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안양윌스기념병원 구경모 원장
“머리가 아파서 진통제를 먹었는데, 요즘은 약을 안 먹으면 더 아픈 것 같아요.”

신경과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두통이 심해 약을 복용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약을 먹지 않으면 머리가 더 아파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생긴다. 이를 ‘약물유발두통’이라고 한다.

약물유발두통은 두통을 치료하기 위해 복용한 약 자체가 오히려 새로운 두통의 원인이 되는 질환이다. 진통제나 편두통 치료제를 과도하게 사용하면 뇌가 통증 조절 기능을 잃게 되고, 약의 효과가 떨어지면서 약이 없을 때 오히려 두통이 심해진다. 즉, ‘약이 두통을 만드는’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두통은 일반적인 편두통이나 긴장성 두통과 달리 ‘하루 대부분 머리가 무겁고 조이는 듯한 통증’이 특징이다. 특히 아침에 두통이 심하거나,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통증이 반복되기도 한다. 약을 먹으면 잠시 가라앉지만, 몇 시간 후 다시 통증이 나타나는 양상이 반복된다면 약물유발두통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원인이 되는 약물은 다양하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 진통제(아세트아미노펜, 이부프로펜 등)뿐 아니라, 편두통 치료제(트립탄 계열), 카페인 복합제, 심지어 감기약 속 진통 성분까지도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한 달에 10~15일 이상 진통제를 복용하는 경우, 약물유발두통 발생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 문제는 이런 약들이 일상적으로 사용되기 쉬워, 환자 본인이 두통의 원인을 약물로 인식하지 못한 채 복용을 이어간다는 점이다.


치료의 핵심은 ‘약을 끊는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중단하면 일시적으로 두통이 심해지는 ‘반동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 신경과 전문의의 관리 아래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이 안전하다.필요에 따라 예방약을 함께 처방해 뇌의 통증 민감도를 낮추는 치료를 병행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충분한 수면, 규칙적인 식사, 카페인 절제, 스트레스 관리가 회복을 돕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통약을 남용하지 않는 습관’이다. 진통제를 일시적인 통증 완화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괜찮지만, 두통이 한 달에 10회 이상 반복된다면 단순 약 복용으로 해결하기보다 원인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꾸준히 약을 먹어야 버틸 정도로 두통이 잦다면, 그것이 바로 치료가 필요한 신호다.

두통은 대부분 조기에 관리하면 충분히 조절 가능한 질환이다. 그러나 잘못된 약물 사용으로 만성 두통으로 진행되면 치료가 훨씬 어려워진다. 약에 의존하기보다는 두통의 근본 원인을 정확히 진단받고, 뇌가 스스로 통증을 조절할 수 있는 건강한 리듬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칼럼은 안양윌스기념병원 구경모 원장의 기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