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민의 삶과 마음 설명서]
우리 모두는 대개 꽤 열심히 살아왔다. 학생 때는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고, 사회에 나와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참 많이 애를 썼다. 그리고 오늘도 크고 작은 불안, 괴로움과 싸우면서 하루를 잘 버텨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진료실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주 묻는 질문은 이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왜 행복하지 않을까요?”
독자들도 혹시나 이런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면 한번 같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정말 열심히 애써 살고 있음에도 어째서 행복하지 않은 기분이 드는 걸까?
당신은 정말 행복해지려 애를 쓰고 있는가?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모으며 내가 알게 된 것은,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많은 경우 행복을 직접 추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산다. ‘내가 이번 시험에 떨어지면 어떡하지?’ ‘내가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될 텐데’ ‘남들보다 못 살면 무시당하지 않을까?’ ‘내가 지금 이걸 선택하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즉, 삶의 방향이 행복을 추구하고 기쁨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불안, 결핍, 후회, 두려움을 피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 결과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불행을 피한 뒤에 ‘혹시나 남아 있으면 좋은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오다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행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조차 묻지 않게 된다. 불행을 피하는 데 성공했는지, 뒤처지지 않았는지, 문제없이 버티고 있는지만을 점검하며 하루를 보낸다. 행복은 그렇게 삶의 중심에서 조금씩 밀려나, 늘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질문이 된다.
인간은 원래, 불행을 피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의 손실회피(Loss Aversion)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무엇인가를 얻을 때의 기쁨보다, 같은 크기의 것을 잃을 때 느끼는 고통을 약 2배가량 더 크게 경험한다. 즉 내가 공짜로 10만 원을 벌었을 때 얻는 기쁨보다 실수로 10만 원을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고통이 2배나 크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또한 진화심리학에서 이러한 인간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생명체에게 있어 하루 치 식량 손실은 죽음을 초래할 수 있지만, 하루 치 식량을 추가로 얻는 것은 수명을 하루 연장시키지 않는다. 즉, 우리 인간을 포함하여 생물들에게 있어 위협을 기회보다 더 시급하게 여기는 유기체는 생존하고 번식할 가능성이 결국 더 높기에 이러한 특징을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들에 따르면 인간은 행복을 얻는 것보다 불행을 피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데 익숙한 존재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을 향해 가는 선택이 아니라 불행을 피하기 위한 선택에 집중하는 우리 자신을 그저 비난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구조의 문제도 우리가 행복에서 멀어지는데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실패에 대해서 너무나 엄격하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했다고 인생이 끝난 것처럼 좌절하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장에 취업하지 못했다고 주눅이 들어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실패 비용이 너무나 큰 우리의 사회 구조상 도전보다는 회피가 합리적인 선택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오랫동안 애써왔다. 다만 그 노력의 방향이 행복을 향해 있기보다는 불행을 피하는데 맞춰져 있었을 뿐이다. 불행하지 않다는 상태와 행복하다는 상태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큰 불행이 없다고 해서 삶이 저절로 만족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뒤처지지 않았다고 해서 마음이 채워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행을 피하는 데에는 매우 성실했고, 행복을 묻는 데에는 놀랄 만큼 인색했다. 행복은 늘 나중 문제였고, 시간이 남으면 나중에 생각해볼 사치스러운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새롭게 연재할 이 칼럼은 어떻게 더 잘 버틸 것인가를 말하려는 글이 아니다. 이미 충분히 버텨온 모든 이들에게 이제는 한 번쯤 다른 질문, ‘행복하기 위해서 내 삶에서 더 챙기고 생각해야 할 부분’을 멈춰서 되짚어보는데 의미가 있다. 행복은 특별한 결론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기준에 더 가깝다. 무엇을 더 가져야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에 계속 흔들리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일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연재에서는 거창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기준과 선택을 하나씩 다시 살펴보려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연재되는 이 칼럼이 독자의 삶에서 가진 질문을 함께 꺼내놓고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독자들도 혹시나 이런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면 한번 같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정말 열심히 애써 살고 있음에도 어째서 행복하지 않은 기분이 드는 걸까?
당신은 정말 행복해지려 애를 쓰고 있는가?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모으며 내가 알게 된 것은,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많은 경우 행복을 직접 추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산다. ‘내가 이번 시험에 떨어지면 어떡하지?’ ‘내가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될 텐데’ ‘남들보다 못 살면 무시당하지 않을까?’ ‘내가 지금 이걸 선택하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즉, 삶의 방향이 행복을 추구하고 기쁨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불안, 결핍, 후회, 두려움을 피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 결과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불행을 피한 뒤에 ‘혹시나 남아 있으면 좋은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오다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행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조차 묻지 않게 된다. 불행을 피하는 데 성공했는지, 뒤처지지 않았는지, 문제없이 버티고 있는지만을 점검하며 하루를 보낸다. 행복은 그렇게 삶의 중심에서 조금씩 밀려나, 늘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질문이 된다.
인간은 원래, 불행을 피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의 손실회피(Loss Aversion)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무엇인가를 얻을 때의 기쁨보다, 같은 크기의 것을 잃을 때 느끼는 고통을 약 2배가량 더 크게 경험한다. 즉 내가 공짜로 10만 원을 벌었을 때 얻는 기쁨보다 실수로 10만 원을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고통이 2배나 크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또한 진화심리학에서 이러한 인간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생명체에게 있어 하루 치 식량 손실은 죽음을 초래할 수 있지만, 하루 치 식량을 추가로 얻는 것은 수명을 하루 연장시키지 않는다. 즉, 우리 인간을 포함하여 생물들에게 있어 위협을 기회보다 더 시급하게 여기는 유기체는 생존하고 번식할 가능성이 결국 더 높기에 이러한 특징을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들에 따르면 인간은 행복을 얻는 것보다 불행을 피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데 익숙한 존재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을 향해 가는 선택이 아니라 불행을 피하기 위한 선택에 집중하는 우리 자신을 그저 비난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구조의 문제도 우리가 행복에서 멀어지는데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실패에 대해서 너무나 엄격하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했다고 인생이 끝난 것처럼 좌절하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장에 취업하지 못했다고 주눅이 들어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실패 비용이 너무나 큰 우리의 사회 구조상 도전보다는 회피가 합리적인 선택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오랫동안 애써왔다. 다만 그 노력의 방향이 행복을 향해 있기보다는 불행을 피하는데 맞춰져 있었을 뿐이다. 불행하지 않다는 상태와 행복하다는 상태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큰 불행이 없다고 해서 삶이 저절로 만족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뒤처지지 않았다고 해서 마음이 채워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행을 피하는 데에는 매우 성실했고, 행복을 묻는 데에는 놀랄 만큼 인색했다. 행복은 늘 나중 문제였고, 시간이 남으면 나중에 생각해볼 사치스러운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새롭게 연재할 이 칼럼은 어떻게 더 잘 버틸 것인가를 말하려는 글이 아니다. 이미 충분히 버텨온 모든 이들에게 이제는 한 번쯤 다른 질문, ‘행복하기 위해서 내 삶에서 더 챙기고 생각해야 할 부분’을 멈춰서 되짚어보는데 의미가 있다. 행복은 특별한 결론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기준에 더 가깝다. 무엇을 더 가져야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에 계속 흔들리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일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연재에서는 거창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기준과 선택을 하나씩 다시 살펴보려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연재되는 이 칼럼이 독자의 삶에서 가진 질문을 함께 꺼내놓고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