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품질 좌우하는데… ‘4대 보험’ 못 받고 처우 열악

이미지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는 신약 개발 등 의학 연구 활성화를 위해 연구중심병원을 지정하고 연구·개발비를 지원해오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일하는 연구원들의 처우는 열악하다. 대부분이 비정규직인데다가,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연구원 고용 불안정 문제, 5년 전에도 지적
대학병원 연구원의 처우 문제는 2021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불거진 적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윤영덕 의원이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서울대병원에 상근비직원이라는 이름으로 4대 보험 없이 최대 8년까지 일하는 연구원이 있다고 지적하면서다. 상근비직원은 병원이나 산학협력단에 근로자로 고용되지 않고 ‘프리랜서’ 같은 개인 자격으로 근무하는 형태를 말한다. 당시 국립대병원협회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국립대병원의 상근비직원은 총 2990명이었다. 서울대병원이 2047명을 차지해 가장 많았으며, 경북대병원(184명), 전남대병원(270명), 전북대병원(173명)이 그 뒤를 이었다. 윤영덕 의원은 “상근비직원으로 일하는 연구원은 4대 보험이 안 되는 것은 물론 경력확인서 발급이 불가능해 연구 기간과 관계없이 이력서에 경력 한 줄 기재할 수 없다”며 “퇴직금도 당연히 없다”고 했다.

국정감사에 참여했던 김연수 전 서울대병원장은 이를 두고 국립대병원에 산학협력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법적으로 산학협력단 설립은 대학교에만 허용돼 있었다. 사립대병원은 사립대학교와 학교법인이 같아, 연구과제 수행 시 대학교 산학협력단을 통해 연구원과 계약을 맺을 수 있다. 그러나 국립대병원은 국립대와 별도법인이라, 대학과 병원에 동시에 소속된 것이 아니라 병원에만 소속된 교수가 연구원을 채용할 시 대학교 산학협력단을 통한 채용이 불가능했다. 이 경우 교수의 개인 연구원 자격으로 채용이 진행됐다. 이에 김연수 병원장은 “국립대병원에서도 산학협력단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해결책을 제시했었다.

◇제도 개선됐으나 채용 공고 품질은 제자리
약 5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제도에는 발전이 있었다. 2024년 보건의료기술진흥법 시행령이 개정되며 연구중심병원으로 인증받은 의료기관이 대학의 ‘산학협력단’에 준하는 의료기술협력단을 자체적으로 설립할 수 있게 됐다. 개정 당시 보건복지부 정은영 보건산업정책국장은 “이번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의료기술협력단이 설치되면, 특허·기술이전 등 연구개발(R&D) 성과를 직접 관리하고, 연구자들의 안정적 고용을 통해 지속 성장 가능한 연구중심병원의 기반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2025년 4월부터 2028년 3월까지 가천대길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경북대병원, 경희대병원, 계명대동산병원, 고려대구로병원, 고려대안산병원, 고려대안암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분당차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세브란스병원, 아주대병원, 양산부산대병원, 이대목동병원, 인하대병원, 전남대병원, 한림대춘천성심병원 등 21개 병원이 연구중심병원의 지위를 유지한다.

실제 채용 조건도 개선됐을까. 대학병원마다 연구원 채용 공고가 올라오는 창구가 다르고, 병원 공식 채용사이트에 올라오지 않는 공고도 많아 ▲사람인 ▲네이버 카페 ‘신약 개발 임상 연구원 모임’과 ▲네이버 카페 ‘임상 커리어 전환 연구소’에 올라온 공고를 참고했다. 2026년 5월 중 모집을 시작한 공고를 살피고, 기사에는 채용 시 소속과 4대 보험 가입 여부가 명확히 기재된 공고만을 예시로서 일부 기재했다.


