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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특수교사의 맞춤형 교육·돌봄 필요성이 큰 발달지연·장애 학생들은 통합학교(일반학교) 특수학급을 이용하는 대신 특수학교에 진학하곤 한다. “아이가 특수학교에 다니면서 밝아졌다”는 학부모 후기가 많은 만큼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많지만, 쉽지 않다. 특수학교 수가 원체 적다 보니 ‘티오(빈자리)’가 없다. 어렵사리 입학해도 문제는 계속된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남연 서울지부장은 “특수학교 수가 적으니 통학에 한두 시간이 걸리는 경우는 다반사”라며 “직접 통학시키는 학부모는 아침에 아이를 씻겨서 학교에 데려다 주고, 학교가 끝나고 집에 데리고 오기만 해도 금세 저녁이 된다”고 말했다.

특수학교를 지역 곳곳에 신설해야 해결될 문제다. 그러나 특수학교 설립 행정예고가 나온 후 실제 개교하기까지의 기간은 6년이 넘기 일쑤다. 서울시 중랑구에 들어설 특수학교 ‘동진학교’의 경우 설립 방침이 세워지고 부지 등 설립 계획이 확정되는 데까지만 7년이 소요됐다. 꼭 필요한 시설인데도 이토록 설립에 난항을 겪는 까닭이 무엇일까.

◇특수학교, 장애 학생 분리 아닌 ‘교육받을 권리’
발달지연·장애 학생들이 비장애 학생들과 어울리게 하는 ‘통합 교육’이 대세다 보니, 특수학교를 없어져야 할 존재로 인식하는 사람이 꽤 있다. 대세에 걸맞지 않게 ‘분리’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부모와 교육 전문가들은 오히려 특수학교를 학생이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로 본다. 발달장애인 친형과의 이야기를 담은 ‘나의 특별한 형제’ 저자이면서 세종시 특수학교에서 수년간 근무한 장한샘 특수교사는 “특수학교에 오면 특수교사에게 학생 맞춤형 교육과 돌봄을 받기 쉽다”며 “통합학교에서 비장애 학생에게 도움받는 입장에 있다가, 특수학교에서 학우와 서로 돕는 경험을 하면서 리더십과 만족감을 얻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적장애 자녀를 초등학교 3학년 이후부터 특수학교로 진학시킨 김남연 서울지부장은 “통합학교에 다닐 때 아이가 알게 모르게 주눅이 들었던지, 특수학교로 진학한 후로부터 눈에 띄게 밝아졌다”며 “중증 장애가 아니라면 통합학교에서 비장애 학생들과 부대끼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겠지만, 중증 장애인 경우 특수학교가 아이 정서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수학교가 필요한 학생 수는 증가할 것으로 짐작된다. 교육부에서 발간한 ‘특수교육 통계’에 따르면 특수교육대상자 수는 2020년 9만 5420명, 2021년 9만 8154명, 2022년 10만 3695명, 2023년 10만 9703명, 2024년 11만 5610명으로 증가 추세다. 세종시 제3특수학교 신설을 추진하고 있는 세종교육청 도경만 장학관은 “전체 특수교육대상자 중 25%가량이 특수학교가 필요한 중증 학생”이라고 말했다.

◇학교 부족해 과밀 학급 多… “신설 시급”
지난해 기준 특수학교 수는 전국 195개소에 불과하다. 단순 계산을 위해 특수교육 대상자 중 특수학교에 다니는 학생 수를 전체 특수학교 수로 나누어 보면 한 학교당 약 154명이 다니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일반학교 정원보다 적으니 괜찮은 것 아니냐는 물음은 잘못됐다. 특수교사가 제공하는 돌봄과 교육이 필요한 학생 특성상, 특수학교는 학급당 학생 정원이 한자릿수로 제한된다. 유치원은 4명, 초·중학교는 6명, 고등학교는 7명을 넘을 수 없다. 애초에 전교생이 많아지기도 어렵고, 지나치게 많아져서도 안 되는 교육 기관이다.

그러나 특수학교 수가 부족해 수많은 특수학교 학급이 적정 인원을 초과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4년 전국 특수학교 학급 중 과밀학급 비율은 평균 10.1%였다. 이에 교육청은 특수학급을 신설하고, 신설이 어려운 경우 과밀학급에 특수교사를 추가 배치해 교사 한 명당 학생 인원을 줄임으로써 과밀학급 비율을 3.8%로 낮췄다. 그러나 특수교사를 추가 배치하는 것으로 과밀을 해소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장한샘 특수교사는 “특수학교 학생들 사이에 상성이 존재해서, 같이 있을 때 시너지가 날 때도 있지만 갈등이 잦아지거나 불안한 분위기가 형성될 때도 있다”며 “이 경우 연초에 학생들을 서로 다른 반에 편성해서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것이 몹시 중요하니, 과밀학급에 특수교사를 추가 배치하기만 할 게 아니라 학교나 학급 증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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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회원 등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서울시의회 앞에서 무릎을 꿇고 성진학교 설립을 호소하는 모습/사진=뉴스1
◇매번 설립 난항… 하나 짓는 데 6년은 기본
하나의 학교에 학급을 무한정 증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결국 특수학교 수 자체를 늘려야 한다. 2025년도 통계는 교육부가 학급당 교사 추가 배치를 통해 과밀학급 수가 과소평가되도록 유도했다는 논란이 있으므로 2024년도 통계를 기준으로 보면, 제주(과밀학급 비율 27.2%), 인천(17.3%), 부산(14.6%), 경기(14.1%), 강원(12.2%), 서울(12.0%)에 특히 신설이 시급하다.

