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이정표]
누구나 마음의 병을 겪을 수 있지만 쉽게 털어놓기 힘들고 때론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어려움을 겪는다. 헬스조선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강준 교수의 칼럼을 연재해 ‘읽으면서 치유되는 마음의 의학’을 독자와 나누려 한다. 정신건강 문제를 풀어내고 치유와 회복의 길을 제시한다.(편집자주)
“선생님, 요즘은 휴대폰으로도 치료를 한다던데…. 그게 진짜 효과가 있나요?”
정신과 치료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시작된다. 표정, 침묵, 말투의 미묘한 변화 속에서 치료의 실마리가 풀리는 경우가 많다. ‘앱으로 치료한다’는 말을 처음 들을 때 낯섦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약 대신 앱을 처방하는 날이 왔다. ‘약도 아닌데 치료가 된다고?’ 그렇다. 이제 디지털 치료제는 단순한 건강 관리 앱이 아니다.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 임상시험을 거쳐 치료 효과가 입증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다. 약물보다 부작용이 적고 언제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으며 환자 데이터를 모니터링해 맞춤형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치매 환자에게 처방되는 디지털 치료제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앱 기반 인지훈련 프로그램은 겉보기에는 단순한 게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억력, 주의력, 실행 기능을 체계적으로 자극해 호전시키는 치료 도구다. 약이 뇌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면 디지털 치료제는 반복적인 과제를 통해 뇌를 계속 사용하게 만든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특히 환자 측면에서는 매일 일정한 과제를 수행하면서 성취감을 경험한다. 스스로 ‘나는 아직 할 수 있다’는 감각을 유지하게 만든다. 단순한 인지훈련을 넘어서는 치료적 의미를 갖는다. 물론 한계도 있다. 중증 치매에서는 효과가 제한적이고 꾸준히 사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줄어든다. 그러나 약물치료를 보완하는 또 하나의 축으로서, 그 가치가 점점 커지고 있다.
불면증 환자에게는 수면 습관을 교정하는 프로그램이, 불안증 환자에게는 점진적으로 공포를 줄여가는 훈련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일종의 ‘주머니 속 치료제’로 보면 될 것 같다. 이렇게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디지털 치료제가 빠르게 자리 잡은 이유는 정신과 치료의 핵심이 ‘생각과 행동 그리고 인지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변화는 반복훈련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디지털 치료제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최근에 인공지능(AI)이 결합되면서 더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는 정해진 프로그램을 반복하는 수준을 넘어 환자 반응 속도와 수행 패턴, 감정 기록을 분석해 난이도를 조절하고 치료 과정을 개인별로 맞추기 시작했다. 같은 진단을 받은 환자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 더 빠르게 어떤 사람에게는 더 천천히 진행한다. 과거에는 의사가 진료실에서 제한된 시간 안에 판단해야 했던 부분을 이제는 AI가 일상 속에서 꾸준히 모니터링하며 수행하는 셈이다. 치료가 ‘표준화된 처방’에서 ‘개인화’의 과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개인화된 치료가 가능해지면서 동시에 또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했다. 바로 ‘지속성’이다. 정신과 치료에서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가 지속성이었다. 환자는 병원에 자주 와야 일주일에 한 번, 보통은 한 달에 한 번 오게 된다. 나머지 시간은 혼자 버텨야 해서 치료의 흐름이 끊어지기 쉽다. 그런데 디지털 치료제의 개발로 이젠 하루에도 몇 번씩 환자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는 의사보다 더 꾸준한 치료자일지도 모른다.
장점이 분명하지만 디지털 치료제 확산과 더불어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모든 앱이 치료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디지털 치료제는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된 의료기기이지 과학적 근거 없이 사용되는 게임이 아니다. 치료는 재미로 대체될 수 없으며 검증되지 않은 프로그램에 의존하는 것은 오히려 치료시기를 놓칠 수 있다.
다음 질문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러면 앞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필요 없어지는 건가요?”
전혀 그렇지 않다. 디지털 치료제는 치료에 도움은 되지만 치료의 본질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절망 속에서 꺼내는 한 마디, 그 말의 고통을 함께 버텨주는 과정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변화는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다만 역할은 바뀔 것이다. 의사는 더 이상 정보를 주는 사람이 아니라 치료의 전반적인 방향을 설계하는 지휘자가 될 것이다.
디지털 치료제는 그 설계를 일상 속에서 실행해 주는 도구가 된다. 특히 의지가 약한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자꾸 미루는 사람, 병원에 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 혼자 있으면 쉽게 무너지는 사람에게 디지털 치료제는 꾸준한 치료제의 역할을 해 줄 것이다. 다만, 디지털 치료제가 모든 환자에게 만능은 아니며 기술이 치료를 대체할 수 있다는 환상은 경계해야 한다.
