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이 폐암만큼 심각한 중증 COPD
급성 악화 시 심각한 폐기능 손상·사망 위험 증가
​고위험군 환자, 생물학적제제 사용 접근성 높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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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D 환자는 급성 악화를 겪으면 심각한 폐기능 손상 및 사망 위험이 증가하는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클립아트코리아
본격적인 한파가 시작됐다. 호흡기 건강을 돌볼 시기다. 아침저녁으로 기침과 가래가 심해지거나 가벼운 활동에도 숨이 차는 증상이 나타난다면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을 의심해야 한다. 초기에는 단순 노화나 감기로 오인하기 쉬운 COPD는 겨울철 차고 건조한 공기로 인해 증상이 급속히 악화될 수 있다. 조기 발견과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질병이다.

COPD는 전 세계 사망원인 3위를 차지하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흡연을 제외하면 폐암을 일으키는 최고 위험 요인이다. 그러나 여전히 질환 인지도는 단순한 노인성 질환 정도에 머물고 있다. 국내 40세 이상 성인 유병률은 12.7%, 65세 이상에서는 25.6%에 달하는 반면(2019년 기준), 질환을 인지하고 있는 환자 비율은 약 2.3%, 치료율은 1.2%에 그친다.

다행히 보건복지부는 내년 1월부터 56세 및 66세 대상 폐기능 검사를 국가검진 항목에 신규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COPD의 조기 발견과 적절한 관리에 대한 국가적 관심과 대응 수위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숨 쉬는 게 버거운 고통… 우울·불안 등으로 치료 사각지대 내몰려
COPD는 폐와 기관지가 서서히 망가지는 대표적인 만성 폐질환이다. 기관지가 점점 좁아져, 기본적인 숨 쉬기조차 버거워진다. 우려스러운 것은 폐 기능의 절반 이상이 손상되기 전까지 자각하기 어려워, 대부분 이미 병이 상당히 진행된 후에야 진단받는다는 점이다. 진단 시기가 늦어지는 데다 가장 강도 높은 흡입제를 포함한 3제 병합요법 치료만으로는 급성 악화 조절에 한계가 있어, 환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급성 악화'라는 치명적인 고비를 맞게 된다.

급성 악화는 COPD가 적절히 조절되지 않아 증상이 갑자기 심해지는 상태를 말한다. 이때 환자는 호흡곤란이 급격히 악화돼 평범한 일상조차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추가 치료제, 응급실 방문이나 입원 등이 필요한 심각한 상황에 이른다. 급성 악화가 발생하면 폐기능은 약 두 배로 손상되며, 급성 악화를 세 번 이상 겪은 환자는 급성 악화를 겪지 않은 환자에 비해 사망 위험이 4.3배 높아진다. 또한 중증 악화를 겪은 환자는 뇌졸중, 심근경색, 심부전 등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이 6배 증가할 만큼 치명적이다.

건국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문지용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COPD를 단순히 나이 들어 생기는 기침 정도로 가볍게 여기지만, 실상은 한번 증상이 나타나면 폐 기능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없고 악화될 경우 사망 위험까지 급격히 높이는 '침묵의 살인자'"라며 "급성 악화를 한 번이라도 겪은 환자들은 언제 또 숨이 막혀 쓰러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고 우울과 불안은 폐암 환자만큼 심하게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최근 발표된 세계만성폐쇄성폐질환기구(GOLD) 2026 가이드라인은 한 번의 중증 악화뿐 아니라 단 한 번의 중등증 악화에도 즉각적인 치료 강화를 강조했다. 문 교수는 "악화가 반복될수록 폐 기능은 영구적으로 손상되고 사망률 또한 증가하므로 첫 악화 발생 직후부터 적극적인 치료로 악화의 재발과 질환의 진행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10년 만에 '희망' 등장… 접근성에 한계 있어
문제는 흡입제 등 기존 치료만으로는 COPD 환자에게 치명적인 급성 악화 예방 효과는 제한적이어서, 전체 환자의 약 50%는 치료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조절되지 않아 반복적인 급성 악화의 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가운데 올해 3월, COPD 치료 영역 최초이자 유일한 생물학적제제인 ‘두필루맙’이 지난 3월 국내에 허가되며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의 길이 열렸다. 기관지 확장과 증상 완화에 초점을 맞췄던 기존 치료제와 달리, 근본적인 염증 기전에 초점을 맞춘 이 치료제는 연간 중등도 이상 급성 악화 위험을 최대 34% 줄이고, 폐 기능과 삶의 질 개선 효과를 보여 최신 진료지침에도 3제 복합요법으로도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환자들을 위한 옵션으로 소개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효능 효과를 인정해 미국 FDA에서는 COPD 치료제 최초로 해당 약제를 ‘획기적 치료제(Breakthrough Therapy)’로 지정하기도 했다.

다만 아직 국내에서는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되지 않아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은 제한적인 상황이다.

COPD 환자 김모씨는 질환으로 인해 오랜 기간 동안 숨쉬기조차 버거운 삶을 살아왔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숨이 턱까지 차올라 보기 민망할 정도로 헐떡거려야 했고, 밤이 되면 기침이 시작돼 새벽까지 멈추지 않아, 진이 빠져 식욕도 사라졌다. 어느 날 밤에는 기침과 함께 숨이 점점 막혀와 의식을 잃고 응급실에 실려가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생물학적제제로 치료를 시작하면서 김씨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방에서 화장실로 이동할 때도 숨이 차서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는데, 지금은 급할 때 횡단보도를 뛰어서 건널 정도로 상태가 극적으로 호전됐다. 본인이 환자였다는 사실 조차 잊을 만큼 체중도 회복되고 일상을 되찾았다. 김씨는 현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소망으로 치료제의 보험 적용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문지용 교수는 "환자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급성 악화에 대해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이 열린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긴 하나,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정작 치료가 절실한 중증 환자들이 비용 부담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환자 대다수가 은퇴한 고령층임을 감안하면 급여 지원 없이는 아무리 좋은 약도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급성 악화를 방치해 발생하는 반복적인 입원과 응급실 방문, 이에 따른 의료비와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효과적인 치료제를 조기에 투입하는 것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국가 재정과 가족의 부담을 줄이는 길이라는 게 문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환자의 삶의 질, 나아가 생명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치료 옵션에 대한 접근성 개선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