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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아트코리아
요즘 SNS와 유튜브에는 ‘상추 수면차’, ‘상추 추출물 영양제’, ‘천연 멜라토닌’ 같은 문구가 넘쳐난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상추를 많이 먹으면 졸리다”고 느끼기도 한다. 특히 지난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상추 추출물’을 수면의 질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능성 원료로 처음 인정하면서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 상추 추출물 성분이 정말 수면을 크게 도울 수 있을까.

◇식약처, 상추 추출물 첫 기능성 인정… 핵심 성분은 ‘락투카리움’
식약처는 지난 5월, 국내 한 기업이 제출한 자료를 검토한 결과 ‘상추 추출물’을 ‘수면의 질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개별 인정형 기능성 원료로 승인했다. 이는 상추 유래 성분이 공식적으로 수면 관련 기능성을 인정받은 첫 사례다. 다만 이번 인정을 받은 것은 ‘특정 제품에 사용된 추출물’에 한정된 것이며, 일반 상추나 다른 제조사의 제품에 동일한 효과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제품별로 성분 조성이나 유효성분 함량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약국 이준 약사는 “락투카리움이 들어 있다고 해서 모든 상추 제품이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라며 “기능성 인정은 특정 임상시험 근거에 기반한 것”이라고 했다.

상추를 자르면 흰 수액이 배어 나오는데, 여기에 ‘락투카리움’이라는 물질이 들어 있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이 성분을 ‘식물성 아편’이라 부르며 진통·진정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락투카리움에는 락투신과 락투코피크린 같은 활성 성분이 포함돼 있으며, 이들이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긴장을 완화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신경과 조소영 전문의는 “락투카리움은 신경을 진정시키고 불안감을 완화해 보다 편안한 상태에서 잠들도록 돕는다”며 “수면제를 복용한 것처럼 강제로 잠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완을 유도해 자연스럽게 잠들게 하는 보조적 성격에 가깝다”고 말했다.

◇동물실험에서는 효과 확인… 사람 대상 연구는 제한적
락투카리움의 수면 관련 효능은 주로 동물실험을 통해 먼저 확인됐다. 쥐 실험에서 락투신과 락투코피크린이 GABA 수용체(억제성 신경전달물질 경로)에 작용해 신경 흥분을 억제하고, 수면 지속 시간을 늘리는 효과가 관찰됐다. 이 결과는 ‘상추가 졸리게 한다’는 전통적인 인식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단서로 해석된다.


다만 전임상(동물·세포) 연구 결과가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임상 근거는 아직 제한적이다. 식약처에 제출된 인체 적용 시험에서는 상추 추출물 섭취군이 피츠버그 수면지수(PSQI) 등 ‘수면의 질’ 관련 지표에서 개선을 보였지만, 입면 시간(잠드는 속도)이나 수면 유지(깬 횟수 감소) 등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크지 않았다. 즉, 상추 추출물은 즉각적인 수면 유도제라기보다 불안·긴장을 완화해 전반적인 수면의 질을 개선하는 ‘보조 수단’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천연 멜라토닌? 작용 기전 달라
최근 일부 온라인 마케팅에서는 ‘상추=천연 멜라토닌’이라는 문구가 등장하지만, 이는 과학적으로 틀린 표현이다. 멜라토닌은 뇌의 송과선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밤이 되면 분비량이 증가해 ‘잠잘 시간’이라는 생체리듬 신호를 보낸다. 반면 락투카리움은 중추신경계의 GABA 경로에 작용해 불안과 긴장을 완화하는 식물성 물질이다. 조소영 전문의는 “멜라토닌은 수면-각성 리듬을 조절하는 ‘시계 역할’을 하는 반면, 락투카리움은 스트레스나 불안으로 방해받은 수면을 돕는 ‘진정 보조제’ 성격”이라며 “두 물질을 동일한 효과로 홍보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맞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상추 추출물 제품은 주로 캡슐·정제·분말 형태다. 식약처에 등록된 기준에 따르면 1일 권장량은 1000mg이며, 일반적으로 취침 한두 시간 전 섭취가 권장된다. 다만 생상추나 상추즙을 섭취한다고 동일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일반 상추의 락투카리움 함량은 매우 낮아, 기능성 수준의 효과를 내려면 하루 수 kg 이상을 섭취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또한 멜라토닌 제제나 수면제와 병용할 경우 과도한 졸림, 어지럼, 집중력 저하 등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임산부, 수유부, 만성질환자, 약물 복용 중인 사람은 복용 전 반드시 전문가 상담을 거쳐야 한다.

전문가들은 상추 추출물을 ‘보조적 수면 관리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를 근본적인 불면증 치료제처럼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조언한다. 조소영 전문의는 “가벼운 입면 장애나 스트레스성 불면에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만성 불면증이라면 원인 치료가 필요하다”며 “수면 환경 개선, 카페인 제한, 일정한 수면 패턴 유지가 가장 기본적인 치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