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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기, 특히 65세 이상에서 발생하는 정신질환은 여전히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면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이용도 꾸준히 늘고 있다. 과거처럼 정신질환을 개인의 의지 문제나 낫지 않는 병으로 보는 시각은 상당 부분 사라졌기 때문이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체감한다는 의료진이 많다. 다만 이러한 인식 개선이 모든 연령층에 고르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노년기, 특히 65세 이상에서 발생하는 정신질환은 여전히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노년기에는 환자와 가족이 증상이 악화한 뒤에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변기환 교수는 “대부분의 정신질환이 청·장년기에 발병해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는 특성상, 노년기에 처음 나타나는 증상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자녀의 독립과 사회적 관계 축소로 주변에서 변화를 제때 발견하지 못하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또한 노년기에는 다양한 신체 질환과 인지 저하가 동반돼 정신과적 증상이 가려지는 경우도 흔하다. 식욕 저하나 기력 감소를 우울증이 아닌 노화나 신체 질환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받아들이는 사례도 적지 않다.

노년기 정신질환 가운데 가장 흔하고 삶의 질을 크게 저해하는 대표적인 질환은 기분장애, 그중에서도 우울증이다. 우울 증상이 심할 경우 주요우울장애로 진단한다. 2주 이상 지속되는 우울한 기분 또는 흥미와 즐거움의 상실이 나타나고, ▲수면·식욕 변화 ▲피로감 ▲집중력 저하 ▲무가치감 ▲자살 사고 등 여러 증상 가운데 다섯 가지 이상이 동반될 때 해당한다. 변 교수는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은 이전과 비교해 일상 기능이 뚜렷하게 저하되는지 여부”라며 “기준에 미치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면 지속성 우울장애 등으로 진단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년기 우울증은 다른 연령층과 구별되는 특징을 보인다. 변 교수는 “젊은 층이 우울감이나 무기력을 직접 호소하는 데 비해, 노년층은 두통·어지러움·소화불량·통증 등 신체 증상을 중심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로 인해 여러 진료과를 전전하다가 뒤늦게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사례가 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은퇴, 배우자나 지인의 상실, 사회적 역할 감소 등 인생 주기의 변화 역시 우울증 발생과 악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인지 저하와의 중첩도 중요한 문제다. 노년기에는 치매와 경도인지장애의 유병률이 빠르게 증가하며, 이 과정에서 무감동증이나 활동 감소가 우울증처럼 보일 수 있다. 반대로 우울증이 주의력과 집행기능 저하를 유발해 치매와 유사한 인지 저하를 보이기도 한다. 변 교수는 “다만 퇴행성 치매와 달리, 우울증으로 인한 인지 저하는 치료를 통해 회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확한 감별과 개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년기 우울증은 결코 드문 질환이 아니다. 국가정신건강포털에 따르면 일반 노인 인구에서 주요우울장애 유병률은 1~4%, 경미한 우울증은 4~13%로 보고된다. 만성 질환을 가진 노인에서는 이 비율이 두 배 이상 높아진다. 전체 성인 인구의 우울증 유병률이 약 7.8%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노년기는 우울증이 가장 흔한 연령대에 해당한다. 더 큰 문제는 자살 위험이다. 2023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40.6명으로, 전체 인구 평균보다 현저히 높다.

변 교수는 “노년기 우울증은 오랫동안 노화 과정의 일부로 간과됐다”며 “하지만 고령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는 현실에서 이를 방치하는 것은 개인의 삶의 질 저하를 넘어 사회적 손실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노년기 우울증을 조기에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것은 개인과 가족, 나아가 사회 전체의 과제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며 “기분 저하나 활동 감소, 이유 없는 신체 불편감이 몇 주 이상 이어지거나 이전과 다른 변화가 뚜렷하다면 지켜보기보다 병원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