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진정 효과가 있어 '의료용 대마'로 쓰여 온 '칸나비디올(CBD)'의 통증 완화 효과가 실제로는 크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칸나비디올은 대마초에서 발견되는 화합물인 '칸나비노이드'의 일종으로, THC(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와 함께 신체 내 통증 조절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 체계에 작용하는 성분이다. 환각을 일으키는 THC 대비 향정신성 작용 발생 우려가 낮아 제한적으로 '의료용' 목적에 한해 쓰이고 있다. 대마초에서 씨앗·뿌리·성숙한 줄기는 환각 성분이 거의 없어 '대마 제외 부분'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실제로 지난 6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 부분에서 추출된 칸나비디올도 개인이 국내에 반입할 경우 마약류관리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칸나비디올은 주로 의료 현장에서 환자들의 통증·불안·수면 장애 등 질환을 치료하거나, 일부 뇌전증 환자들의 발작 증상을 가라앉히기 위한 용도로 쓰인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의료용 대마의 연구가 더 이뤄져야 한다"며 마리화나를 1급 마약류에서 3급 마약류로 완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칸나비디올의 만성 통증 완화 효과와 부작용으로 인한 위험성도 아직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고, 뇌전증 환자 보호자 중 칸나비디올의 부작용을 우려해 사용을 주저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 로저 초우 교수 연구진은 이러한 상황을 근거로 들어 이번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진은 1~6개월간 진행된 25건의 단기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 2303명의 치료 결과를 분석해 칸나비디올의 효과와 안전성을 평가했다. 전체 환자 중 64%는 신경병성 통증을 앓고 있었다. 해당 임상 시험들에서는 대체로 환자를 무작위로 나눠 특정 집단에는 칸나비디올이 함유된 치료제를 투여하고, 다른 집단에는 위약(가짜약)을 투여한 시험이다. 연구진을 THC 대비 칸나비디올의 비율에 따라 효과를 세부적으로 비교했다.
분석 결과, 칸나비디올 단독 성분이거나, 칸나비디올의 비율이 높은 제제는 통증 완화 효과가 거의 없었다. 이는 시중에서 ‘통증 완화’를 표방하는 칸나비디올 제제가 실제로는 근거가 부족함을 시사한다.
THC의 비율이 더 높은 일부 의료용 제제에서는 단기간 통증 감소 효과가 관찰되기도 했다. 다만, 이 역시 진통 효과는 통증 점수 10점 만점 기준 0.5~1점 수준에 불과했으며, 오히려 어지러움·졸림·메스꺼움 부작용 발생 위험이 증가했다. 효과 대비 감내해야 할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더 컸다는 의미다.
단, 연구진은 의료계가 대마초의 잠재적인 의학적 효능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번 연구에 포함된 의료 기록이 최대 6개월에 그쳤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장기적인 효과를 평가하기 위한 추가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구를 주도한 초우 교수는 "기존에는 칸나비디올이 THC와 달리 환각 효과가 없고 약효가 있을 것으로 여겨져 유망하다는 시선이 우세했지만, 이번 분석 결과 CBD는 통증에 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번 연구 목표는 사람들이 제품 사용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내과학 연보(Annals of Internal Medicine)'에 지난 23일(현지시간)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