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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을 물어뜯거나 일을 끝없이 미루고, 연락을 회피하는 자기 방해·파괴적 행동이 오히려 뇌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전략일 수 있다는 전문가 분석이 나왔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손톱을 물어뜯거나 일을 끝없이 미루고, 연락을 회피하는 자기 방해·파괴적 행동이 오히려 뇌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전략일 수 있다는 전문가 분석이 나왔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지난 5일 임상심리학자 찰리 헤리엇-메이틀랜드 박사의 신간 ‘정신건강에서의 통제된 폭발(Controlled Explosions in Mental Health)’을 인용해, 이러한 자기 방해 행동의 생존 메커니즘을 소개했다. 그는 미루기, 완벽주의, 자기비난, 피부 뜯기, 연락 회피 등을 ‘통제된 폭발’로 정의하며, 뇌가 더 크고 예측 불가능한 위협을 피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통제 가능한 작은 해를 선택하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행복이나 만족을 극대화하기 위해 설계된 기관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생존 시스템이다. 뇌는 예측 가능한 환경을 선호하며, 방심한 상태에서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특히 인간에게 가장 취약한 순간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일 때다. 이때 뇌는 개입해 통제 가능한 형태의 위협을 만들어낸다.

즉, 뇌는 외부 요인에 의해 갑작스럽게 무너질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차라리 스스로 만들어낸 실패나 불편함에 익숙해지는 쪽을 택한다. 타인에게서 예상치 못한 비난을 받기보다는, 내부에서 만들어낸 자기비판을 반복하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간의 뇌는 육체적·정서적 상처 가능성에 과도하게 민감하도록 진화했다.

대표적인 자기 방해 행동으로는 미루기와 완벽주의가 꼽힌다. 두 행동 모두 ‘실패를 피하려는 목적’을 공유하지만 작동 방식은 다르다. 완벽주의는 실수를 막기 위해 세부 사항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이 과정에서 높은 스트레스와 번아웃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반면 미루기는 주의를 과제에서 다른 곳으로 돌려, 위협 자체를 회피하는 전략에 가깝다.


또 다른 형태의 자기 방해 행동으로는 자기비판이 있다. 이는 자기계발이나 자기비난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뇌가 상황에 대한 주도권과 통제감을 회복하려 할 때 발생한다.

이러한 행동들의 공통된 배경에는 ‘신경학적 하이재킹(neurological hijacking)’이 있다. 이는 뇌의 위협 반응 시스템이 상상력과 추론 같은 고등 인지 기능을 장악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로 인해 실제로는 가능성이 낮은 상황임에도, 최악의 시나리오를 계속 떠올리게 된다.

문제는 이 과정이 자기충족적 예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어떤 일을 잘 못할 것이라 믿으면 시도 자체를 줄이게 되고, 결국 실제 성과도 나빠질 수 있다”며 “누군가가 자신을 싫어할 것이라 생각해 관계를 피하면, 그 관계가 형성될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고 했다.

헤리엇-메이틀랜드 박사는 이러한 행동을 무작정 제거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를 ‘폭발물 처리반’에 비유하며, 이 메커니즘이 더 크고 깊은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 작동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반응은 대부분 과거의 위협적인 경험이나 트라우마와 연결돼 있다.

다만 그는 ‘통제된 폭발’이 실제 삶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해결의 출발점은 두려워하는 상황과 감정 주변에 심리적 안전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동시에 과거에 충족되지 않았거나 무시됐던 핵심 욕구의 상실을 인식하고 위로하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기 방해 행동과 싸울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이 삶을 지배하도록 방치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