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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공격, 생존 위협 등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되면 몸에서 투쟁도피반응이 일어난다. /사진=MBC 뉴스 캡처
국내 우주 수송 능력 확보를 위해 독자 개발한 한국형발사체 ‘누리호’가 4차 발사에 성공한 가운데, 성공에 기여한 김대래 나로우주센터장의 인터뷰가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28일 MBC는누리호 발사 당시 전남 고흥 나로우주 발사지휘센터 현장 상황과 김대래 나로우주센터장과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이 영상에서 김 센터장은 누리호 발사 전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긴장한 모습을 보이다가, 발사와 동시에 긴장이 풀려 쓰러지듯 의자에 기댔다. 이와 관련해 김 센터장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며 “저도 그 영상을 보긴 했는데, 제가 그렇게 몸부림쳤는지 나중에 알았다”고 했다.

이러한 모습에 누리꾼들은 “저분들의 스트레스가 화면을 뚫고 느껴진다”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셨을지” “심신의 기력을 다 쏟은 연구진의 열정과 노고에 감사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김 센터장처럼 극도의 긴장·흥분 상황에 놓이면 나중에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가 뭘까?


인체의 ‘투쟁도피반응(Fight-or-flight response)’때문이다. 외부 공격, 생존 위협 등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되면 심박수가 증가하거나 동공이 확대되는 등 몸에서 다양한 생리 반응이 일어난다. 특히, 뇌가 위협을 감지하면 편도체가 즉시 활성화되고 아드레날린이나 코르티솔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급격히 분비된다. 이때 뇌는 생존을 우선해 혈류를 의사결정이나 기억을 담당하는 전두엽 대신 근육과 심장으로 돌린다. 급성 스트레스가 전두엽 피질의 기능을 억제해 작업기억과 판단 기능이 일시적으로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또한, 스트레스 호르몬의 과다 분비는 기억력을 관장하는 해마의 활동을 직접적으로 저해한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코르티솔 농도가 짧은 시간 내 급상승하면 해마의 기억 저장 과정에 문제가 발생해 사건을 경험하더라도 그게 기억으로는 저장되지 않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김 센터장이 발사 직전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고 나중에 영상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단순히 개인의 건강 문제가 아니라, 생물학적 생존 반응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뇌가 순간적으로 생존 모드로 전환되면서 당시의 구체적 감각이나 행동, 정서가 기억으로 저장되지 않은 것이다.

한편, 이처럼 충격이나 긴장이 극도로 심한 상황이 반복되거나 오래 지속되면 질환으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급성 스트레스 자체는 일시적 생리 반응이지만, 스트레스 호르몬이 지속적으로 높게 유지되면 해마와 전두엽 기능이 저하돼 기억 장애, 불안 장애,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단일 사건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기억 공백은 대부분 자연스러운 인체 반응으로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