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맥류 명의] 이재항 분당서울대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

구조 이상·고령 환자 흉복부 대동맥류, 기존 치료 적용에 한계
분당서울대병원 이재항 교수, 새로운 치료 대안 제시
해외에서 검증된 PMEG, 국내 적용 본격화

대동맥 일부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대동맥류는 '몸속의 시한폭탄'이라고 불린다. 터지는 순간 대량 출혈과 쇼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터지기 전에 대동맥류가 발견되면 대다수는 파열 위험을 크게 낮추는 치료를 할 수 있다. 다만, '어쩔 수 없이' 치료가 불가해 터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두고 봐야 하는 환자가 간혹 있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일반 스텐트(인조 철망) 시술이 불가한 해부학적 구조를 지닌 곳에 흉복부 대동맥류가 있으면서, 고령이라서 개복 수술이 위험한 환자다. '어쩔 수 없다'를 극복해 낸 의사가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이재항 교수는 "고령의 구조 이상 흉복부 대동맥류 환자를 만날 때마다 뚜렷한 치료법이 없던 것이 안타까웠다"며 "해외 학계에서 의사제 작환자맞춤형 스텐트 그라프트(PMEG)를 접하고, 국내 적용하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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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항 교수는 개복 수술이나 일반 스텐트 그라프트 시술을 적용하기 어려운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의사제작 환자맞춤형 스텐트 그라프트(PMEG)'를 국내 도입했다. /김지아 헬스조선 객원기자
흉복부 대동맥류 치료 어려운 환자 있어

흉부나 흉복부 대동맥은 구조가 복잡해, 이 부위에 대동맥류가 생긴 환자는 절반 가까이가 구조 이상으로 일반 스텐트 그라프트(인조혈관) 시술이 불가하다. 스텐트 그라프트는 스텐트를 그라프트로 덮은 것으로, 혈액이 그라프트 안으로만 흐르게 해 부푼 혈관 벽에 압력이 전달되지 않도록 막는다.

시술이 불가하면 복부를 절개해 부풀어 오른 대동맥을 잘라내고 그라프트로 연결하는 개복 수술을 주로 진행한다. 이 교수는 "분지로 뻗는 양쪽 콩팥 동맥에서 아래로 대동맥 10~15㎜ 구간이 있어야 일반 스텐트 그라프트를 끼워 넣을 수 있다"며 "이 공간이 없으면 개복 수술을 해야 하는데, 젊은 환자는 감당할 수 있지만 고령이거나 기저 질환이 있다면 대동맥류가 안 터지기만을 바라는 게 더 안전할 수 있다"고 했다.

이때 PMEG를 활용할 수 있다. PMEG는 환자 CT(컴퓨터단층촬영) 영상을 기반으로 환자 혈관 모양에 맞게 직접 제작할 수 있는 스텐트 그라프트다. 주로 스텐트 그라프트가 삽입되는 위치에서 뻗어나가는 분지 혈관들의 입구를 확인하고 구멍을 뚫는 식으로 제작된다. 이 교수는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수년 전부터 시행해 온 시술 기법인데, 아직 국내에서는 널리 사용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이 교수는 지난 2022년 PMEG 기법을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1년간 연수를 마치고, 국내 복귀 후 사용할 수 있는 재료와 장치를 도입하며 1~2년간 시스템 안정화를 거쳤다.


한편, 국내에 지금까지 PMEG가 들어오지 않은 이유는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의 개복 수술 성적이 매우 높아 맞춤형 스텐트 시술의 필요성이 비교적 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PMEG 치료 과정, 까다롭지만 도입 필요

