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는 있지만 수가는 없는 ‘방문 치과 진료’
일본 도쿄 인근에 거주하는 80대 남성 A씨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거동이 불편해 혼자 외출하기 어렵지만, 1주일에 한 번 치과진료를 받는다. 치과의사와 치과위생사로 구성된 방문치과 진료팀이 A씨의 자택을 찾는 덕분이다. 구강 상태를 확인하고 염증 치료와 의치 점검, 위생 관리를 진행한다. 진료는 A씨 한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해당 진료팀은 인근에 거주하는 고령 환자와 중증 질환자의 가정과 시설을 순차적으로 방문한 뒤 다음 주 일정을 잡는다. 이 같은 방문진료는 정기적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진료가 가능한 배경에는 일본의 제도적 기반이 있다. 일본은 2000년대 초반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이후,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의 치과 접근성을 국가 과제로 설정하고 방문치과진료를 공적 의료·돌봄 체계 안에 편입했다. 방문기본료와 구강관리료, 치과위생사 방문 관리료, 장애 가산 등이 수가로 설계돼 있으며, 치과의사·치과위생사·간호사가 팀을 이뤄 지역 케어플랜과 연동해 진료에 나서는 구조다.
몇 해 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은 공유되고 있다. 오는 3월 시행되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지원법)'에 방문 구강관리가 지역사회 통합돌봄 보건의료서비스의 한 축으로 명시됐다. 그러나 일본과 달리 이를 실제로 작동시킬 수 있는 수가와 전달체계는 여전히 마련되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제도는 선언에 그쳤고, 환자는 여전히 제도 밖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리'만 있고 '진료'는 없는 돌봄통합지원법
돌봄통합지원법은 노쇠·질병·장애 등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살던 곳에서 의료·요양·돌봄 서비스를 통합·연계해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틀이다. 정부는 시·군·구를 중심으로 지역사회 통합돌봄 체계를 구축하고, 병원과 시설 중심이 아닌 '살던 곳에서의 돌봄'을 핵심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법에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가 의료기관뿐 아니라 대상자의 가정이나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해 진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명시돼 있으며, 이 가운데 '방문구강관리'도 포함돼 있다.
문제는 '관리'만 있고 '진료'는 빠져 있다는 점이다. 현재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 체계 내에는 방문치과진료에 대한 별도의 수가나 청구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 치과 진단과 치료 행위에 대한 정의, 의료법상 특례 역시 부재하다. 대한치매구강건강협회 임지준 회장은 "방문 구강관리는 방문 치과진료와 결합될 때만 실효성을 갖는다"며 "이미 질환이 진행된 치매 환자나 중증 장애인의 경우 관리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재가의료 인프라로 육성 중인 장기요양 재택의료 시범사업 역시 방문치과진료를 전제로 설계된 제도는 아니다. 해당 시범사업은 2022년 12월 시작돼 지난해 말 기준 전국 195개 시·군·구에서 344개 의료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의사(또는 한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가 한 팀을 이뤄 장기요양 수급자의 가정을 방문해 진료와 간호, 돌봄 연계를 제공하는 구조지만, 치과의사와 치과위생사는 제도 설계에서 제외돼 있다.
◇수가·재원 모두 공백… "제도 마련 필요"
급여 구조도 한계로 지적된다. 건강보험에서는 주로 장기요양 1·2등급 와상 환자를 대상으로 방문진료 수가를 적용하고, 장기요양보험에서는 다학제팀 운영을 위한 재택의료 기본료를 지급한다. 환자 1인당 월 14만 원이 지급되며, 6개월 연속 관리 시 6만 원의 지속관리료가 추가된다. 추가 간호가 필요한 경우 방문당 5만2000원이 월 3회까지 인정된다.
