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약史] 용각산
<편집자 주>
우리는 일반의약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유명한 약이라면 효능·적응증 정도는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겁니다. 설사 모르더라도 약에 동봉된 사용설명서를 읽으면 됩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서, 효능·적응증 이외의 정보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이를테면 약 이름에 담긴 뜻이나, 약의 개발 비화, 약을 만든 인물 또는 회사에 대한 이야기 등등 말입니다. [우리 약史]가 이처럼 설명서에는 나와 있지 않은 이야기들을 들려드립니다. 약의 역사(史)뿐 아니라, 약을 개발한 회사(社)나 약과 관련된 다소 사(私)적인 이야기도 다룹니다.
우리는 일반의약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유명한 약이라면 효능·적응증 정도는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겁니다. 설사 모르더라도 약에 동봉된 사용설명서를 읽으면 됩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서, 효능·적응증 이외의 정보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이를테면 약 이름에 담긴 뜻이나, 약의 개발 비화, 약을 만든 인물 또는 회사에 대한 이야기 등등 말입니다. [우리 약史]가 이처럼 설명서에는 나와 있지 않은 이야기들을 들려드립니다. 약의 역사(史)뿐 아니라, 약을 개발한 회사(社)나 약과 관련된 다소 사(私)적인 이야기도 다룹니다.
1960년대 초 약국가에서는 ‘종로5가의 행인 다섯 중 하나는 보령약국 손님’이라는 말이 돌았다. 그 정도로 당시 보령약국은 인지도나 규모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1957년 종로의 작은 문방구 자리를 인수해 개업한 약국이 불과 5년여 만에 전국구 대형약국으로 자리 잡았으니, 가히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그런 보령약국이 본격적으로 제약업에 뛰어든 건 1963년 동영제약을 인수하면서다. 그로부터 60여년이 지난 지금 보령은 매출 1조원 규모(작년 기준)의 대형 제약사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 시작엔 ‘소리가 나지 않는 약(용각산의 유명 광고 카피)’ 용각산이 있었다. 용각산은 창업주 김승호 회장이 ‘보령제약’의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은 첫 제품으로, 어찌 보면 그간 보령이 선보인 수많은 제품들의 시초(始初)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2년 설득 끝에 기술 제휴… 1967년 ‘용각산’ 첫 출시
제약사업 시작 후 ‘오렌지 아스피린’과 항생제를 연이어 선보인 김승호 회장은 생약제제를 이용한 의약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국내 소비자들이 한약재를 선호한 데다, 원료 또한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한약방에서만 구할 수 있던 한약재를 양약처럼 제제·상품화한다면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약이 용각산이었다. 용각산은 일본 류카쿠산이 개발한 약으로, 1960년대부터 이미 국내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김 회장은 용각산을 생산하고자 기술 제휴에 나섰으나 쉽지 않았다. 류카쿠산이 변변한 생산 공장 하나 없는 신생 기업 보령제약에 기술을 이전해줄 리 없었다. 류카쿠산은 보령제약 측에 생산설비 현황과 기술 도입 후 신규 설치 설비, 생산시설 구축 가능 여부를 문의했고, 김승호 회장은 막 계약을 마친 허허벌판의 성수동 공장부지로 류카큐산 관계자들을 데려가 그곳에서 구상 중인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그렇게 1년여 동안 설득을 이어간 끝에 1966년 류카쿠산과 기술제휴 계약을 체결했고, 이듬해 국내에 용각산을 출시했다.
◇품질 제고, 공격적인 광고·마케팅… 매출 급증
오랜 노력 끝에 직접 제품을 제조해 선보였지만 시장 반응은 기대 이하였다. 당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국내산은 외국산보다 품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이 같은 인식을 바꾸기 위해 곧바로 품질 검사를 진행했고, 원제품과 차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소비자들이 직접 약효를 체험할 수 있도록 전국을 다니며 무료 샘플링을 나눠주면서 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다.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광고 전략 또한 공격적으로 펼쳤다. 산업화로 인한 공해의 심각성을 부각하는 한편, 가수나 교사 등 직접적인 소비자층을 겨냥한 광고를 연일 신문과 라디오 등을 통해 내보냈다. 당시 광고비로 너무 많은 금액을 지출해 광고비가 제품 매출액을 훨씬 웃돌 정도였다고 한다.
이 같은 전략에 힘입어 용각산은 1967년 말부터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1968년부터는 공장을 밤낮으로 가동해도 주문량을 맞추기 힘들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용각산을 발매하기 전까지 257만원(1965년), 584만원(1966년)에 머물렀던 보령제약의 매출은 1967년 1980만원, 1968년 9442만원까지 불어났다.
