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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불안제로는 주로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약물을 사용한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만나던 연인과의 이별이나, 가족·반려동물과의 사별을 쉽게 이겨내지 못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항불안제'를 처방받아 먹는 것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복용을 결정하기 전, 종종 '한 번 먹으면 평생 못 끊는 건 아닐지', '약을 먹고 머리가 나빠지는 건 아닐지' 등을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의료진들은 "의사의 처방 하에 단기간 정해진 용량을 복용하는 것은 안전하다"고 말한다.

◇수면 장애·각성 심한 환자는 사용 필요
항불안제는 즉각적인 불안 증상 완화를 목표로 쓰는 약이다. 복용 후 30분에서 한 시간 이내에 효과가 나타나며, 급격한 불안이나 신체적 긴장·두근거림 등을 빠르게 가라앉혀주는 '소화기' 같은 역할을 한다. 주로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약제를 쓴다.

이는 증상 완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뇌 내 신경전달물질 균형을 맞춰 근본 치료를 도모하는 항우울제와 다르다. 항우울제의 경우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최소 2~4주의 시간이 걸리지만, 장기적으로 불안·우울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소방차'의 역할에 더 가깝다.

항불안제는 주로 불안으로 인해 수면 리듬이 완전히 파괴됐거나, 일상 업무나 학업이 불가능할 정도로 과도한 각성 상태가 지속되는 환자들에게 쓰인다. 급성 애도 반응(큰 상실 이후 수일 내에 절망·분노·멍함 등 급격한 정서적 충격을 경험하는 현상)으로 수면이 심하게 끊기고 일상 유지가 어려운 경우에도 짧게 사해 신체적 긴장을 낮춰 회복을 돕기도 한다. 무조건 참기보다는 안전과 기능을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건석 교수는 "스스로의 의지로 불안을 통제하려고 노력하다가 실패 경험이 누적되면 무력감이 심해지고 증상이 만성화될 수 있다"며 "특히 공황발작처럼 예기치 못한 신체 증상이 동반되거나, 며칠째 잠을 못 자 예민해진 상태라면 약물의 도움을 받아 생체 리듬을 빠르게 회복하는 것이 장기적인 예후에도 더 좋다"고 말했다.

◇중독·인지 저하 우려 있지만… "의료진 지시하에 복용은 안전"
항불안제는 의존성에 대한 논란이 있는 '향정신성의약품'이다 보니 환자들이 복용 전 주저하거나 궁금해 하는 점이 많은 약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항불안제를 조제하고 복약지도하는 약사들은 항불안제를 처방받아 온 환자들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는다. 편한약국 엄준철 약사(성균관대 약학대학 겸임교수)는 "항불안제는 먹었을 때만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불안 증상 자체가 약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며 "복약지도를 할 때 일부 환자들은 약을 먹으면 어지럽거나 졸린지, 중독성이 있는지, 심지어는 약을 더 많이 용량을 높여 처방해줄 수 있는지를 묻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히 환자들이 항불안제 복용을 앞두고 가장 많이 걱정하는 점은 '한 번 먹으면 평생 못 끊는 것 아닌가'와 같은 의존성·중독 문제다. 이에 대해서 의료진들은 약에 대해 와전된 부분이 있다고 설명한다. 의존성은 장기 복용 시의 이야기로, 보통 임의로 용량을 늘리거나, 수개월 이상 장기 복용할 때 발생할 위험이 높아진다. 급성 스트레스 상황에서 2~4주 이내로 증상 조절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에는 내성이나 의존성이 생길 확률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들이 또 한 가지 우려하는 점은 '약을 먹으면 머리가 나빠지거나 바보가 된다'는 속설이다. 이 역시 오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건석 교수는 "치료적 목적으로 조절해 사용하는 약물은 마약과 다르다"며 "약물로 인한 인지 기능 저하는 대부분 일시적인 진정 작용일 뿐, 영구적인 뇌 손상을 일으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오래 먹을 때는 주의 필요… 술과 복용 금물
항불안제는 짧게 먹을 때와 달리 오래 먹을 경우 내성(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 더 많은 양의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나 의존성이 생길 수 있다. 이에 최소 유효 용량으로 최단 기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건석 교수는 "구체적인 기준은 환자마다 다르지만, 통상적으로는 급성기 증상을 조절하는 2~4주 내 사용을 권장한다"며 "증상이 호전되면 즉시 감량을 고려하고, 유지 치료가 필요할 때는 의존성이 낮은 항우울제 등으로 약을 바꾸는 전략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환자가 임의로 약을 중단하는 것도 권장되지 않는다. 약물을 갑자기 중단하면 불안이 이전보다 더 심해지는 '반동 불안'이나 불면, 손 떨림 같은 금단 증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약을 끊을 때는 담당 의사와 상의하여 용량을 서서히 줄여가며 몸이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한다. 며칠 간격으로 용량을 조금씩 줄이거나, 복용 간격을 늘리는 방식으로 천천히 중단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와 함께 상담·인지행동치료 등 비약물요법을 병행하는 것도 불안 증상의 재발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주로 복식호흡이나 근육이완법을 평소에 익혀둬 약물 없이도 스스로 불안을 조절하는 힘을 키워주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특히 약을 먹을 때 술과 약을 같이 먹어서는 안 된다. 술과 항불안제는 모두 중추신경계를 억제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같이 복용할 경우 진정 작용이 과도해져 기억력 저하나 낙상, 심한 경우 호흠 억제와 같은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어서다. 엄준철 약사는 "항불안제와 술을 비슷한 시간에 복용할 경우 술이 훨씬 더 빠르고 심하게 취할 우려가 있어 함께 먹지 말아야 한다"며 "감기약이나 알레르기약처럼 졸음을 유발하는 약 또한 항불안제와 상호작용이 큰 편이니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커피나 에너지드링크처럼 카페인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음료도 주의해야 한다. 카페인이 교감신경을 흥분시켜 불안을 유발해 항불안제의 진정 효과를 떨어뜨릴 우려가 있어서다. 특히 커피의 경우 항불안제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불안을 더 심하게 만들 위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