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 우울증 클리닉]
쥐를 수조에 빠뜨리고, 빠져나올 방법을 끝내 마련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처음에는 탈출하려고 발버둥치다가도, 실패가 반복되면 쥐는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시도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에서 기반한 개념이 ‘학습된 무력감’이다. 이것을 제안한 임상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우울증 환자에게도 같은 틀을 적용했다. 사람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채 반복적으로 고난을 겪으면, “내가 노력해봐야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믿음이 굳어진다. 그 믿음은 행동을 갉아먹는다. 움직임이 줄고, 시도가 줄고, 결국 활동을 포기하게 된다. 앞으로 달라질 수 있는 상황 앞에서도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 이미 마음에서는 “결과는 정해져 있다”라고 학습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우울증을 부른다. 스트레스는 우리 뇌의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피질 축을 활성화시키고, 코르티솔 분비를 증가시킨다. 이 반응은 외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신체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에너지와 집중력을 올려주고, 위험이 닥쳐도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신체를 준비시킨다. 짧은 기간 동안 이런 상태가 유지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스트레스에 의한 심신의 반응이 지속적이면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 뇌의 전전두엽은 계획을 세우고, 충동을 조절하고, 감정을 정리하는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이 지휘자가 제대로 활약을 못하게 만든다. 우울증에서 집중이 안 되고, 쉬운 결정도 어려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마 기능이 떨어져 기억력까지 흐려진다. 환자들은 “머리가 뿌옇다, 단어가 잘 안 떠오른다, 책을 읽어도 내용이 남지 않는다”라고 호소하는데, 이것 또한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뇌가 지친 상태에서 나타나는 기능 저하 현상이다.
스트레스가 장기화되면 뇌가 회복하는 속도 자체가 느려진다. 뇌 신경세포의 성장과 회복에 관여하는 신경성장인자(대표적으로 BDNF로 알려진 요소)의 활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상처가 더 빨리 생기는데, 회복은 더디다. 신경전달계의 균형도 흔들린다. 세로토닌 기능이 저하되면 작은 자극에도 과민해지고, 사소한 말에도 깊이 상처받고, 정서 조절이 어려워진다.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이 “별것 아닌 일에도 눈물이 나요. 회의 시간에 갑자기 울음이 터져서 난처했어요.”라고 호소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감정을 조절하던 제동 장치가 닳아버린 것이다.
몸도 함께 변한다. 우울증 환자들은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없는데도 “감기 걸린 것처럼 온몸이 나른하다” “미열이 계속 나는 것 같다” “전신이 쑤신다”고 호소한다. 이런 증상들은 스트레스가 면역체계를 교란시켜서 사이토카인, 인터루킨-6, CRP 같은 염증 반응 물질이 증가하는 것과 관련이 깊다. 우울증이 심할수록 염증 반응도 커지는 경향이 있고, 치료로 우울이 호전되면 염증 지표가 함께 내려가기도 한다. 반대로 염증 반응이 높게 유지되는 경우에는 항우울제 치료 반응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뇌가 회복의 틈을 만들어야 한다. 그 중 핵심이 수면이다. 수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코르티솔 리듬을 재정렬하고, 면역 반응을 가라앉히고, 전전두엽의 제동 장치를 복구하는 과정이다. 가벼운 유산소 운동과 햇빛 노출은 생체 리듬을 세우고, 염증 반응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스트레스가 우울증을 유발한다는 말은 너무 익숙하지만, 진료실에서는 정반대의 장면도 자주 만난다. “한참 스트레스 받을 때는 괜찮았는데, 이제 다 편해졌는데 나는 왜 이렇게 무기력한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환자를 종종 본다.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나서, 우울증이 찾아온 것이다. 위기일 때는 우울한지도 모르고 일하다가 안정기에 접어들고 나서 허무함과 무력감이 떨쳐지지 않아 병원을 찾는 사업가도 적지 않다.
얼핏 모순처럼 들린다. 그러나 스트레스는 단지 해로운 자극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구조의 일부이기도 하다. 활기차게 살기 위해서는 적당한 스트레스가 필요하다. 스트레스가 전혀 없으면, 그것 자체가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된다.
결혼 전까지 사회생활을 하던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계기로 일을 그만두고, 집안일만 하며 지내다가 우울해지는 경우가 그렇다. 밖에서 일하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성취와 자극을 얻던 사람일수록 더 쉽게 흔들린다. 여기에 남편의 무관심, 가정 내 갈등이 겹치면 우울은 깊어진다. 이런 상태를 ‘새장 속 새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비슷한 맥락으로 ‘빈 둥지 증후군’이 있다. 아이가 성장해 독립하는 시기에 찾아오는 우울이다. 전업주부로 아이 중심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 특히 취약하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힘들고 스트레스도 크다. 그러나 동시에 삶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추진력이 사라지면 허무가 밀려온다.
