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약史] 아로나민

<편집자 주>
우리는 일반의약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유명한 약이라면 효능·적응증 정도는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겁니다. 설사 모르더라도 약에 동봉된 사용설명서를 읽으면 됩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서, 효능·적응증 이외의 정보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이를테면 약 이름에 담긴 뜻이나, 약의 개발 비화, 약을 만든 인물 또는 회사에 대한 이야기 등등 말입니다. [우리 약史]가 이처럼 설명서에는 나와 있지 않은 이야기들을 들려드립니다. 약의 역사(史)뿐 아니라, 약을 개발한 회사(社)나 약과 관련된 다소 사(私)적인 이야기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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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아로나민 ‘의지의 한국인’ 광고 등대지기 편. / 일동제약 제공
폭우와 강풍과 그리고 농무(濃霧). 산더미 같은 파도는 천지를 진동한다. 방향 없는 공간에 한줄기 불빛을 다스려 3만리 해안을 밝히는 의지의 한국인. (중략) 참다운 인생항로를 밝히는 한줄기 소중한 불빛이라 믿습니다.

언뜻 보면 한시(漢詩)나 공익광고 같은 이 글은 다름 아닌 비타민 영양제 ‘아로나민’의 1970년대 광고글이다. 광고 속 인물은 유명 연예인도 운동선수도 아닌, 34년 경력의 베테랑 등대지기다. 이른바 ‘의지의 한국인’ 시리즈로, 당시 아로나민은 이 광고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광고 최초로 세계 3대 광고제에서 입상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독자 기술로 ‘활성비타민B1’ 합성 성공… 1963년 출시
잘 알려졌다시피 1960년대 우리나라는 경제 사정이 좋지 못했다. 상당수 국민이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고, 부실한 끼니로 인해 영양 결핍을 겪기도 일쑤였다.

이에 일동제약은 ‘국민 건강과 활력 증진’을 목표로 비타민B군을 주성분으로 한 영양제 개발에 돌입했다. 비타민B는 우리 몸에서 에너지 생성과 대사·신경 작용 등에 관여하는 영양소로, 육체 피로와 체력 저하 등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일동제약은 일반 비타민보다 체내 흡수와 조직 이행이 잘 되면서 혈중 지속 시간이 긴 ‘활성형 비타민’ 개발에 몰두했고, 결국 독자 기술로 활성비타민B1 자체 합성에 성공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이 1963년 출시된 ‘아로나민 정’이다. 당시 시중에 여러 종류의 비타민 영양제가 있었지만, 활성형비타민을 사용한 건 아로나민뿐이었다.

◇‘체력은 국력’, ‘의지의 한국인’ 등 독창적 광고 눈길
아로나민이 시장에 자리 안착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독창적인 광고들이 있었다.

일동제약은 아로나민 발매 초기인 1964년 프로복싱을 후원하면서 마케팅에 활용했다. 당시는 복싱이 국민 스포츠로 인기를 끌었던 때였다. 한국 최초로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을 지낸 김기수를 광고 모델로 내세웠으며, 여기에 ‘체력은 국력’이라는 슬로건을 곁들여 대중에게 브랜드를 각인시켰다. 이후 일동제약은 각종 스포츠 중계방송 후원과 함께 회사의 이름을 따 ‘일동 스포츠’라는 TV 프로그램을 선보이기도 했다.

1971년부터 5년여 간 이어진 ‘의지의 한국인’ 시리즈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일동제약은 고열 작업자를 시작으로 ▲항공기 조종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건축기사 ▲교향악단 지휘자 ▲열차 기관사 ▲등대지기 ▲도예가 ▲포경선 포수 등을 아로나민 광고 모델로 기용했다. 다양한 직업군의 실제 종사자를 전면에 내세워 대중들의 공감을 유도하고, 근로에 대한 긍지를 불어넣겠다는 의도였다. ‘의지의 한국인’ 시리즈는 우리나라 최초의 캠페인 광고기도 했다. 파격적인 형식과 높은 작품성으로 호평을 받았으며, 이후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일본 ACC CM 페스티벌’에서 국제 부문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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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나민 / 일동제약 제공
출시 후 60년 이상 시간이 흘렀지만, 아로나민은 여전히 약국 인기 영양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실제 ▲아로나민 골드 ▲아로나민 씨플러스 ▲아로나민 골드 프리미엄 ▲아로나민 실버프리미엄 ▲아로나민 이맥스플러스 등 아로나민류 매출은 2024년 기준 622억원으로, 2023년(515억원) 대비 100억원 이상 증가했다. 제품 인지도에 품질 경쟁력이 뒷받침된 결과다. 현재 아로나민에 들어가는 비타민B1은 일동제약이 독자 기술로 자체 개발·생산하는 ‘푸르설티아민’이라는 활성형 비타민이다. 푸르설티아민은 뇌세포막 통과가 가능해 신체 조직과 근육은 물론, 두뇌로도 공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일동제약의 푸르설티아민 원료는 활성 비타민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 시장으로도 수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