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오늘이 안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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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명은 당신이라는 바다 위를 지나는 폭풍우에 붙여진 이름일 뿐입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선생님 저 우울증 맞나요?”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치료받았어요.”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치료 경험이 있는 분을 자주 만납니다. 증상이 재발해 다시 발걸음을 하기도 하고, 이전 치료의 아쉬움을 안고 새로운 문을 두드리기도 합니다. 이때 ‘진단명’은 나의 상태를 의료진에게 설명하는 강력한 소통의 도구입니다. 끝없는 우울, 형용할 수 없는 불안과 공포, 무력감 속에서 방황할 때, 진단명은 내 상태를 명료하게 정의해줍니다. 게으르거나 나태하다는 오해와 ‘힘내’라는 공허한 응원으로 지쳐갈 때, “이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고 정의하는 진단명은 구원을 향한 한 줄기 빛이 됩니다.

하지만 이 빛이 때로는 우리를 더 좁은 감옥에 가두는 창살이 되기도 합니다.


진단명은 ‘지도’일뿐, ‘목적지’가 아니다.
진단명은 효율적인 치료를 돕는 ‘지도’입니다. “요즘 너무 우울해”라는 모호한 고백보다 “우울증으로 진단받았어”라는 표현은 당사자에게는 주변의 이해를 구하는 도구로, 의료진에게는 처방의 근거로 사용됩니다.

문제는 진단명을 부여받은 후의 태도입니다. 많은 사람이 지도를 손에 쥐는 순간,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는 대신 지도 속에 자신을 가둬버립니다. “우울증이라서 사람들을 만날 수 없어” “난 ADHD라 이럴 수밖에 없어” “공황장애 환자가 어떻게 취직을 하겠어”라며 미래의 가능성을 진단명 안에 가두고 지레 좌절하곤 합니다. 이는 마치 지도를 목적지를 찾아가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 자체를 ‘목적지’로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마침표를 찍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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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노바나나
우리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단 기준에는 ‘지난 2주간, 1달간, 6개월 이상, 12개월 이상’과 같은 ‘시간’ 기준이 포함됩니다. 즉, 진단명은 ‘지금’ 혹은 ‘과거로부터 이어진 현재’의 상태를 요약하는 수단입니다. 지금까지 축적되어 온 고통의 시간은 진단명에 담길 수 있지만, 앞으로 축적해 갈 시간까지 진단명에 포함될 수 없습니다.

진단명은 그 인상이 강렬하고 설명이 편리하다 보니 때로는 나를 그 진단명과 동일하게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진단명이 지금까지 당신이 겪어온 어려움에 대한 위로와 설명이 될 수는 있어도, 내일을 한계 짓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진단명을 무엇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진단명은 당신이라는 바다 위를 지나는 폭풍우에 붙여진 이름일 뿐입니다. 실은 폭풍우조차도 그 이름으로 다 설명되지 않고, 거센 풍랑이 몰아친다고 해서 바다가 사라지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당신이라는 사람의 고유함, 이야기, 잠재력과 회복력, 시간 속에 연속되는 삶은 진단명이라는 작은 틀에 가둘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진단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진단을 통해 지금의 고통을 이해하고 더 나은 삶으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본 자살 예방 캠페인은 보건복지부 및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대한정신건강재단·헬스조선이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