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치료
국내 수면장애 환자 124만명… 증가 추세
스트레스·빛 공해 등 생활환경, 불면 유발
수면 균형 깨지면 신체 회복력·면역력 저하
인지행동치료, 수면 습관 교정에 도움
약물 치료, 내성·부작용 고려해 시행
'오렉신 수용체 길항제', 치료 선택지 넓혀

수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고혈압·당뇨병·비만·심뇌혈관질환과 같은 만성질환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우울·불안 등 정신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치며, 집중력 저하, 교통사고 위험 증가, 업무 생산성 저하 등 일상 안전과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도 문제를 일으킨다. 순천향대 천안병원 신경과 양광익 교수(대한수면학회장)는 "수면 부족은 비만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비만과 수면 부족 모두 심혈관 질환의 주요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수면은 얕은 잠과 깊은 잠이 번갈아 나타나는 주기로 이뤄진다. 흔히 말하는 '렘(REM)수면'은 기억과 감정을 정리하고, '비(非)렘수면'은 신체 회복과 면역력 강화를 담당한다. 이 두 단계가 균형을 이뤄야 피로가 해소되고 집중력과 정서가 안정된다.
그러나 수면이 부족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하고, 교감신경을 흥분시키는 노르에피네프린 수치가 높아진다. 이 같은 상태가 장기화하면 신체 스트레스 반응으로 몸에 각종 문제가 생긴다. 실제 만성 불면증 환자는 급성 심근경색 발생 위험이 약 2.6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우울·불안 같은 정신적 문제도 불면증 환자에게 흔하다. 양광익 교수는 "만성화된 수면 부족은 혈압 상승과 심뇌혈관 질환, 당뇨병 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잠 안 오고 자주 깨면 '만성 불면' 의심해야
불면증의 대표 증상은 세 가지로 나뉜다. 잠이 드는 데 오래 걸리는 '입면 장애', 자는 도중 자주 깨는 '수면 유지 장애', 충분히 잤는데도 개운하지 않은 '수면 질 저하'다. 이러한 증상이 반복되면 단순 피로가 아니라 만성 불면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개인차가 있어, 수면 시간이 짧더라도 피로감이나 불편함이 없다면, 반드시 비정상으로 보지는 않는다. 이런 유형을 '숏 슬리퍼(Short Sleeper)'라고 한다. 양 교수는 "일반적으로 10~20분 안에 잠이 들면 정상이고, 30분 이상 걸리면 입면 시간이 긴 것으로 본다"며 "이러한 증상이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석 달가량 지속되면 만성 불면증으로 진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증상이 계속되면 피로감, 집중력 저하, 예민함, 졸음운전이나 실수 등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불면의 원인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는 '잠에 대한 불안'이 문제를 키운다. '오늘은 꼭 자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은 오히려 뇌를 더 긴장시키고 불면을 악화시킨다. 양광익 교수는 "졸릴 때 잠자리에 들고, 잠이 오지 않으면 억지로 누워 있지 말라"며 "잠들기 전에 책을 읽거나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도 좋다"고 했다.
'각성 억제 신약' 주목… 내성·의존성 낮아
낮 생활이 힘들 정도로 잠을 못 잔다면 병원을 방문해 검사·치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불면증 치료의 핵심은 원인을 구분해 맞춤형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특별한 원인이 없는 경우 '1차 불면', 다른 질환에 의해 생기는 경우 '2차 불면'으로 분류한다. 하지불안증후군이나 수면위상지연증후군처럼 수면 리듬 이상이 동반되는 질환도 원인이 될 수 있다. 하지불안증후군은 다리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불쾌감이나 저린 느낌 때문에 잠들기 전 다리를 반복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질환이며, 수면위상지연증후군은 새벽에야 잠이 들고 정오 이후에 일어나는 등 생체시계가 늦춰지는 것이 특징이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파악한 뒤 그에 맞게 치료를 진행한다. 만성 불면증의 1차 치료는 인지행동치료다. 잘못된 수면 습관과 사고로 인해 뇌가 과도하게 깨어 있는 '조건화 각성'을 완화하고, 수면 위생 교육·자극 조절·이완 훈련·인지 재구성 등을 통해 자연스러운 수면 리듬을 되찾도록 돕는 비약물 치료법이다. 잠자리에 들면 자동으로 긴장하거나 불안해지는 반응을 줄이고, 침대를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다시 인식하게 하는 데 초점을 둔다. 꾸준히 시행하면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도 수면의 질과 효율이 개선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인지행동치료로 수면 습관을 바로잡은 뒤에는 내성·부작용을 고려해 약물을 병행한다. 현재 사용하는 불면증 치료제는 대부분 진정 효과가 있는 벤조디아제핀, 비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이다. 고령자는 현기증이나 낙상 위험이 높아, 효과뿐 아니라 안전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최근 미국과 유럽의 경우 '오렉신 수용체 길항제(DORA)'를 불면증 약물치료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오렉신은 각성을 유지하는 신경전달물질로, DORA는 이를 차단해 각성을 줄이고 자연스러운 수면을 유도한다. 기존 약이 '진정'을 유도한다면, DORA는 '각성 억제'로 접근한다. 양광익 교수는 "DORA는 어지러움, 두통, 졸림 같은 경미한 부작용은 나타날 수 있지만, 내성·의존성과 수면 중 복합행동 등의 부작용이 적은 것으로 보고된다"며 "국내에서도 도입이 예정돼 있어 앞으로 치료 선택지가 한층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불면증은 생활습관뿐 아니라 주변 환경, 근무 여건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나타나는 문제다. 이는 불면증을 단순히 '개인이 잠을 잘 못자는 문제'로 치부해선 안 되는 이유기도 하다. 순천향대 천안병원 신경과 양광익 교수(대한수면학회장)는 "불면증은 현대 사회 전반의 구조적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며 "진단과 치료뿐 아니라 생활습관과 제도적 환경까지 함께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밤에도 밝은 조명에 노출되는 빛 공해와 스마트폰·TV 등 전자기기 사용, 늦은 시간의 카페인 섭취와 야간 활동은 숙면을 방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낮에는 바쁘고 밤에야 시간을 내는 생활 방식이 불면증을 부추긴다. 불면증 환자 수가 계속해서 증가하는 것도 이 같은 생활 방식 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숙면을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자기 전 전자기기 사용을 줄여야 한다. 카페인 섭취를 오후 이후로 제한하는 등의 생활 관리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불규칙한 근무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제도적 보완 또한 중요하다. 많은 전문가들은 교대 근무자, 화물 운전자, 심야 근무자가 충분히 휴식할 수 있도록 직장 차원의 수면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원활한 불면증 치료를 위해 치료제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해외에서 개발된 신약이 국내에 도입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양광익 교수는 "불면증 치료제 대부분이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돼 처방이 까다로운데, 과도한 규제는 치료 접근성을 떨어뜨린다"며 "불면증 역시 고혈압·당뇨병처럼 국가적 차원의 실태조사와 연구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