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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더-윌리 증후군 명의' 인하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수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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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수진 교수/사진=인하대병원 제공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전자가 작동하지 않아 음식을 먹고자 하는 욕구를 쉽게 끊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이들은 '프래더-윌리 증후군(PWS)' 환자로, 식욕 조절에 실패해 중증 비만과 합병증 위험을 평생 안고 산다. 성인기 비만 합병증을 막고 정상적인 일상을 살기 위해서는 꾸준한 성장호르몬 치료뿐 아니라 음식 제한·규칙적인 운동 등으로 구성된 행동치료를 받아야 한다.

최근에는 식욕을 조절할 수 있는 약제의 임상 시험도 시작을 앞두고 있어, 환자들의 치료 환경이 조금씩 좋아질 전망이다. 이에 의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향후 성장호르몬·행동치료와 함께 식욕을 억제하는 치료도 병행하면 치료 성과를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인하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수진 교수를 만나 프래더-윌리 증후군의 치료법과 향후 치료 환경의 변화 가능성 등에 대해 들었다.

-질환의 유전적 특징은?
"유전 방식이 특이하다. 부모 중 한 명에게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물려받는 유전 질환과 달리, 프래더-윌리 증후군은 양쪽 부모에게 정상적인 15번 염색체를 하나씩 물려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쪽 유전자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도 발생한다. 주요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아버지 염색체에 일부 결실이 있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어머니의 염색체가 두 장인 경우(모성 이염색체)와 아버지 쪽 염색체가 제대로 켜지지 않는 '각인 조절 부위 이상'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정상 유전자를 물려받아도 발생할 수 있다 보니 태아 때 진단하기가 쉽지 않다.“

-15번 유전자의 역할은?
"머리에 있는 시상하부 기능과 관련이 있다. 시상하부는 사람의 식욕, 체온, 성장·성호르몬, 수면 등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데, 프래더-윌리 증후군 환아는 이 영역의 발달과 기능이 선천적으로 떨어져 있다."

-국내 환자 수는 어느 정도인가?
"발생률이 1만~1만5000명당 한 명 정도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아이들이 30만명 좀 안 되게 태어나는 것을 고려하면, 10~30명의 새로운 환자가 생기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가장 흔한 증상은?
"보통 신생아 때는 몸에 힘이 없고 처지고, 모유·분유를 잘 먹지 못해서 오히려 몸무게가 잘 늘지 않는다. 남자 아이의 경우 고환이 내려오지 않는 '잠복고환'이 자주 동반된다. 2~4세 시기에는 또래에 비해 발달이 확실히 느리지만 그 외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어 발견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다 4~6세 이후, 특히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식욕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배부름을 잘 못 느끼다 보니 먹을 것을 계속 찾고, 집에 숨겨둔 음식을 찾아 먹기도 한다.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교사나 친구의 과자를 훔쳐 먹거나 쓰레기통을 뒤지는 경우도 있으며, 타인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에게 음식을 사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대개 키가 작고 뚱뚱해지며, 언어·사고 발달도 많이 늦어진다."

-일반 소아비만과 무엇이 다른가?
"첫돌 전까지 모유·분유를 잘 빨아먹지 못하다 보니 몸무게가 잘 늘지 않는다. 이때 아이가 심하게 늘어지는, 즉 '저긴장 상태'를 보이면 질환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출생 이후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이러한 증상이 특별한 원인 없이 나타난다면 조기에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는 경우가 많아져 진단 시기가 많이 앞당겨졌다."

-진단과 치료는 어떻게 이뤄지나?
"특이한 유전 양식을 가지기 때문에 일반적인 염색체·유전자 검사로는 진단하기 어렵고, 'DNA 메틸화 검사'라는 유전자 검사를 거쳐 진단할 수 있다. 필요시 염색체 미세결실, 모성 이염색체 여부 등을 추가로 확인해 명확한 기전을 구분할 수 있다. 프래더-윌리 증후군으로 진단받은 아이들은 성장호르몬 치료를 고려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정 기준에 따라 만 2세 이상 소아부터 보험급여가 적용되나, 생후 3~6개월부터 치료를 시작하는 게 이점이 크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기간에는 보통 보호자들이 직접 비용을 부담하고 치료받기도 한다.

