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이정표]
누구나 마음의 병을 겪을 수 있지만 쉽게 털어놓기 힘들고 때론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어려움을 겪는다. 헬스조선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강준 교수의 칼럼을 연재해 ‘읽으면서 치유되는 마음의 의학’을 독자와 나누려 한다. 정신건강 문제를 풀어내고 치유와 회복의 길을 제시한다.(편집자주)
치매는 기억이 서서히 스러져 가는 병이지만 치매를 다룬 영화 ‘스틸 앨리스’는 기억보다 자아의 부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가 마음에 남는 이유는 단순히 병의 과정을 묘사해서가 아니라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인간의 흔적을 비추었기 때문이다.
2015년 개봉작 ‘스틸 앨리스’에서 언어학 교수였던 앨리스 하울랜드는 조기 발병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고 점차 언어와 기억, 그리고 자아를 잃어간다. 그녀에게 언어의 상실은 곧 자아 붕괴를 의미했다. 말이 흐려지면서 사고의 연결이 끊기고 결국 자신이 누구였는지조차 잊게 된다. 치매는 단순히 신경세포의 손상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병이다. 나를 구성하던 기억의 조각들이 흩어져 버리는 내 존재의 해체 과정이기도 하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치매 환자에게 “당신은 치매입니다”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 말 한마디가 ‘자신’이라는 세계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기억력이 조금 떨어졌지만 더 나빠지지 않게 관리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환자가 여전히 ‘나’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지켜주는 일이 치료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치매 초기 환자는 흔히 합리화나 부정의 방어기제를 쓴다. “요즘 좀 피곤해서 그래”, “무슨 치매... 난 그런 것과 거리가 멀어”라며 기억 상실이라는 현실을 회피한다. 그러나 기억의 틈이 커지면 자존감이 무너지고 수치심이 그 자리를 채운다. 그때 필요한 것은 약이 아니라 존중이다. “왜 이것도 기억 못 해요?” 대신 “괜찮아요 메모해두면 되죠”라는 지지적인 태도가 환자의 남은 기능을 지켜줄 수 있다. 인간의 뇌는 따뜻한 관계 속에서 여전히 반응하고 적응한다.
영화 속 앨리스의 가족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병을 받아들인다. 남편은 사랑하지만 점점 거리를 두고 큰딸은 냉정하게 유전의 두려움을 응시한다. 의대생인 아들은 엄마를 환자로 바라본다. 그래도 막내딸 리디아만은 끝까지 곁을 지킨다. 리디아는 엄마를 환자가 아닌 ‘엄마’로 대했고 그 감정적 연결 덕분에 앨리스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 남을 수 있었다. 실제로 치매 환자가 퇴행되면 감정적으로 더욱 민감해지기 때문에 리디아처럼 수용적이고 공감적인 인물에게 더 의존하게 된다. 실제로 환자들의 가족을 봐도 치매 가족 중에는 자연스럽게 리디아와 같은 역할을 맡게 되는 사람이 생긴다. 문제는 그 한 사람이 감정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점점 더 지쳐간다는 점이다. 간병하는 가족은 리디아처럼 자신과 환자 사이에서 삶의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간병의 부담이 한 사람에게 쏠리지 않도록 가족들이 역할을 나누고 함께 짊어져야 한다.
치매 환자를 돌보다가 나타나는 감정이 격해지고 우울해지는 감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사랑과 분노, 헌신과 피로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감정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다, 병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라고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환자를 이해하려는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
앨리스가 자신의 병이 심해지기 전에 죽으려고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슬픔을 자아낸다. 치매 환자들이 정신이 돌아올 때 영화에서처럼 자살 충동을 보일 수 있기에 그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알아채고 보듬어주는 돌봄이 필요하다. 환자가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해주고 다시 사는 선택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스틸 앨리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리디아가 책을 읽어주며 “무엇에 대해 이야기했는지 기억나요?” 묻자, 앨리스는 미소를 지으며 “사랑”이라고 답한다. 이 짧은 한마디가 기억은 인간의 기능이지만 사랑은 인간의 본질임을 일깨운다. 이 영화는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으로 존재하는지를 묻는다. 결국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건 나를 기억해주고 지지해주는 ‘관계’이다. 치매는 한 사람의 병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을 함께 겪는 가족 모두의 병이다. 그 여정을 함께 하는 환자와 헌신하는 모든 가족에게 존경과 지지를 보낸다.
