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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렘수면행동장애가 신경 퇴행성질환과 관계 없이 인지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렘수면행동장애는 꿈의 내용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질환으로, 수면 중 소리 지르기, 주먹질, 발차기 등의 증상을 보인다. 이 질환은 파킨슨병이나 치매 등 신경퇴행성질환의 가장 강력한 전조 증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른 신경학적 원인이 없는 경우 ‘특발성 렘수면행동장애’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특발성 렘수면행동장애 환자의 장기적인 인지기능 변화를 추적한 연구는 부족했다. 또 기존 연구 대부분이 소규모 환자를 2년에서 4년 정도 추적해 장기적인 인지기능의 변화 양상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에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인영 교수 연구팀은 특발성 렘수면행동장애가 단독으로 기억력 등 주요 인지기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는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최소 5년 이상 특발성 렘수면행동장애 상태를 유지하면서 신경퇴행성질환으로 진행하지 않은 162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총 318회의 신경심리학적 평가 결과를 토대로 인지기능을 ▲주의력/작업기억력 ▲기억력 ▲실행기능 ▲시공간기능 ▲언어기능 등 5개의 영역으로 분류해 분석했다. 검사 결과는 ‘z-점수’로 변환했는데, z-점수는 같은 연령·성별·학력 집단에서의 환자가 평균(0점)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나타내는 점수로, 이 점수가 -1.5 이하면 유의미한 인지기능 저하로 판단한다.

분석 결과, 특발성 렘수면행동장애 환자들은 주의력/작업기억력, 기억력 영역에서 점진적이지만 일관된 저하를 보였다. 특히 ‘숫자-기호 연결(Digit Symbol 검사)’에서 매년 평균 z-점수가 0.084씩 감소하며 가장 가파르게 하락했다. 이 검사는 처리 속도, 주의력, 작업기억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과제로 이번 연구에서 조기 인지 변화를 감지하는 가장 민감한 지표다.

기억력 검사에서도 언어 기억력과 시각적 기억력이 각각 평균 0.054, 0.037씩 매년 꾸준히 저하됐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간에 체감하기 어렵지만 장기간 누적되면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또 연구팀이 10년 이상 신경퇴행성질환으로 진행하지 않은 ‘장기 안정군’ 환자 33명을 별도 분석한 결과, 이들 역시 전체 환자군과 유사하거나 일부 검사에서는 더 가파른 인지 저하가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기존에 제기됐던 ‘렘수면행동장애의 장기 안정 환자는 신경퇴행 속도가 더 천천히 진행될 것’이라는 가설과 대비되는 결과다. 따라서 렘수면행동장애를 장기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환자라도 신경퇴행 변화를 서서히 겪고 있을 수 있는 만큼, 정기적인 인지기능 평가와 추적관찰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한다.

홍정경 교수는 “특발성 렘수면행동장애 환자에서 신경퇴행성질환으로 진행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인지기능 저하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음이 이번 연구를 통해 명확히 밝혀졌다”며 “꼭 치매나 파킨슨병과 같은 질환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렘수면행동장애가 있다면 정기적인 검사와 진료로 추적관찰을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성별 분석에서 남성 환자(116명)는 주의력/작업기억력, 기억력, 실행기능 등 여러 영역에서 광범위한 저하를 보였는데, 여성 환자(46명)는 ‘숫자열 기억’과 ‘숫자-기호 연결’ 2개 항목에서만 제한적인 저하를 보였다.

이에 대해 윤인영 교수는 “여성 환자들이 뇌 손상에 대한 회복력이 더 높거나, 질병을 일으키는 비정상 단백질이 뇌에 쌓이는 속도가 더 느릴 가능성이 있다”며 “성별에 따라 다른 모니터링 전략과 맞춤형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수면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SLEEP’에 최근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