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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갈등, 거절, 트라우마 상황에서 생존 모드에 돌입한다는 분석이 나왔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말싸움이 끝난 뒤에야 할 말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분명 하고 싶은 말은 있었는데 막상 언쟁이 시작되면 머리가 하얘지고 말문이 막힌다. 왜 그런 걸까?

정답은 우리 뇌에 있다. 아일랜드 왕립 의대 임상 심리학자 트루디 미한 박사는 ‘더 컨버세이션’에 “갈등, 거절, 트라우마 경험이 반복되면 뇌가 대인 마찰 자체를 위험 신호로 인식해 순간적으로 생존 모드에 들어간다”며 “이 과정에서 사고와 언어 기능이 일시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전문 용어로 ‘감정적 홍수’ 또는 ‘확산된 생리적 각성’이라 일컫는데 이 상태에 빠지면 심장이 빠르게 뛰고 얼굴이 달아오르거나 손이 떨리는 등 몸이 위협 상황에 반응하듯 변한다.

미국 노스이스턴대 심리학자 리사 펠드먼 바렛 교수는 “뇌는 어두운 상자(두개골) 안에 갇혀 감각 신호만으로 세상을 예측하는 기관이다”라며 “현재 벌어진 상황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 경험까지 끌어와 의미를 해석하기 때문에 과거에 반복적인 갈등이나 거절, 정서적 상처를 경험한 사람일수록 사소한 표정 변화나 말투도 위험 신호로 받아들이기 쉽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상태가 되면 사고 방식이 빠르게 우리보다 나를 중심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공감 능력은 떨어지고 관계를 유지하기보다 자신을 방어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감정적 폭주를 막기 위해서는 몸의 신호를 빨리 알아차리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얼굴이 뜨거워지거나 맥박이 빨라지는 등 초기 반응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적 반응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상대의 말에 즉각 반응하기보다 다른 의도가 있을 수도 있다고 해석 범위를 넓혀보는 인지 재평가도 도움이 된다.

감정이 이미 격해졌다면 잠시 자리를 벗어나는 것도 방법이다. 최소 20분 정도 몸이 안정될 시간을 가져야 신경계가 평소 상태로 돌아온다. 다만 말싸움 자리를 피할 때 문을 쾅 닫고 나가는 등 감정을 드러내는 식이 아니라 잠깐 진정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미리 정해둬야 관계 회복에 더 도움이 된다.


최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