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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경·만성질환 겹친 중장년 여성은 수면장애에 취약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수면장애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달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수면장애로 진료받은 환자는 130만8383명으로 4년 전보다 26% 증가했다. 고령화와 스트레스 요인이 겹치면서 수면 문제로 병원을 찾는 사람이 꾸준히 늘고 있는 것이다. 특히 60대 여성 환자가 18만 명으로 가장 많았고, 50대(14만 명)·70대(13만 명) 여성에서도 높은 비중을 보였다. 남성도 60대(12만 명), 50대(10만 명), 70대(9만 명) 순으로 많았다.

◇생리·호르몬 변화에 만성질환 겹쳐 취약
의료 현장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뚜렷하게 체감하고 있다. 용인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우정 교수는 “정신건강의학과로 내원하는 환자의 60~70%가 불면을 호소하며, 이 중 50대 후반에서 60대 이상 여성의 비율이 가장 높다”며 “단순히 잠이 얕거나 깨는 수준이 아니라, 오랜 기간 수면 문제가 지속돼 우울감과 불안이 함께 나타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령층에서 수면장애가 잦은 이유로 노화로 인한 생리적 변화와 만성질환의 누적 영향을 꼽는다. 나이가 들면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을 조절하는 송과선(뇌 한가운데에 있는 내분비기관) 기능이 저하돼 수면의 깊이와 주기가 불규칙해진다. 여기에 고혈압·당뇨병 같은 만성질환, 잦은 야뇨, 다약제 복용이 겹치면 불면이 심해진다. 고혈압과 당뇨는 혈관과 신경 기능을 약화해 체온 조절과 수면 호르몬 리듬을 흐트러뜨리고, 일부 약물은 각성 호르몬 분비나 이뇨 작용으로 수면 유지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여성은 폐경 전후 호르몬 변화로 수면장애 위험이 특히 크다.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강동우 교수는 “폐경 이후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 함께 감소하면 체온 조절이 불안정해지고, 열감과 야간 발한이 동반돼 수면이 자주 방해받는다”며 “이 시기에는 우울감과 불안이 함께 나타나 불면이 장기화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러한 호르몬 저하는 다른 형태의 수면장애로도 이어진다. 폐경 후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 줄면 상기도(숨길) 근육이 이완되고 체중이 늘어 수면무호흡증 위험이 커진다. 또 철분 대사 저하와 도파민 기능 변화로 다리에 불쾌감이 생겨 가만히 있기 어려운 하지불안증후군이 동반되기도 한다.

◇뇌 기능부터 심혈관까지… 전신 건강 위협
수면장애는 단순한 피로를 넘어 뇌 기능까지 떨어뜨린다. 미국 프레이밍햄 연구에 따르면, 깊은 잠 단계인 ‘서파수면’이 연간 1%p(포인트) 줄면 치매 발병 위험이 약 27% 증가한다. 아주대병원 가정의학과 정수지 교수는 “서파수면이 감소하면 뇌 속 베타아밀로이드(뇌세포 사이에 쌓이는 단백질) 제거 기능이 떨어져 신경세포 손상이 누적된다”며 “이런 변화가 반복되면 인지 기능이 떨어지고, 기분 조절에도 영향을 미쳐 우울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중 수면무호흡증과 렘수면행동장애는 전신 건강에도 부담을 준다. 수면무호흡증은 수면 중 호흡이 반복적으로 멈춰 저산소 상태가 이어지면서 혈압과 심박수가 불안정해지고,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활성화돼 심근경색과 뇌졸중 위험을 높인다. 렘수면행동장애는 꿈꾸는 단계에서 근육 이완이 이뤄지지 않아 수면 중 몸을 심하게 움직이거나 스스로 다치는 등 신체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성과 노년층은 이러한 후유증에 더욱 취약하다. 2024년 국제학술지 ‘프런티어스 인 사이키어트리(Frontiers in Psychiatry)’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수면 부족 시 남성보다 불안·우울 점수가 현저히 높았다. 정수지 교수는 “여성과 노년층은 호르몬 변화와 생체리듬 불안정으로 대사질환과 심혈관질환 위험이 함께 크다”며 “이로 인해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약물 의존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수면제를 장기간 복용하면 균형 감각과 인지 기능이 떨어져 낙상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맞춤형 치료와 생활 관리 병행 필요
수면장애가 지속되면 병원에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치료는 단기 약물요법과 인지행동치료(CBT-I)를 병행하는 것이 기본이다. 인지행동치료는 수면에 대한 부정적 생각과 잘못된 습관을 교정해 숙면을 유도하는 비약물 치료법이다. 김우정 교수는 “초기에는 짧은 기간 수면제를 처방하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약물 의존을 피하고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최근에는 디지털 치료기기인 ‘솜즈(SOMZZ)’나 ‘슬립큐(SleepQ)’를 통해 비대면으로 수면 패턴을 교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슬립큐는 의사 처방 기반의 불면증 치료용 디지털치료기기이며, 솜즈는 6주간 수면 일기를 바탕으로 인지행동치료 원리를 적용한 프로그램이다.

원인에 따라 맞춤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 여성은 폐경기 전후 호르몬 변화로 인한 수면장애가 흔해 원인 질환 치료가 필요하다. 강동우 교수는 “폐경기 여성은 호르몬대체요법(HRT)이나 비(非)호르몬 수면조절제를 고려할 수 있고, 명상이나 심리치료를 병행하면 도움이 된다”며 “우울·불안 증상이 동반된 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함께 받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호르몬대체요법은 폐경으로 감소한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을 보충해 체온 조절과 수면 리듬을 안정시키는 치료법으로, 안면홍조·야간 발한 등 수면을 방해하는 증상을 완화한다. 비호르몬 수면조절제는 멜라토닌 수용체 작용제나 세로토닌 조절제를 이용해 중추신경계를 안정시켜 수면의 질을 높이는 방식으로, 호르몬 치료가 부담스러운 여성에게 대안이 된다.

노년층은 생체리듬을 유지하는 생활 관리가 핵심이다. 정수지 교수는 “아침 햇빛을 20~30분 쬐어 멜라토닌 분비를 조절하고, 복용 중인 약물이 불면을 유발하지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며 말했다. 이어 “약물치료가 불가피한 경우에는 최소 용량의 수면제를 단기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이 외에도 낮잠은 오후 3시 이전 20분 이내로 제한하고, 침대는 수면 전용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저녁 이후에는 수분 섭취를 줄이고, 가벼운 활동으로 몸의 긴장을 완화해야 한다. 카페인은 오전에만 섭취하고, 음주는 수면 최소 3시간 전에는 중단하는 것이 숙면에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