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 다시 보기]
뇌경색 치료는 ‘시간 싸움’이다. 병원 내에서도 증상 변화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헬스조선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 사례를 바탕으로, 한 80대 여성에게 발생한 의료분쟁 사건을 정리했다.
◇사건 개요
80대 여성 A씨는 평소 B형 간염 약을 복용 중이었다. 몇 해 전 10월 3, 갑자기 말이 어눌해지고 왼팔에 힘이 빠지면서 쓰러졌다. 가족이 119에 신고해 A씨는 오후 2시 40분경 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CT(컴퓨터단층촬영)와 MRI(자기공명영상) 검사 결과, 후대뇌동맥이 막힌 뇌경색이 확인됐다. 후대뇌동맥은 뇌 뒤쪽의 시각 영역과 일부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에 혈류를 공급하는 주요 혈관이다.
의료진은 상급종합병원으로의 전원(치료를 위해 다른 병원으로 옮김)을 결정했고, A씨는 같은 날 오후 4시 46분에 이송됐다. 당시까지는 ‘후대뇌동맥 뇌경색’으로 진단이 명확했으며, 뇌압 상승이나 의식 저하 등 응급 시술이 필요한 상태는 아니어서 약물치료와 모니터링 등 보존적 치료가 이뤄졌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 5시경, 오른쪽 팔과 다리에 힘이 빠지는 새로운 증상이 나타났다. 의료진은 이를 ‘경련 후 일시적 증상’으로 판단해 즉시 검사를 시행하지 않았다. 이후 오전 7시 50분에 담당 의사가 환자를 다시 확인했고, CT는 오후 12시 30분, MRI는 오후 2시 40분에야 촬영됐다. 혈전(피떡)을 제거하는 시술은 오후 3시에 진행됐다.
결국 발병 직후 시행했어야 할 ‘골든타임’(발병 이후 4시간 30분 이내에 정맥 혈전용해술 시행)을 넘기며 치료가 지연됐고, A씨는 시술 후 오른쪽 마비와 언어장애가 남았다.
◇병원 “최선 다했다” vs 감정 결과 “판단 지연 있었다”
병원 측은 “당시 가능한 수준의 검사와 치료, 협진을 모두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의료중재원 감정 결과는 달랐다. 새벽 5시경 환자의 오른쪽 팔과 다리에 힘이 빠지는 편마비 증상이 나타났지만, 추가 검사가 즉시 이뤄지지 않아 치료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의료 전문가로 구성된 감정위원들은 “MRI 확산강조영상(DWI)에서 이미 왼쪽 뇌 혈류가 뚜렷하게 감소한 상태로, 이는 내경동맥이 막히며 혈류 공급이 급격히 줄고 있다는 신호였다”며 “그 시점에 혈관 촬영(CTA 또는 MRA)을 시행해 혈전제거술 필요성을 판단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감정 결과서는 “영상검사 지연으로 적절한 시기에 시술하지 못했다”고 결론 내렸다.
법조인·의료인·소비자 전문가로 구성된 의료중재원 조정위원회는 이러한 감정 결과를 토대로 “검사와 시술 결정이 늦어 환자의 후유장애가 심화했다”고 판단했고, 병원은 환자 측에 5500만 원을 배상하기로 합의했다.
◇신경학적 변화 보이면 즉시 영상검사를
A씨가 겪은 뇌경색은 뇌혈관이 막혀 혈류가 차단되는 질환으로, 짧은 시간 안에 뇌세포가 손상될 수 있어 증상 발생 직후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 정맥 혈전용해술(정맥 주사를 통해 혈전을 녹이는 치료)은 발병 후 4시간 30분 이내에 시행해야 하며, 기계적 혈전제거술(카테터를 이용해 혈전을 직접 꺼내는 시술)은 6시간 이내, 영상 기준을 충족하면 최대 24시간까지 가능하다.
입원 중인 환자라도 안심해선 안 된다. NIHSS(신경학적 손상 정도를 수치로 평가하는 검사) 점수가 높아지거나, 말이 어눌해지거나 한쪽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변화가 생기면 즉시 추가 영상검사와 신경학적 재평가가 필요하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 피로가 아니라 뇌혈류가 다시 막히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이번 사례는 진단의 정확성보다 치료 시점이 환자 예후를 결정한 사건이다. ‘경련일 수도 있다’, ‘조금 나아진 것 같다’는 판단으로 지켜보는 사이 치료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미국 UCLA 의대 연구에 따르면, 뇌경색 이후 1분이 지날 때마다 약 190만 개의 신경세포가 손상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병원은 증상 변화에 즉각 대응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보호자 역시 작은 변화라도 의료진에 즉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자료=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