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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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외부적인 요인보다는 내부적 통제 상실에 의해 비롯되기 때문에 과도한 불안을 적절한 수준으로 낮추고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누구나 마음의 병을 겪을 수 있지만 쉽게 털어놓기 힘들고 때론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어려움을 겪는다. 헬스조선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강준 교수의 칼럼을 연재해 ‘읽으면서 치유되는 마음의 의학’을 독자와 나누려 한다. 정신건강 문제를 풀어내고 치유와 회복의 길을 제시한다.(편집자주)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이미 180여 년 전에 불안을 이렇게 정의했다. 무한히 많은 가능성 속에서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그 자유는 선물이지만 동시에 낭떠러지 위에 서 있는 듯한 아찔함을 준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하지만 아주 사소한 선택 하나에도 ‘잘못되면 어쩌지?’라는 불안에 괴로워한다. 

일상의 과도한 불안도 나를 병들게 한다. 회사에서 사소한 실수를 한 뒤, “이 일로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게 되면 어쩌지?”라는 불안이 머릿속을 맴돈다. 아이가 늦게 들어오면 “사고가 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이런 불안은 미래의 가능성을 이미 일어난 일처럼 느끼게 만든다. 현실보다 상상 속의 불안이 더 큰 문제다. 그러나 수많은 걱정과 불안은 대부분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또 정말로 안 좋은 일이 발생해도 대개 내 탓이 아니다. 아무리 내가 불안해하며 대비해도 내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메신저 문구와 메일에 가슴 철렁이고 뉴스 속보가 우리의 심박 수를 올린다. 이는 현대인의 구조적이고 환경적인 불안 때문이다. 세상은 점점 편해지고 안전해졌는데 ‘왜 나는 더 불안해할까?’ 과거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맹수를 피해야 했지만 지금 우리는 맹수가 아니라 ‘뒤처질지도 모르는 나’와 싸운다.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불안도 우리를 조여 온다. 10대의 입시 불안, 20대의 취업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대표적이며, 30~40대는 내 길이 맞는지에 대한 불안과 가족에 대한 책임으로, 50대 이후는 지나온 생에 대한 의미와 남은 생에 대한 불안으로 고민한다. 물론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할까?’는 본질적인 불안은 인생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나’의 밑바닥에 묵직하게 남아있다. 아마 이 고민은 시대가 흘러도 변치 않는 불안일 것이다.


불안이라는 감정을 잘 이해하면 이 증상을 줄이거나 견딜 수 있다. 정신분석학에선 불안을 ‘내면의 신호’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욕망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기준이 과도하게 높을 때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마음이 압박을 받으며 불안을 느낀다.

불안은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생존을 위한 경보 역할도 한다. 불안 때문에 약속에 지각하지 않고 사고도 예방할 수 있고 일을 완벽하게 잘 할 수 있게 된다. 무작정 불안을 없애는 게 아니라 경보의 볼륨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는 불안과 함께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 하기 싫은 생각을 억누를수록 오히려 더 자주 떠오르듯, 불안을 없애려 애쓸수록 불안은 더 커진다. 불안은 쫓아내야 할 적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나의 한 부분이다. 심리 실험에 의하면 불안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학습된 경험이며 결국 불안은 외부가 아닌 내부의 통제감 상실에서 비롯된다. 과도한 불안을 적절한 수준으로 낮추고 때때로 가벼운 스트레스나 불안을 즐길 줄도 알아야한다.

불안이 찾아올 때 이렇게 해보자. “아, 내가 지금 불안하구나.” 나를 있는 그대로 관찰한 뒤, 지나치게 확대하지도 불안에 휘둘리지도 말자. 불안이 자꾸 깊어지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글로 적어보거나 몸을 움직여보자. 이렇게 불안을 다스리다 보면 과도하게 흥분했던 편도체가 서서히 진정되고 자기조절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의 연결과 기능이 강화되는 등 신체적인 변화도 따라온다. 마음이 근육처럼 단련되면 불안이 점차 사라질 것이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듯, 불안은 자유 속에서 우리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증거다. 불안을 없애려 하기보다 함께 걷도록 하자. 불안이 없는 사람은 없다. 또 불안 때문에 완전히 무너지는 사람도 거의 없다. 어쩌면 불안 덕분에 우린 더 발전할 수 있다. 불안을 잘 견디고 조절할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하고 여유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