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의 이것도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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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장기나 체스 같은 게임을 하고 있을 때 가장 얄미운 사람. 괜히 옆에서 “아니, 저기에 두면 되잖아! 그걸 몰라?”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마음 같아서는 “아, 좀!”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따져보니 맞는 말. 왜 훈수꾼에만 정답이 보이는 걸까?

우선, 믿고 싶지는 않겠지만 훈수꾼이 플레이어보다 더 나은 판단을 한다는 점은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2014년 워털루 대학교의 이고르 그로스만 교수는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보고했다. 참가자를 두 개의 집단으로 나눈 후, 한 집단에게는 본인의 연인이 바람을 피운 상황을, 다른 한 집단에게는 친구의 연인이 바람피운 상황을 상상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문제 해결을 위해 얼마나 지혜로운 방안을 찾아내는지 비교했다.

그 결과, 자신의 연인이 바람을 피운 상황을 상상한 집단은 감정에 매몰돼 편협한 사고를 보인 반면, 타인, 즉 친구 연인의 바람을 상상한 집단은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한다던지, 정보의 한계를 인정한다던지, 타협점을 찾으려 노력하는 등의 보다 지혜로운 모습을 보였다. 그로스만은 이런 결과를 ‘솔로몬의 역설’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는데, 솔로몬의 판결이라고 말할 정도로 지혜로웠던 솔로몬이 자신의 사생활은 엉망이었다는 점과 비슷하게 자신이 관여된 일에는 현명한 판단을 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하겠다.

이 결과를 잘 보면, 사실 훈수꾼이 더 잘 보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 즉 문제 상황에 처한 당사자의 상황 판단 및 문제 해결 능력이 저하되는 것이 문제인 셈이다. 문제 상황은 일반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들쑤셔놓는다. 공포를 포함한 강력한 정서가 발생되고, 결과적으로 논리적인 사고도 못하게 한다. 이러한 현상을 ‘편도체 납치(Amygdala Hijack)’라고 하는데, 정서를 담당하는 편도체가 논리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보다 먼저 반응해 사고의 주도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말한다. 사실 편도체 납치는 위기 상황에서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전략이다. 숲길을 가는데 앞쪽 수풀 속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면, 그 상황에서 전두엽을 사용해 수풀의 움직임 원인이 무엇인지 판단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공포라는 정서가 긴급 명령 ‘도망쳐!’를 외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편도체 납치 때문에 논리적인 사고가 힘들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시야 자체도 좁아진다. 말 그대로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터널 비전이 발생해버린다. 강력한 정서적 사건을 당하면 각성 수준이 지나치게 높아지고, 이 상황에서는 주변 정보를 받아들이는 주의 범위가 급격히 줄어든다. 시야가 좁아질수록 상황을 악화시키는 해법을 제안하기 일쑤다.


더 나아가, 문제 상황에서는 평소에 잘하던 것도 못하게 된다. 정서적 각성과 함께 ‘잘해야 한다’는 압박은 평상시에 무의식적으로 하던 행동도 하나하나 의식적으로 통제하려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의식적 통제는 숙련된 행동을 저하시킬 뿐이다. 예를 들어, 평상시에는 계단을 눈감고도 잘 내려가면서, ‘미끄러우니 조심해’라는 말을 들으면 실제로 계단이 미끄럽지 않아도 지나치게 발걸음에 신경을 써 발이 꼬이게 되는 것과 같다.

훈수꾼의 능력이 더 대단한 것이 아니다. 단지 내가 스스로 상황과 정서에 함몰돼 제대로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위기라고 생각되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 한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에게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을 떠올리게 했는데, 한 집단에서는 당시 상황에 몰입해 1인칭 시점에서 체험하듯 회상하도록 하였고, 다른 한 집단에서는 마치 벽에 붙은 파리처럼 3인칭 시점에서 그 사건을 관찰하듯 회상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1인칭 집단에서는 당시의 분노와 슬픔이 재현돼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3인칭 집단에서는 사건을 훨씬 차분하게 바라보고 그 원인을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이와 같은 현상을 연구자들은 ‘벽에 붙은 파리 효과(Fly-on-the-wall effect)’라 명명했다. 본인의 기억이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제 3자의 입장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훨씬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셈이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이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도 이런 현상을 내부 관점과 외부 관점을 빌려 설명했다. 우리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 자신의 상황을 유독 특별한 상황으로 여기며 눈앞의 정보에만 몰입하는 내부 관점으로 상황을 해석하곤 한다. 예를 들면, 새로 치킨 가게를 오픈하는데 자신의 요리 실력, 자신이 고생 끝에 스스로 사장이 됐다는 서사, 근사하게 차린 인테리어 등에 집중해서 성공의 가능성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게 된다. 하지만 외부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보다는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다른 사람들의 사례에 집중해 해석한다. 예를 들면, 치킨 자영업의 창업 3년 내 폐업률, 가게 주변에 있는 치킨집의 수와 평균 매출, 자신의 조리법과 다른 치킨 가게 조리법 간의 차이점 및 장·단점 등에 집중해서 자신의 성공률을 분석하는 방식이다. 어떤 방식이 더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지는 명확하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 없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로 걸어 나가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자신의 시각에 갇혔을 때의 선택은 현명한 방안이 아닐 수 있다. 최대한 나의 관점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시각에서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때에 따라선 훈수꾼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도 필요하다. ‘그것도 몰라?’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훈수꾼의 얼굴이 얄미워도, 보다 나은 선택을 위해서는 그런 정서적인 반응은 내려놓고, 최대한 객관적인 그들의 시각만을 취하는 것이 삶의 지혜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