그런 보령약국이 본격적으로 제약업에 뛰어든 건 1963년 동영제약을 인수하면서다. 그로부터 60여년이 지난 지금 보령은 매출 1조원 규모(작년 기준)의 대형 제약사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 시작엔 ‘소리가 나지 않는 약(용각산의 유명 광고 카피)’ 용각산이 있었다. 용각산은 창업주 김승호 회장이 ‘보령제약’의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은 첫 제품으로, 어찌 보면 그간 보령이 선보인 수많은 제품들의 시초(始初)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2년 설득 끝에 기술 제휴… 1967년 ‘용각산’ 첫 출시
제약사업 시작 후 ‘오렌지 아스피린’과 항생제를 연이어 선보인 김승호 회장은 생약제제를 이용한 의약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국내 소비자들이 한약재를 선호한 데다, 원료 또한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한약방에서만 구할 수 있던 한약재를 양약처럼 제제·상품화한다면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약이 용각산이었다. 용각산은 일본 류카쿠산이 개발한 약으로, 1960년대부터 이미 국내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김 회장은 용각산을 생산하고자 기술 제휴에 나섰으나 쉽지 않았다. 류카쿠산이 변변한 생산 공장 하나 없는 신생 기업 보령제약에 기술을 이전해줄 리 없었다. 류카쿠산은 보령제약 측에 생산설비 현황과 기술 도입 후 신규 설치 설비, 생산시설 구축 가능 여부를 문의했고, 김승호 회장은 막 계약을 마친 허허벌판의 성수동 공장부지로 류카큐산 관계자들을 데려가 그곳에서 구상 중인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그렇게 1년여 동안 설득을 이어간 끝에 1966년 류카쿠산과 기술제휴 계약을 체결했고, 이듬해 국내에 용각산을 출시했다.
◇품질 제고, 공격적인 광고·마케팅… 매출 급증
오랜 노력 끝에 직접 제품을 제조해 선보였지만 시장 반응은 기대 이하였다. 당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국내산은 외국산보다 품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이 같은 인식을 바꾸기 위해 곧바로 품질 검사를 진행했고, 원제품과 차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소비자들이 직접 약효를 체험할 수 있도록 전국을 다니며 무료 샘플링을 나눠주면서 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다.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광고 전략 또한 공격적으로 펼쳤다. 산업화로 인한 공해의 심각성을 부각하는 한편, 가수나 교사 등 직접적인 소비자층을 겨냥한 광고를 연일 신문과 라디오 등을 통해 내보냈다. 당시 광고비로 너무 많은 금액을 지출해 광고비가 제품 매출액을 훨씬 웃돌 정도였다고 한다.
이 같은 전략에 힘입어 용각산은 1967년 말부터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1968년부터는 공장을 밤낮으로 가동해도 주문량을 맞추기 힘들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용각산을 발매하기 전까지 257만원(1965년), 584만원(1966년)에 머물렀던 보령제약의 매출은 1967년 1980만원, 1968년 9442만원까지 불어났다.
◇제네릭 없는 유일무이 브랜드… 팬데믹 거치며 한 번 더 성장
현재 ‘용각산’과 ‘용각산쿨’로 구성된 용각산 브랜드는 1967년 출시 후 60년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 보령의 대표 제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용각산은 제네릭 시장이 활성화된 국내 의약품 시장에서 동일성분·제제 제품이 없는 유일무이한 브랜드기도 하다. 용각산의 즉효성을 유도하는 미세분말 제조 기술은 일본 류카쿠산 외에 전세계에서 보령만이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다.
특히 용각산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한 단계 더 성장했다. 실제 용각산의 소비자 판매실적은 2019년 75억원에서 2024년 267억원(시장조사업체 아이큐비아 기준)으로 5년 사이 4배 가까이 늘었다. 2022년에는 오미크론 유행에 따른 ‘코로나19 셀프 재택치료’ 시행으로 진해거담제가 재택치료 상비약으로 분류되면서, 용각산 매출이 전년 대비 100억원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이후 일반의약품 기침제제 시장이 2019년 3348억원, 2020년 3231억원, 2021년 2811억원으로 하락세를 보인 것과 대비된다. 보령 관계자는 “제품의 품질과 활발한 광고마케팅을 앞세워 매년 꾸준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며 “일반의약품 기침제제 부문에서 시장점유율 30% 가량을 유지하며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현재 ‘용각산’과 ‘용각산쿨’로 구성된 용각산 브랜드는 1967년 출시 후 60년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 보령의 대표 제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용각산은 제네릭 시장이 활성화된 국내 의약품 시장에서 동일성분·제제 제품이 없는 유일무이한 브랜드기도 하다. 용각산의 즉효성을 유도하는 미세분말 제조 기술은 일본 류카쿠산 외에 전세계에서 보령만이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다.
특히 용각산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한 단계 더 성장했다. 실제 용각산의 소비자 판매실적은 2019년 75억원에서 2024년 267억원(시장조사업체 아이큐비아 기준)으로 5년 사이 4배 가까이 늘었다. 2022년에는 오미크론 유행에 따른 ‘코로나19 셀프 재택치료’ 시행으로 진해거담제가 재택치료 상비약으로 분류되면서, 용각산 매출이 전년 대비 100억원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이후 일반의약품 기침제제 시장이 2019년 3348억원, 2020년 3231억원, 2021년 2811억원으로 하락세를 보인 것과 대비된다. 보령 관계자는 “제품의 품질과 활발한 광고마케팅을 앞세워 매년 꾸준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며 “일반의약품 기침제제 부문에서 시장점유율 30% 가량을 유지하며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