-어릴 때 치료받지 못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소아·청소년기에는 통제되지 않는 과식으로 인해 중증 비만이 발생하고, 합병증으로 2형 당뇨병·지방간·고혈압·고지혈증·척추측만증·수면무호흡증·관절 문제 등을 겪을 수 있다. 발달이 늦어지고 학습 장애도 심해지며, 분노 폭발·고집 외에도 손톱 주변 피부를 피가 날 정도로 뜯는 강박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병이 성인기까지 이어지면 당뇨병·심혈관 질환·수면무호흡증·호흡 부전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커지고, 골밀도 감소로 인해 골절이나 척추 변형을 겪을 수 있다. 이차성징이 잘 나타나지 않거나 불임 문제도 겪을 수 있으며, 정신과적 문제도 함께 나타날 수 있다. 반대로 영아기부터 체계적으로 개입하면 체형·근력·발달·행동 모두 훨씬 안정된 경과를 보이고, 성인기 합병증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있다."

-성인기 비만으로도 이어질 것 같은데?
"소아비만이 생긴 프래더-윌리 증후군 환아 중 상당수가 성인기에도 중등도 이상의 비만으로 이어진다. 여러 연구에서 성인 프래더-윌리 증후군 환자의 70~80%가 비만이라는 보고가 있으며, 그로 인한 2형 당뇨병·수면무호흡증·심혈관 질환 위험이 증가한다. 단, 전체 소아비만 환자 중 프래더-윌리 증후군 환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적기 때문에 소아비만이나 합병증 문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보호자들이 가장 신경 써야 할 점은?
"환경 관리가 치료의 절반이다. 집·학교·공공시설 등에서 음식 접근을 물리적으로 제한해야 한다. 아이의 눈앞에 음식이 보이지 않게끔 냉장고와 음식을 보관하는 찬장에 자물쇠를 다는 것도 방법이다. 또한, 식사 시간·양을 매일 정해 두고, 걷기·운동·재활 치료 등 하루 활동량을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 이때 말로만 가르치기보다는 시간표처럼 눈으로 볼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주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스스로 절제해 보라"고 가르치는 방식은 환아의 뇌 특성을 고려할 때 거의 불가능한 요구다. 단, 규칙이 너무 자주 바뀌면 불안·행동 문제가 악화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왜 현재 표준 치료로 성장호르몬제가 쓰이나?
"성장호르몬이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일반 아이와 똑같은 양의 음식을 먹어도 살이 더 찌는 경향이 있다. 특히 성장호르몬은 키도 키우지만, 근육을 키우고 지방을 건강한 지방으로 바꿔 에너지 대사율을 높이는 역할도 한다. 먹은 음식이 에너지로 쓰이게 해 줘야 하지만, 에너지로 쓰지 못하다 보니 대부분이 살이 된다. 성장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환아들의 저신장 문제를 개선과 함께 근육·운동량 증가와 체지방 감소에도 도움이 된다는 보고가 있고, 이는 아이의 자존감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성장호르몬 치료는 언제까지 필요한가?
"성장판이 닫힐 때까지 계속 치료하며, 일부는 닫힌 후 성인이 됐을 때도 성장호르몬이 부족하다는 것이 검사로 증명되면 치료를 계속하기도 한다. 실제로 성장호르몬은 성인기에도 계속 나오는 호르몬으로, 키 외에도 근육이나 지방의 분포를 개선하고 에너지 대사를 높이는 작용도 있다."

-행동치료도 병행한다고 들었다. 어떤 역할을 하는가?
"구조화된 일과표나 보상 체계 등을 사용한다. 이를 사용하면 식사 전후 불안, 분노, 고집·강백 행동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보호자의 교육을 통해 규칙을 일관되게 지키는 방법과 갈등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약만으로 해결되는 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성장호르몬과 환경·행동치료, 가족 내 교육이 한 묶음이라고 보면 된다."

-행동치료는 평생 해야 하는지?
"그렇다. 특히 행동치료는 일찍 시작할수록, 성인기에도 꾸준히 할수록 중장기 예후가 크게 달라진다. 임상에서 만나는 20살의 환자들을 예로 들면, 행동치료를 잘 받은 환자들은 혼자서도 일상 외래 진료가 가능하고, 아르바이트 같은 경제활동도 어느 정도 할 수 있고, 당뇨병 없이 일반 성인처럼 건강하게 생활한다. 반면 행동치료를 잘 받지 않은 환자들은 체중이 너무 높아 쉽게 움직이지 못하거나, 집에서 종일 보호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최근 비만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는 'GLP-1' 계열 약제는 사용이 가능한가?
"삭센다(1일 1회 주사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다른 일반 비만 환자들과 비교하면 약의 효과가 높지는 않다. '국제 프래더-윌리 증후군 협회'라는 기관이 있는데, 그 기관에서는 이 계열 약제가 환자들에게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다는 성명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위고비(주 1회 주사제)는 국내에서 청소년에 승인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논하기 어렵다."

