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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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환경이 불행하게 느껴지더라도 매일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작은 목표르 세우고 성취해나가는 것부터 시작하자./사진=클립아트코리아
누구나 마음의 병을 겪을 수 있지만 쉽게 털어놓기 힘들고 때론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어려움을 겪는다. 헬스조선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강준 교수의 칼럼을 연재해 ‘읽으면서 치유되는 마음의 의학’을 독자와 나누려 한다. 정신건강 문제를 풀어내고 치유와 회복의 길을 제시한다.(편집자주)

진료실 문이 열리고 중년 여성 한 분이 지친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저처럼 불행한 사람을 보신 적이 있나요?”

진료 중 종종 듣게 되는 말이지만 예상치 못한 첫마디에 잠시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이내 자신의 인생을 숨 돌릴 틈 없이 풀어놓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애들 뒷바라지만 하다가 암에 걸렸고 간신히 치료를 마쳐 이제 좀 살 만하니 이번엔 남편이 실직했어요. 시댁이고 본가고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고 생활비에 치료비까지 전부 제가 감당해야 해요. 제 인생이 정말 지긋지긋해요.”

그녀의 억울하고 딱한 사정에는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그러나 말투에는 분노가, 목소리에는 짜증이 가득 배어 있어 대화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짧은 면담 시간이었음에도 그녀의 말에서는 날카로움이 느껴졌고 가족 간의 대화나 관계도 원만하지 않았을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얼마나 큰 고통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마음이 아팠다.

비슷한 환자들이 몇 있다. 진료실에 들어오는 환자에게 “지난 한 달 동안 잘 지내셨어요?” 하고 인사를 건네면, 대부분은 일단 “네.”라고 답하고 말을 이어간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정색을 하며 “아뇨.”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리고는 지난 한 달 동안 얼마나 괴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를 설명한다.


드물게는 증상이 호전되었음에도 같은 이야기가 수년간 반복되는 경우가 있다.

“우울감이나 짜증이 조금이라도 나아지진 않으셨어요?”
“네. 조금도.”

객관적으로 증상이 호전되었더라도 본인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건 단순히 우울증 약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만약 외부 환경을 바꾸기 어렵다면 그 환경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와 시선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주변 환경이 불행해서 우울증에 걸릴 수 있지만 그 불행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해석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누가 봐도 불행한 상황임에도 꿋꿋이 잘 견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교적 덜 심각한 상황임에도 극심한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현실적인 문제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경제적 어려움, 가족 간의 갈등, 직장 문제 등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통제 불가능한 것은 수용하고 적응하면서 통제 가능한 것은 서서히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나아가 스스로 변화하기까지는 더욱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불행의 틀에서 벗어나려면 ‘받아들이는 수용’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다음 단계에서는 그 틀 안에서 익숙해져 버린 사고방식과 행동 패턴을 수정해 나가야 한다.

매일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작은 목표를 세우고 성취하는 게 큰 도움이 된다. 작은 변화의 승리감을 느낀다면 언젠가 달라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변화는 느리겠지만 멈추지 않는다면 불행에서 분명히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