤄둔 산책을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 손에 쥔 것이 늘었든 줄었든, 그 한 끼의 온기와 저녁 공기의 산뜻함만큼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렇게 마음을 바깥에서 안으로 돌려놓고 나면, 어제까지 그토록 크게 보이던 그 숫자가 조금은 작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바깥이 아무리 출렁여도 함께 흔들리지 않는 자리가 하나쯤은 필요하다. 그 자리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오늘 저녁 식탁에 마주 앉은 가족의 얼굴일 수도 있고, 아침마다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일 수도 있고, ‘나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자신에게 건네는 한마디일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은 가진 돈이 반으로 줄어도 그대로 남아 있고, 두 배로 불어나도 더 좋아지지 않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우리를 붙잡아주는 닻이 되어준다.
당신의 행복은, 지금 어디에 닻을 내리고 있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