국립대병원이든 사립대병원이든 대학병원 연구원 공고는 정규직이 하나도 확인되지 않았으며, 모두 계약직 또는 위촉직·프리랜서 공고였다. 동시에 병원 연구원 공고 대부분이 임상연구코디네이터(CRC) 모집이었다. CRC는 임상시험 참여자를 모집하고, 연구 일정에 따라 검사 투약이 이뤄지도록 관리하며, 이상 반응 등 연구 데이터를 기록하는 직무다. 흔히 ‘연구 간호사’라고 불리는데, 이 직군에 간호사가 많다.

여전히 4대 보험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국립대병원뿐 아니라 사립대병원도 그랬다. 병원 산학협력단 소속 계약직으로 채용되는 경우 4대보험을 적용하지만, 교수 개인 소속 계약직이나 위촉직·프리랜서로 채용하는 경우 4대 보험을 적용하지 않는 식이었다.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CRC,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CRC, 서울시보라매병원 재활의학과 박사급 연구원 모집 공고 모두 교수 개인 소속 연구원으로 4대 보험 지원이 불가능하다고 알렸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CRC 공고 또한 교수 개인에게 고용되는 1년 계약직으로 서울대병원 채용과 무관하며, 4대 보험 미해당이라고 밝히고 있었다. 4대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실직을 하더라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고, 업무상 재해나 업무상 질병 등이 발생한 경우 산재보험을 통한 요양급여와 휴업급여 등을 지급받을 수 없으며, 건강보험 자부담금이 상승하고, 노년기 국민연금 수령액이 적어질 수 있다. 4대 보험 가입자에 비하면 은행 대출도 까다로운 편이다.

반면 고려대구로병원 영상의학과 CRC 채용 공고는 6개월 계약직으로, 고려대의료원 산학협력단 소속으로서 4대 보험이 적용된다고 안내 중이었다.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연구소 CRC 채용 공고는 12개월 계약직으로, 연세대의료원 산학협력단 소속으로서 4대 보험이 적용된다고 공지했다.

◇“우수 연구 인력 유출… 연구 품질도 떨어져”
이러한 근무 환경이 연구 현장과 연구원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떠할까. 네이버 카페 ‘신약 개발 임상 연구원 모임’과 ‘임상 커리어 전환 연구소’를 통해 실제 병원 연구원들에게 물어봤다. 업무 경력이나 기관 특성만으로도 개인이 특정될 수 있다는 취재원 의견에 따라 상세 경력과 이름은 모두 익명 처리했다. 단기간의 계약 위주인데다가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근무 조건이 연구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양질의 연구 인력을 병원 밖으로 유출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대학병원 비정규직 CRC 근무 경험이 있는 A씨는 “많은 CRC가 고용 불안 때문에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2년 단위로 이직한다”며 “여성 CRC의 경우 ‘육아휴직이 가능한 직장으로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흔히들 하며, 결혼·출산 시기 즈음에 안정적인 고용 형태를 찾아 병원 밖 회사나 임상시험수탁기관으로 이동하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역시 대학병원 비정규직 CRC 근무 경험이 있는 B씨는 “초과 근무를 하는 날도 흔했고, 휴가 신청을 반려당한 적이 있었다”며 “연구소마다 휴가 결재 시스템이 다르기는 하나 휴가 신청을 반려당하는 일은 업계에서 흔하다”고 했다.

연구 품질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병원 연구원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A씨는 “CRC의 업무는 단순 행정 사무가 아니라 질환과 치료 흐름, 대상자 상태, 프로토콜 특성을 장기간 이해하고 축적해야 하는데다가 하나의 약물이 시판되기까지 임상시험이 단계별로 수년 동안 이어지기도 한다”며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담당 연구원이 계속 바뀌며 충분한 인수인계 없이 퇴사하는 경우도 흔하고, 체계적인 교육 없이 업무를 인계받는 경우도 많으며, 연구원들 간 업무 숙련도 차이도 크다”고 했다. 이어 A씨는 “임상연구 인력은 단순 보조 인력이 아니라 실제 연구 현장을 유지하는 핵심 실무자이므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야 한다”고 했다.


이해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