정신과 치료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시작된다. 표정, 침묵, 말투의 미묘한 변화 속에서 치료의 실마리가 풀리는 경우가 많다. ‘앱으로 치료한다’는 말을 처음 들을 때 낯섦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약 대신 앱을 처방하는 날이 왔다. ‘약도 아닌데 치료가 된다고?’ 그렇다. 이제 디지털 치료제는 단순한 건강 관리 앱이 아니다.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 임상시험을 거쳐 치료 효과가 입증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다. 약물보다 부작용이 적고 언제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으며 환자 데이터를 모니터링해 맞춤형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치매 환자에게 처방되는 디지털 치료제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앱 기반 인지훈련 프로그램은 겉보기에는 단순한 게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억력, 주의력, 실행 기능을 체계적으로 자극해 호전시키는 치료 도구다. 약이 뇌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면 디지털 치료제는 반복적인 과제를 통해 뇌를 계속 사용하게 만든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특히 환자 측면에서는 매일 일정한 과제를 수행하면서 성취감을 경험한다. 스스로 ‘나는 아직 할 수 있다’는 감각을 유지하게 만든다. 단순한 인지훈련을 넘어서는 치료적 의미를 갖는다. 물론 한계도 있다. 중증 치매에서는 효과가 제한적이고 꾸준히 사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줄어든다. 그러나 약물치료를 보완하는 또 하나의 축으로서, 그 가치가 점점 커지고 있다.
불면증 환자에게는 수면 습관을 교정하는 프로그램이, 불안증 환자에게는 점진적으로 공포를 줄여가는 훈련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일종의 ‘주머니 속 치료제’로 보면 될 것 같다. 이렇게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디지털 치료제가 빠르게 자리 잡은 이유는 정신과 치료의 핵심이 ‘생각과 행동 그리고 인지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변화는 반복훈련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디지털 치료제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최근에 인공지능(AI)이 결합되면서 더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는 정해진 프로그램을 반복하는 수준을 넘어 환자 반응 속도와 수행 패턴, 감정 기록을 분석해 난이도를 조절하고 치료 과정을 개인별로 맞추기 시작했다. 같은 진단을 받은 환자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 더 빠르게 어떤 사람에게는 더 천천히 진행한다. 과거에는 의사가 진료실에서 제한된 시간 안에 판단해야 했던 부분을 이제는 AI가 일상 속에서 꾸준히 모니터링하며 수행하는 셈이다. 치료가 ‘표준화된 처방’에서 ‘개인화’의 과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개인화된 치료가 가능해지면서 동시에 또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했다. 바로 ‘지속성’이다. 정신과 치료에서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가 지속성이었다. 환자는 병원에 자주 와야 일주일에 한 번, 보통은 한 달에 한 번 오게 된다. 나머지 시간은 혼자 버텨야 해서 치료의 흐름이 끊어지기 쉽다. 그런데 디지털 치료제의 개발로 이젠 하루에도 몇 번씩 환자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는 의사보다 더 꾸준한 치료자일지도 모른다.
장점이 분명하지만 디지털 치료제 확산과 더불어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모든 앱이 치료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디지털 치료제는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된 의료기기이지 과학적 근거 없이 사용되는 게임이 아니다. 치료는 재미로 대체될 수 없으며 검증되지 않은 프로그램에 의존하는 것은 오히려 치료시기를 놓칠 수 있다.
다음 질문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러면 앞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필요 없어지는 건가요?”
전혀 그렇지 않다. 디지털 치료제는 치료에 도움은 되지만 치료의 본질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절망 속에서 꺼내는 한 마디, 그 말의 고통을 함께 버텨주는 과정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변화는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다만 역할은 바뀔 것이다. 의사는 더 이상 정보를 주는 사람이 아니라 치료의 전반적인 방향을 설계하는 지휘자가 될 것이다.
디지털 치료제는 그 설계를 일상 속에서 실행해 주는 도구가 된다. 특히 의지가 약한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자꾸 미루는 사람, 병원에 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 혼자 있으면 쉽게 무너지는 사람에게 디지털 치료제는 꾸준한 치료제의 역할을 해 줄 것이다. 다만, 디지털 치료제가 모든 환자에게 만능은 아니며 기술이 치료를 대체할 수 있다는 환상은 경계해야 한다.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오늘은 어제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까요?”
누군가 매일,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질문한다면 그 자체가 이미 치료 과정인 셈이다. 디지털 치료제는 정신과 치료를 병원 밖으로 확장시켜 일상에서 지속되도록 돕는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반복과 변화의 힘이다. 치료는 더 이상 특정한 공간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앞으로 치료는 더 이상 같은 처방이 아니라 각자에게 맞춰진 알고리즘이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