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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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는 단순히 집중을 못하는 상태가 아니라, 집중을 조절하는 뇌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뇌신경의 문제다./사진=네이버 영화 '예스맨' 무비 클립
누구나 마음의 병을 겪을 수 있지만 쉽게 털어놓기 힘들고 때론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어려움을 겪는다. 헬스조선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강준 교수의 칼럼을 연재해 ‘읽으면서 치유되는 마음의 의학’을 독자와 나누려 한다. 정신건강 문제를 풀어내고 치유와 회복의 길을 제시한다.(편집자주)

‘Being different is your biggest asset, it will help you succeed. It’s your superpower.’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당신의 가장 큰 자산이다. 그것이 당신을 성공으로 이끌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초능력이다.)
—리처드 브랜슨 공식 블로그-

영국 버진 그룹 회장 리처드 브랜슨은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초능력’이라고 말한다. 다름이 결함이 아니라 가능성이라는 의미다. 어린 시절, 브랜슨은 문제아였다. 책을 제대로 읽지 못했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어려워했다. 난독증과 ADHD를 겪은 그는 이후 ‘신경다양성’을 강조하며 자신처럼 다르게 사고하는 사람들이야말로 혁신의 씨앗이 된다고 말했다. 신경다양성이란 인간의 뇌가 모두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이러한 차이가 결함이 아니라 개성과 잠재력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세계적인 코미디 배우 짐 캐리는 “나는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며, 과잉 에너지와 상상력을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평생 산만함과 충동성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특성을 유머와 창의성으로 승화시켰다. ADHD가 주는 에너지를 활용해 독창적인 캐릭터를 창조하며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흔히 리처드 브랜슨과 짐 캐리 같은 사람들을 ‘특별한 천재’라 부른다. 그러나 같은 특성을 지닌 평범한 사람들은 ‘게으르고 무책임한 성인’이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간다. 이것이 바로 성인 ADHD다. ADHD는 단순히 집중을 못하는 상태가 아니라, 집중을 조절하는 뇌 기능의 문제다.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한다. 의지의 문제라기보다는 뇌 실행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뇌신경의 문제다.

성인 ADHD는 단순히 기분이나 성격을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 국제 진단 기준인 DSM-5는 이를 명확히 규정하며 핵심은 두 가지다. 부주의와 과잉행동, 충동성이다. 성인은 이 두 영역 중 하나 또는 둘 모두에서 여러 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되어야 한다. 부주의는 단순한 산만함이 아니다. 일을 시작하고도 끝내지 못하고, 약속과 마감을 반복적으로 놓치며,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고, 중요한 이야기를 들어도 흘려듣는 모습이 여기에 포함된다.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계획하고 정리하고 실행하는 과정이 유독 어렵다면, 의지 부족이 아니라 실행기능의 문제일 수 있다. 과잉행동과 충동성은 성인에게서 조금 다르게 나타난다. 아이들처럼 뛰어다니지는 않지만, 마음이 끊임없이 바쁘고, 말이 앞서 나가며, 참지 못하고 끼어들고, 쉽게 감정이 폭발한다. 가만히 쉬지 못하고 늘 뭔가를 해야만 편해지는 상태 역시 이 범주에 들어간다. 성인 ADHD는 오랜 시간 반복돼 온 삶의 패턴과 뇌기능 문제를 종합해서 판단하는 엄격한 의학적 진단이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와도 자주 혼동된다. 그러나 ADHD는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며 특정 상황이 아니라 삶 전반에 걸쳐 일관된 패턴을 보인다. 뇌 영상검사로만 진단할 수 없고 병력과 생활 패턴을 면밀히 평가해야 한다.

치료의 핵심은 약물과 비약물 치료의 병행이다. ADHD 약물은 뇌 도파민 시스템을 조절해 집중력과 충동성을 개선한다. 안경이 필요한 사람에게 시력을 교정해 주듯, 약물은 ADHD 환자의 일상 기능을 정상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시간 관리 훈련, 인지행동치료, 규칙적인 수면과 운동 같은 생활 관리가 더해질 때 치료 효과는 더욱 커진다.

약물은 중요한 치료 도구이지만, 동시에 오해와 남용의 위험도 함께 안고 있다. 최근 일부에서 ADHD 약물이 ‘공부 잘하는 약’으로 잘못 알려지며 비의료적 사용이 늘고, 이에 따라 규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집중력을 높여 준다는 이유로 건강한 사람이 약을 사용하는 것은 치료가 아니라 약물 남용에 가깝다. 그러나 이로 인해 ADHD로 진단받은 환자들의 치료까지 위축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ADHD 약물은 결핍된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회복시켜 뇌의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돕는 치료제다. 중요한 것은 ‘먹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누가, 왜, 어떻게’ 사용하는 가다. 정확한 진단과 전문의의 모니터링 아래 사용되는 약물 치료는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지만 목적 없이 사용될 경우에는 부작용과 의존의 위험이 커진다.

성인 ADHD를 가장 아프게 만드는 것은 증상보다 오해다. 많은 환자들이 평생 자신을 ‘의지가 약한 사람’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ADHD는 결함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뇌다. 제대로 조율 된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다.

짐 캐리와 리처드 브랜슨은 분명한 성공 사례이나 그들이 남긴 메시지는 단순한 ‘성공 신화’ 이상이다. 같은 특성도 어느 한쪽에서만 바라보면 병이 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강점이 될 수 있다. ADHD 역시 마찬가지다. 산만함과 충동성은 일상을 무너뜨릴 수 있지만, 동시에 창의성,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 위험 감수 능력이라는 잠재력을 갖게 만든다. 이 특성을 이해하고 적절히 조절한다면 약점을 넘어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는 집중력과 자기조절을 훈련하는 쉽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성인 ADHD를 단순한 병이 아니라, 조율과 관리가 필요한 뇌의 특성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