그러나 특수학교 설립은 매번 고비다. 설립 안건이 최근 통과된 특수학교 ‘성진학교’는 2023년 말 서울시교육청이 성수공고 페교 부지에 세우겠다고 행정예고 했지만, 2024년 윤희숙 국민의힘 국회의원 후보가 별안간 “성수공고 부지에 특목고를 유치하겠다”고 공약하며 주민 반대가 거세졌다. 결국 올해 8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가 서울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진학교 설립을 촉구하며 카메라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덕에 성진학교 신설 내용이 담긴 ‘2025년도 제4차 수시분 공유재산관리계획안’이 지난 12일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29년 3월 개교를 목표로 22학급, 총 136명 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규모로 설립 예정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안이 과거의 반복이라는 데 있다. 2019년 개교한 특수학교 ‘서진학교’도 같은 이유로 설립에 고초를 겪었다. 서울시교육청은 2013년 교육청 소유인 공진초 부지에 서진학교를 만들겠다고 행정예고했으나, 주민 반대로 교육청이 대체부지를 알아보는 등 갈팡질팡하다가 추진이 더뎌졌다. 그러던 와중 서진학교 터에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국립한방병원 건설’ 공약을 내걸며 반대 목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2017년 9월 교육청이 연 지역 주민 토론회에서 장애 학생들의 학부모가 무릎을 꿇고 설립을 호소한 것이 언론에 보도되며 지지 여론이 높아졌다. 2018년 8월 착공에 들어서 교육청이 처음 설립을 예고한 뒤로 약 6년 2개월 만에 개교했다.

서진학교 건립을 둘러싼 갈등 양상을 연구한 충남연구원 충남라이즈센터 이세미 성과관리산학협력팀장은 “서진학교 건립 추진 당시 지역구 의원의 한방병원 설립 공약으로 인해 반대 여론이 커진 것처럼, 정치인들의 공약과 핌피현상(병원 등 지역에 이득이 되는 시설을 유치하려는 현상)이 중첩되면서 특수학교 건립에 대한 반발이 더욱 거세지는 경향이 있다”며 “주민 토론회가 무산되거나 합의안 도출이 좌절되면서 학교 건립이 지연되면 될수록 설립에 성공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필요한 곳에 설립 의무화, 시설 개방이 해법
특수학교 신설 과정을 더 원활히 하려면, 제도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학교 설립은 교육감 권한이기 때문에 주민이나 지역구 국회의원과 합의할 필요는 없지만, 지역 주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하기가 실질적으로는 어렵다. 교육감 등 일부 결정권자의 성향이나 여론 의식 정도에 학교 설립 여부가 좌우되는 경향도 있다. 도경만 장학관은 “지역 특수교육 대상자 수를 고려했을 때, 특수학교 신설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지역에는 설립 관계자들의 개별 의지와 무관하게 의무적으로 설립이 이뤄지도록 입법이 필요하다”며 “지어야 할 곳에는 짓는 것을 기조로 하되, 주민 견해를 수렴하는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세미 성과관리산학협력팀장 역시 “장애인 시설 설립과 관련된 법적 조건들을 개선해 특수학교 건립을 합법적으로 용이하게 해야 한다”며 “갈등 조정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수학교가 비장애 지역 주민에게도 유익한 시설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도 있다. 도경만 장학관은 “특수학교 내 진로 교육 시설과 체력 단련실 등 시설을 지역 주민이 평생 교육 기관이나 여가 장소로 이용하도록 개방할 수 있다”며 “대전에 있는 특수학교 ‘혜광학교’에 있는 카페는 실제로 인근 아파트 주민의 사랑방처럼 기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개방이 장기적으로 특수학교 학생들에게도 도움될 수 있다. 장한샘 특수교사는 “장애인이 활동할 수 있는 곳이 적어 외부의 비장애인들과 접촉하지 못하고 은둔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수학교가 세상과 소통할 창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남연 서울지부장은 “장애 아동은 위험하다는 편견이 있어 특수학교를 유해시설 취급하니, 특수학교를 주민에게 개방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비장애인의 장애 이해력을 높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