그러나 방문 한 차례에 한두 시간이 소요되고 이동·장비·인력 부담이 큰 치과 진료 특성을 고려할 때, 별도의 수가 신설 없이 현행 체계에 방문치과진료를 편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이 운영하는 '찾아가는 경기도 돌봄 의료사업'의 김혜란 돌봄 매니저는 "현장에서 구강 검진과 치료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현재 수가 체계에서는 치과 인력을 안정적으로 참여시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원 문제도 걸림돌이다. 돌봄통합지원 대상은 고령자·치매 환자·중증 장애인 등을 포함해 약 300만 명으로 추산되지만, 관련 예산은 약 900억 원 수준이다. 임지준 회장은 "치매 환자 등의 치과 진료는 일반 환자보다 시간과 인력이 2~3배 이상 소요되고 법적·의료적 부담도 크다"며 "장비 이동과 멸균 등 진료 환경 구축까지 고려하면 별도의 수가 없이는 공급 자체가 형성될 수 없다"고 했다.
◇왜 필요한가… "치매·중증 환자 구강 건강은 생존 문제"
방문치과진료에 대한 요구는 현장에서 이미 누적돼 있다. 대한치매구강건강협회 등에 따르면 치매 노인의 70~80%는 즉각적인 치과 치료가 필요한 상태이며, 장애인의 치과 치료 미충족률도 약 30%에 달한다. 중앙치매센터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내 65세 이상 추정 치매 환자는 105만여 명에 이른다. 여기에 65세 이상 등록 장애인 약 145만 명, 장기요양보험 인정자 120만 명 이상이 더해진다.
2024년 요양시설 실태조사에서는 입소자의 80.9%가 잔존 치아 20개 미만으로 나타났다. 상당수는 치과 내원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로, 정기적인 진료 접근에서 배제돼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임지준 회장은 "치아 상실과 치주염, 의치 부적합 등 구강 건강이 무너지면 단순한 불편을 넘어 영양 결핍, 전신 염증, 욕창, 흡인성 폐렴 등 다양한 전신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구강관리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임에도 상당수가 방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선언 아닌 실행"… 일본처럼 제도화 가능할까
일본은 방문치과진료 제도화를 통해 흡인성 폐렴 감소, 입원율 저하, 의료비 절감 효과를 확인했다. 전문가들은 돌봄통합지원법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방문치과진료 역시 선언적 문구를 넘어 제도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한방문치의학회는 ▲방문 치과진료·방문 구강관리 수가 신설 및 현실화 ▲의료법 특례 마련 ▲재택의료·일차의료와의 연계 ▲치과의사의 안정적 참여를 위한 제도 설계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만 법 시행을 앞둔 현재까지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실행 일정은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보건복지부 변루나 구강정책과장은 "방문치과진료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수가체계도 마련될 것"이라면서도 "관련 연구가 진행 중으로, 상반기 이후에야 방향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조속히 수가체계를 정비해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보다 많은 치과가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러한 진료가 가능한 배경에는 일본의 제도적 기반이 있다. 일본은 2000년대 초반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이후,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의 치과 접근성을 국가 과제로 설정하고 방문치과진료를 공적 의료·돌봄 체계 안에 편입했다. 방문기본료와 구강관리료, 치과위생사 방문 관리료, 장애 가산 등이 수가로 설계돼 있으며, 치과의사·치과위생사·간호사가 팀을 이뤄 지역 케어플랜과 연동해 진료에 나서는 구조다.
몇 해 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은 공유되고 있다. 오는 3월 시행되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지원법)'에 방문 구강관리가 지역사회 통합돌봄 보건의료서비스의 한 축으로 명시됐다. 그러나 일본과 달리 이를 실제로 작동시킬 수 있는 수가와 전달체계는 여전히 마련되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제도는 선언에 그쳤고, 환자는 여전히 제도 밖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리'만 있고 '진료'는 없는 돌봄통합지원법
돌봄통합지원법은 노쇠·질병·장애 등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살던 곳에서 의료·요양·돌봄 서비스를 통합·연계해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틀이다. 정부는 시·군·구를 중심으로 지역사회 통합돌봄 체계를 구축하고, 병원과 시설 중심이 아닌 '살던 곳에서의 돌봄'을 핵심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법에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가 의료기관뿐 아니라 대상자의 가정이나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해 진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명시돼 있으며, 이 가운데 '방문구강관리'도 포함돼 있다.
