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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에서 암 치료를 목적으로 구충제를 처방받으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사진= 유튜브 채널 ‘PowerfulJRE’​, 클립아트코리아
최근 미국에서 암 치료를 목적으로 구충제를 처방받으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지난 2025년 1월 유튜브 채널 ‘PowerfulJRE’에 올라온 한 팟캐스트 영상에는 할리우드 배우 멜 깁슨이 출연했다. 이 영상에서 멜 깁슨은 “나에겐 암 4기인 친구 3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지금 암이 없다”고 말했다. 진행자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자 “이버멕틴과 펜벤다졸을 먹었다”고 답했다. 이버멕틴과 펜벤다졸은 구충제 성분인데, 이 약을 먹고 암이 나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해당 영상은 약 1330만 조회수를 넘었다.

멜 깁슨의 주장으로 인해 실제로 미국에서 구충제 성분이 암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처방받아 복용하는 사례가 급속도로 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대학(UCLA) 연구팀은 지난 12일 이버멕틴과 펜벤다졸 처방 증가세를 관찰한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멜 깁슨의 발언이 있던 2025년 1월부터 7월 사이, 2024년 동일 기간의 18~90세 환자들의 이버멕틴·펜벤다졸 처방 횟수와 증가세 등을 비교해 분석했다. 그 결과, 두 약품의 처방은 2024년에 비해 2025년에 두 배로 증가했다. 특히 암 환자는 구충제 성분을 처방받은 비율이 1년 전에 비해 2.5배 높았다. 연구 저자이자 UCLA 게픈 약학대 부교수 존 마피 박사는 “하나의 팟캐스트 이후 검증되지 않은 말로 인해, 환자들이 효과가 있고 검증된 치료를 미루거나 포기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버멕틴은 기생충을 죽이는 구충제다. 모낭충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을 활용해 국내에서는 안면 홍조를 유발하는 염증성 주사(얼굴에 홍반·고름·홍조 등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만성 피부 질환)를 치료하는 외용제로 허가돼 사용되고 있다. 개 등 동물의 심장사상충 예방이나 기생충 제거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펜벤다졸은 동물의 장내 기생충 치료에 주로 쓰이는 벤즈이미다졸 계열 구충제다. 장내 기생충이 당을 흡수하는 것을 막아 죽이는 원리로 작용한다.

멜 깁슨의 주장 전에도 과거 미국의 한 소세포폐암 말기 환자가 펜벤다졸을 복용하고 암이 사라졌다는 후기를 남겨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포나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펜벤다졸의 암세포 증식 억제 효과가 일부 증명된 바 있지만, 사람 대상 효과는 검증된 바가 없어 임의로 처방받아 복용하면 안 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대한암학회는 펜벤다졸이 항암제로서 효과가 있다는 일부 주장은 증명되지 않았으며, 항암 효과를 내기 위해 고용량으로 장기간 투여하게 되면 혈액·신경·간에 심각한 손상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영경 기자 | 이윤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