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준철의 약·잘·알(약 잘 알고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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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용과 무관한 사진 /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인터넷을 통해 공유되는 기형적인 일반의약품 복용법이 10대들의 뇌·심장을 공격하고 있다.

청소년 약물 오남용 첫 번째 일반의약품은 ‘디펜히드라민’ 성분의 수면유도제다. 청소년들이 이 약물을 과량 복용하면 뇌의 ‘무스카린성 아세틸콜린 수용체’가 차단돼 착란(錯亂) 증상을 겪을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심장 독성이다. 고용량의 디펜히드라민은 심장 세포의 나트륨·칼륨 채널을 방해한다. 이는 심전도상 QT 간격을 연장시켜 치명적인 부정맥을 유발할 수 있다. 심하면 예고 없이 심정지로 이어진다. 실제 미국에서는 다수의 10대 사망자가 발생했다.

최근 가장 우려하는 또 다른 약물은 지사제(설사약)인 ‘로페라미드’다. 이 약은 장운동을 억제해 설사를 멈추게 한다. 그러나 과량 복용은 심장을 마비시킬 수 있다. 심장의 전기 신호 전도를 극도로 지연시켜 QRS 간격과 QT 간격을 동시에 늘리며, 이는 일반적인 제세동기나 약물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는 난치성 부정맥을 유발하고 사망률 또한 매우 높다. 설사약을 먹고 심장이 멈춘다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극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그 외에 주의해야 할 약물은 ‘덱스트로메토르판’이다. 덱스트로메토르판은 정상 용량에서는 훌륭한 기침 억제제지만, 고용량에서는 뇌의 NMDA 수용체를 차단해, 정신과 신체가 분리되는 듯한 ‘해리성 마취’ 상태를 유발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약을 오남용했을 때 가장 큰 위험은 ‘세로토닌 증후군’이다. 특히 청소년이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 중인 상태에서 이 약을 과량 섭취할 경우, 뇌 내 세로토닌 농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고열, 근육 강직, 발작,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며, 적절한 응급처치가 없으면 사망에도 이를 수 있다. 또한 시판되는 기침약은 단일제보다는 아세트아미노펜(진통제)이나 클로르페니라민(항히스타민제)이 포함된 복합제인 경우가 많다. 함께 섭취하는 과용량 아세트아미노펜이 돌이킬 수 없는 전격성 간 부전을 일으켜 간 이식이 필요한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덱스트로메토르판은 오남용 우려로 일반의약품에서 퇴출된 상태다.

청소년의 뇌는 ‘공사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충동을 조절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사령탑인 전두엽은 20대 중반이 돼서야 완전히 성숙한다. 반면, 보상과 쾌락을 추구하는 변연계는 10대 때 이미 활화산처럼 타오른다. 브레이크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엔진만 고급 스포츠카급으로 장착된 자동차와 같다. 여기에 기름을 붓는 게 SNS다. 틱톡이나 유튜브 쇼츠의 알고리즘은 자극적인 콘텐츠를 끊임없이 공급하며, 또래 집단에서의 소속감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를 용기나 유행으로 포장한다. ‘친구들도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뒤처진다’는 심리, 입시 지옥에서 잠시나마 탈출하고 싶은 욕구가 손쉬운 약물 오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른들이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몇 가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첫째, 약국에서 약사들이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때 선별적인 판매제한을 하면 된다. 청소년이 디펜히드라민, 로페라미드 등 특정 성분을 대량 구매하거나 반복 구매할 경우 반드시 사용 목적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공부 때문에 잠을 못 자서요”, “여행 가서 먹으려고요”라는 핑계 뒤에 숨겨진 오남용의 신호를 감지해내는 전문적인 촉이 필요하다.

둘째, 가정 내 의약품 관리다. 학부모들은 냉장고 속 식재료 유통기한은 꼼꼼히 챙기면서, 정작 약통 속에 어떤 약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자녀가 약을 자주 찾거나, 방에서 빈 약 껍질이 다수 발견된다면 즉시 대화를 시도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특히 종합감기약이나 수면유도제가 비상식적으로 빨리 소진된다면 이는 명백한 적신호다.

셋째, 학교 약물 예방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기존의 “마약은 나빠요” 식의 추상적인 교육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청소년들이 실제로 접하고 있는 일반의약품 약물들의 구체적인 위험성, 즉 뇌가 어떻게 망가지고 심장이 어떻게 멈추는지에 대한 과학적이고 사실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약물이 아닌 건강한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돕는 심리 상담 인프라 확충도 시급하다.

‘약과 독의 차이는 오직 용량에 있다’는 파라셀수스의 명언은 독성학의 기본이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진리다. 우리 아이들은 지금 혀끝의 달콤함과 순간의 도피를 위해 생명을 담보로 한 러시안룰렛을 하고 있다. 약국 문을 열고 들어오는 교복 입은 학생의 손에 들린 감기약 한 통이, 단순한 치료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과 관심. 그것이 바로 비극을 막는 첫걸음이다. 


엄준철 약사 (성균관대 약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