-효과가 떨어지는 이유는 추정할 수 있나?
"GLP-1 호르몬은 장에서 나오는 호르몬인 반면, 아이들의 식욕을 조절하는 호르몬은 머리에서부터 나온다. 따라서 이를 차단하는 기전의 약이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

-지난 3월 FDA의 승인을 받은 약이 있다는데?
"‘바이캇(VYKAT-XR, 디아족사이드 콜린)’이라는 약으로, 미국에서 4세 이상 환자들에게 승인됐다. 시상하부나 췌장에 작용하는 ‘ATP 민감 칼륨 통로’를 조절해 식욕을 억제한다. 사실 원래는 선천성 고인슐린혈증 환아 치료제로 개발됐으나, 프래더-윌리 증후군 환아의 식욕 조절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입증된 상태다. 정확한 기전은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다만, 다모증(털이 많이 나는 것) 부작용이 있고, 고인슐린혈증 환자의 혈당을 올리는 방식으로 작용하다 보니 고혈당 부작용도 있기는 하다."

-국내 도입 가능성은?
"우리나라는 미국과 유럽에서 모두 승인되고 나서도 조금 더 늦게 들어오는 경향이 있다. 현재까지 미국에서만 승인됐고, 유럽에서는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 도입될지는 미지수고, 좀 더 오래 걸릴 가능성도 있다. 대신, 지금까지 프래더-윌리 증후군 환자의 식욕을 조절하는 약이 승인된 사례가 하나도 없었다는 점에서 이번 FDA 승인은 의의가 있다."

-연구 중인 다른 치료제는 없나?
"한 가지 약이 더 있다(ARD-101). ‘장내 쓴맛 수용체(TAS2R)’에 작용해 장 내 여러 포만 호르몬의 분비를 유도하는 약으로, 장과 연결돼 있는 미주신경-시상하부 축을 활용해 전신 작용 없이 장 쪽에서만 효과를 낸다. 이를 통해 식욕을 억제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직 환자 모집 전이지만, ‘HERO’라는 이름으로 내년 초부터 13세 이상 프래더-윌리 증후군 환자를 대상으로 글로벌 임상을 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인하대병원, 아주대병원, 삼성서울병원이 연구에 참여한다."

-보호자들의 소통 창구도 있나?
"소통 기회를 마련하고자 2019년부터 1년에 한 번 자조모임을 열고 있다. 보호자나 환자가 알아야 할 부분을 전문가가 직접 교육하고, 아이를 관리하면서 겪는 힘든 점을 의료진 또는 다른 보호자들과 이야기하는 자리다.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환자들도 가끔씩 온다. 모임에 오는 보호자들은 아이들의 식욕 조절이 상상 이상으로 힘들다고 토로하며 해결 방안을 묻곤 한다. 올해는 오는 12일 새로운 임상시험에 대해 소개하고, 영양 관리법과 정신건강의학과 관련 문제에 대한 강연도 진행할 예정이다."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졸업 이후 자립을 도와줄 수 있는 지원책이 필요하다.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던 아이들이 졸업 후 적응하지 못해 오히려 증상이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 졸업 후 사회에 나가서 완전히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보호자의 힘만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국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끝으로 우리 사회에 한마디?
"환아들을 의지가 없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러한 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질환에 대한 인식도 과거보다는 많이 개선된 편이고, 식욕 억제가 가능한 신약 임상 시험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치료 환경이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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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수진 교수/사진=인하대병원 제공
-김수진 교수는…
연세대 원주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성균관대 의과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인턴부터 시작해 소아청소년과 임상조교수로 근무했으며, 이후 국립암센터(소아암센터)와 명지병원에서 전문의로 근무했다. 현재는 인하대병원 소아청소년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 교수는 임상유전학 인증을 받은 전문의로, 소아 유전성 대사질환과 함께 소아 신장·내분비질환을 중심으로 진료한다. 경인지역 희귀질환 전문기관 부단장으로도 역임 중이며, 지난달부터는 인하대병원 희귀질환관리사업단 부단장으로서 프래더-윌리 증후군 어울림 교실을 비롯한 여러 소아 희귀질환 관련 자조모임·심포지엄·진단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