PMEG 치료 과정은 상당히 복잡하다. 먼저 CT 촬영으로 환자의 혈관 모양을 분석해, 시술 전날 스텐트 설계도를 제작한다. 흉복부 대동맥류가 생기는 혈관 근처에는 네 개의 분지혈관이 있다. 콩팥 동맥에서 나가는 혈관 두 개(우신동맥, 좌신동맥)와 소장과 대장으로 가는 혈관 한 개(상장간막동맥) 그리고 간·위·비장으로 가는 동맥 한 개(복강동맥)다. 의료진은 여러 가지 데이터를 종합해 환자마다 다른 대동맥과 연결된 각 혈관 입구 위치와 각도를 추정한 스텐트 설계도를 직접 그린다. 수술 당일 환자가 마취하며 준비하는 사이, 멸균 장소인 수술장에서 전날 준비한 설계도에 맞춰 스텐트 그라프트에 구멍을 뚫는다. 환자 몸속에서 혈관 구멍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마킹 작업도 진행한다. 이후 일반 스텐트 그라프트 수술과 마찬가지로 대퇴동맥을 통해 PMEG를 넣고, 네 개의 분지 혈관과 스텐트 구멍 위치를 맞춰 조정한다. 혈관이 잘 흐르는지 확인하면 시술이 끝난다. 일반 스텐트 그라프트 시술은 보통 40분이면 마치는데, PMEG를 활용하면 짧게는 세시간에서 길게는 여섯 시간까지도 걸린다. 이재항 교수는 "쉽지 않은 치료지만, 일부 필요한 환자에게 치료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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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경아
보편화, 노력중… 기술 뒷받침 돼야

복잡한 만큼 국내 대부분의 PMEG 시술은 현재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10례가 넘는 시술을 진행했는데, 모두 좋은 성과를 거뒀다. 이재항 교수는 국내 보편화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최근 심장혈관흉부외과 학회에서 시술 사례를 발표했고, 여러 강의를 진행했다. 향후 3D 프린터와 AI를 이용해 설계도를 그리게 된다면 더 수월한 작업이 가능해 보편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교수는 무엇보다 빠른 치료를 당부했다. 대동맥류는 '조용한' 시한폭탄이라서, 증상이 거의 없어 알아채기 어렵다. 그는 "대동맥류는 건강검진 등으로 우연히 CT나 초음파를 찍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며 "알아채더라도 당장 사망으로 이어지는 질환은 아니어서 치료를 뒤로 미루는 환자가 많은데, 향후엔 치료가 더 어려워질 수 있으므로 주치의가 수술이나 시술을 권한다면 바로 받는 것을 권장한다"고 했다. 대동맥류는 주요 발병 원인이 동맥경화증이므로 고혈압, 고지혈증 등이 있는 사람은 증상이 없어도 복부 초음파 등으로 대동맥류가 없는지 확인해 보는 게 안전하다. 흡연 경력이 있는 65세 이상 남성, 가족력이 있는 사람 등도 검사를 고려할 수 있다.

<환자가 찾아가야할 명의>

대동맥류 치료의 관건, '시술·수술 모두 가능한 의료진'



대동맥류의 치료 방법이 두 가지다 보니, 모든 환자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분당서울대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이재항 교수는 "두 치료법 중 하나가 절대적으로 우수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환자 조건에 따라 최적의 치료법은 달라지므로, 시술과 수술을 모두 시행할 수 있고 필요시 하이브리드 시술까지 설계할 수 있는 의료진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효과만 놓고 보면 대동맥류를 완전히 제거해 향후 재발 우려가 현저히 낮아지는 '개복 수술'이 낫다. 또 구조적으로 스텐트를 넣기 어려운 곳에 대동맥류가 있다면, 역시 해당 부위를 모두 그라프트로 교체하는 개복 수술을 받는 것이 더 적합하다.

하지만 수술 부담이 커, 고령자나 심폐 질환자에게는 위험할 수 있다. 스텐트 시술은 개복 없이 작은 구멍만 내, 비교적 안전하다. 수술 시간이 짧고 회복이 상대적으로 빠르다.

간혹 스텐트 고정이 어렵거나, 고위험 환자지만 병변이 광범위해 개복 수술이 불가피할 때는 스텐트 시술과 개복 수술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치료가 필요하다. 이때 개복 수술과 스텐트 시술을 모두 경험한 의료진은 안전하고 장기적인 치료 전략을 제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