문제는 '관리'만 있고 '진료'는 빠져 있다는 점이다. 현재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 체계 내에는 방문치과진료에 대한 별도의 수가나 청구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 치과 진단과 치료 행위에 대한 정의, 의료법상 특례 역시 부재하다. 대한치매구강건강협회 임지준 회장은 "방문 구강관리는 방문 치과진료와 결합될 때만 실효성을 갖는다"며 "이미 질환이 진행된 치매 환자나 중증 장애인의 경우 관리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재가의료 인프라로 육성 중인 장기요양 재택의료 시범사업 역시 방문치과진료를 전제로 설계된 제도는 아니다. 해당 시범사업은 2022년 12월 시작돼 지난해 말 기준 전국 195개 시·군·구에서 344개 의료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의사(또는 한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가 한 팀을 이뤄 장기요양 수급자의 가정을 방문해 진료와 간호, 돌봄 연계를 제공하는 구조지만, 치과의사와 치과위생사는 제도 설계에서 제외돼 있다.
◇수가·재원 모두 공백… "제도 마련 필요"
급여 구조도 한계로 지적된다. 건강보험에서는 주로 장기요양 1·2등급 와상 환자를 대상으로 방문진료 수가를 적용하고, 장기요양보험에서는 다학제팀 운영을 위한 재택의료 기본료를 지급한다. 환자 1인당 월 14만 원이 지급되며, 6개월 연속 관리 시 6만 원의 지속관리료가 추가된다. 추가 간호가 필요한 경우 방문당 5만2000원이 월 3회까지 인정된다.
그러나 방문 한 차례에 한두 시간이 소요되고 이동·장비·인력 부담이 큰 치과 진료 특성을 고려할 때, 별도의 수가 신설 없이 현행 체계에 방문치과진료를 편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이 운영하는 '찾아가는 경기도 돌봄 의료사업'의 김혜란 돌봄 매니저는 "현장에서 구강 검진과 치료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현재 수가 체계에서는 치과 인력을 안정적으로 참여시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원 문제도 걸림돌이다. 돌봄통합지원 대상은 고령자·치매 환자·중증 장애인 등을 포함해 약 300만 명으로 추산되지만, 관련 예산은 약 900억 원 수준이다. 임지준 회장은 "치매 환자 등의 치과 진료는 일반 환자보다 시간과 인력이 2~3배 이상 소요되고 법적·의료적 부담도 크다"며 "장비 이동과 멸균 등 진료 환경 구축까지 고려하면 별도의 수가 없이는 공급 자체가 형성될 수 없다"고 했다.
◇왜 필요한가… "치매·중증 환자 구강 건강은 생존 문제"
방문치과진료에 대한 요구는 현장에서 이미 누적돼 있다. 대한치매구강건강협회 등에 따르면 치매 노인의 70~80%는 즉각적인 치과 치료가 필요한 상태이며, 장애인의 치과 치료 미충족률도 약 30%에 달한다. 중앙치매센터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내 65세 이상 추정 치매 환자는 105만여 명에 이른다. 여기에 65세 이상 등록 장애인 약 145만 명, 장기요양보험 인정자 120만 명 이상이 더해진다.
2024년 요양시설 실태조사에서는 입소자의 80.9%가 잔존 치아 20개 미만으로 나타났다. 상당수는 치과 내원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로, 정기적인 진료 접근에서 배제돼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임지준 회장은 "치아 상실과 치주염, 의치 부적합 등 구강 건강이 무너지면 단순한 불편을 넘어 영양 결핍, 전신 염증, 욕창, 흡인성 폐렴 등 다양한 전신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구강관리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임에도 상당수가 방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선언 아닌 실행"… 일본처럼 제도화 가능할까
일본은 방문치과진료 제도화를 통해 흡인성 폐렴 감소, 입원율 저하, 의료비 절감 효과를 확인했다. 전문가들은 돌봄통합지원법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방문치과진료 역시 선언적 문구를 넘어 제도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한방문치의학회는 ▲방문 치과진료·방문 구강관리 수가 신설 및 현실화 ▲의료법 특례 마련 ▲재택의료·일차의료와의 연계 ▲치과의사의 안정적 참여를 위한 제도 설계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만 법 시행을 앞둔 현재까지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실행 일정은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보건복지부 변루나 구강정책과장은 "방문치과진료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수가체계도 마련될 것"이라면서도 "관련 연구가 진행 중으로, 상반기 이후에야 방향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조속히 수가체계를 정비해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보다 많은 치과가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