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조선 비타투어의 일본_느릿느릿 걷고 온천하며 즐기는 후지산 여행기

최고의 일본 여행지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좀 망설일 것 같다. 헬스조선 비타투어 관련해서, 또 개인적으로도 참 많이 다녔다. 일본 구석구석, 정말 웬만한 곳은 거의 다 다녀봤는데 얼마 전까진 망설임 없이 겨울철 도호쿠 설국여행이 부동의 1위였다. 그러나 25년 가을 후지산 둘레길 산책 여행을 다녀온 뒤 1등 꼽기가 주저주저해진다. 그만큼 가을 후지산 여행은 완벽했다.

◇신칸센 차창에서 처음 만난 후지산
후지산을 처음 본 것은 25년 초 도쿄에서 하코네로 가는 신칸센 열차의 차창을 통해서였다.  반쯤 졸린 눈에 벼락같이 후지산이 등장했다. 6~7부 능선쯤부터 신비한 빛의 눈으로 뒤덮인, 완벽한 대칭의 후지산이 산 허리춤에 수평의 흰 구름 스카프를 두른 상태였다. 




이미지
신칸센 차창에서 본 후지산 전경. 출처: 비타투어 제공
근처에 후지산이 있을 것이라고 전혀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나타난 그것은 충격이었다. "아! 후지산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후지산 모양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설악산도 지리산도, 에베레스트나 킬리만자로도, 아니 세상의 어떤 산도 산 전체의 모습을 그릴 수 없다. 후지산만 예외다. 동서남북 어디에서나 완벽한 대칭이어서 완만한 삼각형 산을 그리면 된다.

◇사진 포인트 아닌, 온전히 즐기는 후지산 여행을 찾아서
그러고 보니 후지산 여행상품을 많이 못 본 것 같다. 동행한 현지 여행사(랜드) 사장에게 물어보니 도쿄와 너무 가까워 대부분 당일치기로 다녀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후지산 전경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포인트에 가서 사진을 찍고 돌아가는 것이 대부분이고, 기껏해야 후지산 5합목 휴게소에 다녀온다고 했다. 후지산 사진 명소로 알려진 한 편의점에 한국인 중국인 등이 너무 많이 몰려 지역사회에 문제가 되자, 편의점 옥상에 가림막을 설치했다는 신문 기사도 있었다. 일본인은 그러나 후지산 주변, 특히 5개 호수(후지 5호) 주변에서 후지산을 감상하며 둘레길을 걷거나 온천을 즐기며 휴양한다고 했다. 그렇다. 느긋하게 산책하고 온천하며 후지산을 바라보고 즐기는 이것이 진정한 후지산 여행이다. 비타투어 직원에게 즉시 상품개발에 착수하라고 전화를 했다.

◇나고야 공항 도착, 여행의 시작
25년 10월 27일 나고야 공항에 내렸다. 비타투어 '후지산 둘레길 산책' 상품은 처음 시도하는데도 꽤 성공적이어서 여러 팀이 모객됐다. 나는 인솔자 자격으로, 아내는 손님 자격으로 참가했다. 가까운 시즈오카 공항을 두고 먼 나고야 공항에 내려 불편하긴 했다. 시즈오카로 바로 가려면 제주항공을 타야 하는데 무안공항 참사로 손님들이 싫어하므로 어쩔 수 없었다. 개인이었다면 난 당연히 제주항공을 탔을 텐데... 조금 손해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날이 너무 좋았다. 하늘은 파란 물감 푼 것처럼 선명했고 날은 이른 봄날 같았다. 점심을 먹은 한 호숫가 호텔 레스토랑은 너무 깨끗하고 정갈해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음식도 너무 좋아 손님들 얼굴이 편안해졌다. 인솔자가 한시름 놓는 순간이다. 적당히 지루할 때쯤 내려 구경한 하마마츠 플라워 가든도 한적하게 걷기 좋았고, 시즈오카의 시라이토 폭포는 수묵화 같은 섬세한 아름다움에 한참을 발길을 떼지 못했다.




이미지
후지산 설원에서 흘러내린 물이 만들어낸 시즈오카 시라이토 폭포. 폭 200m에 달하는 절벽에서 수십 줄기 물이 쏟아진다. 출처: 비타투어 제공
해가 일찍 지는지, 깜깜한 후지산 자락을 달려 호텔에 도착, 식사를 하고 뜨끈한 온천에 몸을 담갔다.

◇창문을 열다 마주한 후지산
푹 자고 일어나 창문을 열다 깜짝 놀랐다. 높지 않은 앞 건물 지붕 위로 거대한 후지산이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캔버스에 의도적으로 집과 나무와 전봇대와 구름을 배치한 듯 그렇게 완벽한 배경에서 후지산이 멋지게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서둘러 아내를 깨워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다.

후지산 사진은 정말 질리도록 많이 찍었다. 평소 사진 찍기, 찍히기를 엄청 싫어하는 편인데도 자꾸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아침'이란 뜻의 아시기리(朝霧) 고원의 타누키호수에는 안개 대신 따스한 가을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산 중턱에 걸린 구름의 띠가 사진을 합성한 것처럼 비현실적이었다. 