만약 내가 치매에 걸린다면 끝까지 나를 기억해줄 그 한 사람을 기억하고 싶다.
치매는 기억이 서서히 스러져 가는 병이지만 치매를 다룬 영화 ‘스틸 앨리스’는 기억보다 자아의 부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가 마음에 남는 이유는 단순히 병의 과정을 묘사해서가 아니라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인간의 흔적을 비추었기 때문이다.
2015년 개봉작 ‘스틸 앨리스’에서 언어학 교수였던 앨리스 하울랜드는 조기 발병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고 점차 언어와 기억, 그리고 자아를 잃어간다. 그녀에게 언어의 상실은 곧 자아 붕괴를 의미했다. 말이 흐려지면서 사고의 연결이 끊기고 결국 자신이 누구였는지조차 잊게 된다. 치매는 단순히 신경세포의 손상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병이다. 나를 구성하던 기억의 조각들이 흩어져 버리는 내 존재의 해체 과정이기도 하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치매 환자에게 “당신은 치매입니다”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 말 한마디가 ‘자신’이라는 세계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기억력이 조금 떨어졌지만 더 나빠지지 않게 관리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환자가 여전히 ‘나’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지켜주는 일이 치료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치매 초기 환자는 흔히 합리화나 부정의 방어기제를 쓴다. “요즘 좀 피곤해서 그래”, “무슨 치매... 난 그런 것과 거리가 멀어”라며 기억 상실이라는 현실을 회피한다. 그러나 기억의 틈이 커지면 자존감이 무너지고 수치심이 그 자리를 채운다. 그때 필요한 것은 약이 아니라 존중이다. “왜 이것도 기억 못 해요?” 대신 “괜찮아요 메모해두면 되죠”라는 지지적인 태도가 환자의 남은 기능을 지켜줄 수 있다. 인간의 뇌는 따뜻한 관계 속에서 여전히 반응하고 적응한다.
영화 속 앨리스의 가족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병을 받아들인다. 남편은 사랑하지만 점점 거리를 두고 큰딸은 냉정하게 유전의 두려움을 응시한다. 의대생인 아들은 엄마를 환자로 바라본다. 그래도 막내딸 리디아만은 끝까지 곁을 지킨다. 리디아는 엄마를 환자가 아닌 ‘엄마’로 대했고 그 감정적 연결 덕분에 앨리스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 남을 수 있었다. 실제로 치매 환자가 퇴행되면 감정적으로 더욱 민감해지기 때문에 리디아처럼 수용적이고 공감적인 인물에게 더 의존하게 된다. 실제로 환자들의 가족을 봐도 치매 가족 중에는 자연스럽게 리디아와 같은 역할을 맡게 되는 사람이 생긴다. 문제는 그 한 사람이 감정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점점 더 지쳐간다는 점이다. 간병하는 가족은 리디아처럼 자신과 환자 사이에서 삶의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간병의 부담이 한 사람에게 쏠리지 않도록 가족들이 역할을 나누고 함께 짊어져야 한다.
치매 환자를 돌보다가 나타나는 감정이 격해지고 우울해지는 감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사랑과 분노, 헌신과 피로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감정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다, 병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라고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환자를 이해하려는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
앨리스가 자신의 병이 심해지기 전에 죽으려고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슬픔을 자아낸다. 치매 환자들이 정신이 돌아올 때 영화에서처럼 자살 충동을 보일 수 있기에 그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알아채고 보듬어주는 돌봄이 필요하다. 환자가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해주고 다시 사는 선택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스틸 앨리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리디아가 책을 읽어주며 “무엇에 대해 이야기했는지 기억나요?” 묻자, 앨리스는 미소를 지으며 “사랑”이라고 답한다. 이 짧은 한마디가 기억은 인간의 기능이지만 사랑은 인간의 본질임을 일깨운다. 이 영화는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으로 존재하는지를 묻는다. 결국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건 나를 기억해주고 지지해주는 ‘관계’이다. 치매는 한 사람의 병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을 함께 겪는 가족 모두의 병이다. 그 여정을 함께 하는 환자와 헌신하는 모든 가족에게 존경과 지지를 보낸다.
만약 내가 치매에 걸린다면 끝까지 나를 기억해줄 그 한 사람을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