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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악몽에 대한 인지다. 아이가 악몽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고 믿는 순간 뇌는 침실 자체를 위험 신호로 받아들인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아이를 단순히 예민한 성격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만성 악몽은 수면의 질을 떨어뜨려 성장기 정서 및 인지 발달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성인기 정신 질환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소아청소년기 악몽을 뇌의 학습 기전으로 접근해 치료하는 모델이 제시돼 주목받고 있다.

미국 털사대 리사 드마니 크로머 교수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프론티어스 인 슬립(Frontiers in Sleep)’에 소아청소년 맞춤형 악몽 유지 모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아동의 악몽이 만성화되는 이유를 일곱 가지 요소로 분석했다. 이들 요소는 ▲생생하고 반복적인 꿈 내용 ▲악몽을 위험으로 인식하는 태도 ▲감정 조절 능력 부족 ▲침대를 무서운 곳으로 기억하는 뇌 ▲꿈을 이길 수 없다는 무력감 ▲불규칙한 수면 습관 ▲낮은 수면의 질 등이다.

특히 핵심은 악몽에 대한 인지다. 아이가 악몽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고 믿는 순간 뇌는 침실 자체를 위험 신호로 받아들인다. 이로 인해 잠자리에 드는 것을 피하거나 억지로 깨어 있으려 하고 수면 부족이 다시 강렬한 악몽을 유발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 ‘꿈 시나리오 바꾸기’부터 ‘걱정 상자’까지… 4단계로 해결
연구팀은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아이들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4단계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는 꿈 시나리오 재구성이다. 아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꿈 내용을 현재 상황처럼 생생하게 말하게 한 뒤 결말을 아이가 원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직접 고치게 하는 방법이다. 단순히 꿈을 잊으려 애쓰는 게 아니라 뇌에 새로운 시나리오를 입력해 꿈을 바꾸는 과정이다.


둘째는 긴장 풀기다. 낮 동안 쌓인 심리적 압박을 몸의 근육을 움직여 풀어냄으로써 수면 중 뇌에 가해지는 과부하를 줄이는 단계다. 연구팀은 아이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양손에 신 레몬이 있다고 상상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가 툭 펴기’, 강아지가 배 위에 올라온 것처럼 ‘배에 힘을 줬다가 풀기’ 등의 동작을 권장했다.

셋째는 침대와 친해지기다. 침대를 공포의 장소가 아닌 안전한 곳으로 인식하도록 시각적 도구를 활용하는 단계다. 실제 사례인 15세 소년은 산과 나무, 좋아하는 고양이를 직접 그려 넣은 베갯잇을 제작해 사용했다. 잠들기 전 본인이 그린 평온한 이미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뇌의 공포 회로가 활성화되는 것을 억제할 수 있다.

마지막은 걱정 상자 활용이다. 잠들기 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불안한 생각들을 종이에 적어 상자에 가두는 일종의 의식이다. 이를 통해 낮의 스트레스가 밤의 수면 환경으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물리적으로 격리하는 훈련을 한다.

실제로 7년간 매주 수차례 악몽을 꾸며 자살 생각까지 했던 소아 환자에게 이 모델을 적용한 결과, 6주 만에 악몽 발생 횟수가 0회로 줄어드는 극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연구팀은 “아동 악몽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악몽의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니라 관리자가 될 수 있다는 경험을 주는 것”이라며 “결말을 바꾼 꿈 내용을 매일 밤 읽고 베갯잇 그림 같은 시각 도구를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약물 없이 만성 악몽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교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