이미지
아시기리 고원 다누키 호수에서 바라본 후지산. 산 중턱에 걸린 구름의 띠가 사진을 합성한 것처럼 비현실적이다. 출처: 비타투어 제공
캠핑장 넓은 잔디밭에는 이제 막 잠에서 깬 잠꾸러기들이 식사를 준비하거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평화로운 모습처럼 보여 나도 그곳에 텐트 치고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느릿느릿 걸은 두 시간이 20분처럼 느껴졌다. 해발 1200m 아오키가하라 신비의 이끼 숲은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듯, 이름처럼 신비로웠다. 이 길을 계속 따라가면 다음 목적지인 모토스 호수로 이어진다는데 계속 홀린 듯 걷고 싶었다. 후지 5호(湖) 중 가장 서쪽에 있는 모토스 호수는 일본 천 엔 지폐 뒷면에 등장할 정도로 절경인데 높진 않지만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 전망대에서 천 엔과 함께 사진을 한 장 찰칵했다. 




이미지
일본 천 엔 지폐 뒷면의 실제 배경인 모토스 호수 전망대. 지폐 속 후지산과 눈앞의 후지산이 겹쳐진다. 출처: 비타투어 제공
하루 동안 꽤 많이 걸었는데도 손님들 표정이 밝다. 날씨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만약 날이 흐리거나 추웠다면 어땠을까? "여행은 날씨가 반이다"는 말을 절감했다.

◇후지산 5합목과 오츄도, 편백숲 산책
다음 날은 후지산 오츄도(御中道)를 걷는 일정이었다. 후지산 등반의 출발 지점인 해발 2305m 후지산 5합목은 수십 대의 버스로 북적인다. 등산객은 거의 없고 대부분 관광객이다. 꼭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 같다. 각종 먹을거리, 기념품 가게, 사진 찍기 포인트 등으로 북적거렸다. 시끌벅적한 인파를 뒤로하고 일행은 오츄도 걷기에 들어섰다. 재미있는 길이다. 

오츄도 아래쪽은 키 작은 고산 식물이 자라지만 위쪽으로는 풀 한 포기 없는 돌무더기다. 사진에 검게 나오는 후지산 윗부분은 사실 주먹 크기의 용암석 조각들. 절묘하게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경계선을 따라 길을 내 후지산 등산을 조금이라도 경험할 수 있게 오츄도를 만든 것 같다. 오츄도에서 바라보는 후지산 주변 산과 들의 풍광이 장쾌했다. 




이미지
황금빛 단풍으로 물든 후지산 오츄도에서 바라본 장쾌한 풍광이 펼쳐진다. 출처: 비타투어 제공
사람은 산 사진만 찍는데 후지산 주변 마을들도 산 사진만큼 멋있는 것 같다. 오츄도에서 내려와 후지 편백숲을 한 시간 정도 산책했다. 전남 장성이나 제주 편백숲도 대단한데 이곳 편백은 그 키가 2배는 되는 것 같다. 편백나무 끝 선에 걸린 구름과 그 너머 후지산 구도가 너무 완벽해 보여 사진을 찍었는데 내 실력 탓인지, 아니면 자연을 사진에 담겠다는 욕심 자체가 문제인지 사진에선 그 맛이 안 나는 것 같다.




이미지
후지 편백숲 산책 중 마주한 풍경. 은빛 억새밭 너머 하늘 높이 솟은 편백나무들이 후지산을 액자처럼 감싸 안았다. 출처: 비타투어 제공
◇여행의 마지막, 소나무숲과 장어덮밥
마지막 날엔 츠루가만 해안을 따라 조성된 5km의 소나무숲을 느릿느릿 걷고 하마마츠의 명물 장어덮밥을 먹었다. 일본 여행에서 가끔씩 장어덮밥을 먹는데 이곳 장어덮밥이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었다. 세 시간 넘게 버스를 타려니 또 신경이 쓰였다. 비타투어 담당자에게 다음엔 어떻게든 시즈오카 공항을 이용하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것도 쉽지 않았다. 시즈오카 비행편 시간이 너무 일러 새벽 서너 시에 집에서 떠나야 하는데 손님이 싫어한다고 했다. 궁여지책으로 나고야로 들어가되 시즈오카로 이동할 때는 신칸센을 이용함으로써 이동 시간을 1시간 15분으로 단축시켰고, 올 때는 시즈오카에서 바로 비행기를 타게 했다. 이로써 장시간 버스 이동에 대한 불편은 해결됐다.

◇날씨에 따라 다른 묘미, 최고의 일본 여행
이제 날씨만 받쳐주면 된다. 이번 봄과 가을에 떠날 비타투어 손님들 모두가 최고의 날씨에서 후지산 산책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봄 가을철 후지산 주변은 대체로 날씨가 좋다는데 그것은 장담할 수 없는 문제. 날씨와 상관없이, 궂은 날씨의 후지산도 개의치 않는 마음까지 준비해 오신다면 아마도 최고의 일본 여행이 될 것 같다.



임호준 헬스조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