남성에게는 은퇴가 가장 위험한 고비가 된다. “은퇴하면 얼마나 편할까”를 꿈꾸던 직장인이 정말 은퇴를 하고 나면 예상과 달리 무력감에 빠진다. ‘은퇴 후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일로 자기를 증명하고 살아온 사람일수록 취약하다. ‘해야 할 일’이 사라지자 ‘내 존재 가치’까지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라면, ‘더 쉬기’가 아니라 ‘적당한 긴장 만들기’가 필요하다. 작은 목표를 세우고, 하루를 구조화하고, 밖으로 나가고, 누군가와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 봉사든 취미든, 주 2~3회의 규칙적인 약속이든, 짧은 일거리든 상관없다. 핵심은 뇌에게 ‘나는 다시 삶과 접촉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우울증을 부른다. 스트레스는 우리 뇌의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피질 축을 활성화시키고, 코르티솔 분비를 증가시킨다. 이 반응은 외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신체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에너지와 집중력을 올려주고, 위험이 닥쳐도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신체를 준비시킨다. 짧은 기간 동안 이런 상태가 유지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스트레스에 의한 심신의 반응이 지속적이면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 뇌의 전전두엽은 계획을 세우고, 충동을 조절하고, 감정을 정리하는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이 지휘자가 제대로 활약을 못하게 만든다. 우울증에서 집중이 안 되고, 쉬운 결정도 어려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마 기능이 떨어져 기억력까지 흐려진다. 환자들은 “머리가 뿌옇다, 단어가 잘 안 떠오른다, 책을 읽어도 내용이 남지 않는다”라고 호소하는데, 이것 또한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뇌가 지친 상태에서 나타나는 기능 저하 현상이다.
스트레스가 장기화되면 뇌가 회복하는 속도 자체가 느려진다. 뇌 신경세포의 성장과 회복에 관여하는 신경성장인자(대표적으로 BDNF로 알려진 요소)의 활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상처가 더 빨리 생기는데, 회복은 더디다. 신경전달계의 균형도 흔들린다. 세로토닌 기능이 저하되면 작은 자극에도 과민해지고, 사소한 말에도 깊이 상처받고, 정서 조절이 어려워진다.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이 “별것 아닌 일에도 눈물이 나요. 회의 시간에 갑자기 울음이 터져서 난처했어요.”라고 호소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감정을 조절하던 제동 장치가 닳아버린 것이다.
몸도 함께 변한다. 우울증 환자들은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없는데도 “감기 걸린 것처럼 온몸이 나른하다” “미열이 계속 나는 것 같다” “전신이 쑤신다”고 호소한다. 이런 증상들은 스트레스가 면역체계를 교란시켜서 사이토카인, 인터루킨-6, CRP 같은 염증 반응 물질이 증가하는 것과 관련이 깊다. 우울증이 심할수록 염증 반응도 커지는 경향이 있고, 치료로 우울이 호전되면 염증 지표가 함께 내려가기도 한다. 반대로 염증 반응이 높게 유지되는 경우에는 항우울제 치료 반응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뇌가 회복의 틈을 만들어야 한다. 그 중 핵심이 수면이다. 수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코르티솔 리듬을 재정렬하고, 면역 반응을 가라앉히고, 전전두엽의 제동 장치를 복구하는 과정이다. 가벼운 유산소 운동과 햇빛 노출은 생체 리듬을 세우고, 염증 반응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스트레스가 우울증을 유발한다는 말은 너무 익숙하지만, 진료실에서는 정반대의 장면도 자주 만난다. “한참 스트레스 받을 때는 괜찮았는데, 이제 다 편해졌는데 나는 왜 이렇게 무기력한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환자를 종종 본다.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나서, 우울증이 찾아온 것이다. 위기일 때는 우울한지도 모르고 일하다가 안정기에 접어들고 나서 허무함과 무력감이 떨쳐지지 않아 병원을 찾는 사업가도 적지 않다.
얼핏 모순처럼 들린다. 그러나 스트레스는 단지 해로운 자극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구조의 일부이기도 하다. 활기차게 살기 위해서는 적당한 스트레스가 필요하다. 스트레스가 전혀 없으면, 그것 자체가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된다.
결혼 전까지 사회생활을 하던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계기로 일을 그만두고, 집안일만 하며 지내다가 우울해지는 경우가 그렇다. 밖에서 일하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성취와 자극을 얻던 사람일수록 더 쉽게 흔들린다. 여기에 남편의 무관심, 가정 내 갈등이 겹치면 우울은 깊어진다. 이런 상태를 ‘새장 속 새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비슷한 맥락으로 ‘빈 둥지 증후군’이 있다. 아이가 성장해 독립하는 시기에 찾아오는 우울이다. 전업주부로 아이 중심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 특히 취약하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힘들고 스트레스도 크다. 그러나 동시에 삶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추진력이 사라지면 허무가 밀려온다.
남성에게는 은퇴가 가장 위험한 고비가 된다. “은퇴하면 얼마나 편할까”를 꿈꾸던 직장인이 정말 은퇴를 하고 나면 예상과 달리 무력감에 빠진다. ‘은퇴 후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일로 자기를 증명하고 살아온 사람일수록 취약하다. ‘해야 할 일’이 사라지자 ‘내 존재 가치’까지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라면, ‘더 쉬기’가 아니라 ‘적당한 긴장 만들기’가 필요하다. 작은 목표를 세우고, 하루를 구조화하고, 밖으로 나가고, 누군가와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 봉사든 취미든, 주 2~3회의 규칙적인 약속이든, 짧은 일거리든 상관없다. 핵심은 뇌에게 ‘나는 다시 삶과 접촉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