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뇌질환은 완치가 어려운 난제다. 치료법 개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의 뇌 조직을 직접 연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살아있는 뇌를 확보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뇌 기증’이다. 뇌 기증은 사후에 장기를 기증하듯 뇌은행에 뇌를 기증하는 것을 말한다. 다만 장기 기증이 ‘이식’에 활용되는 것과 달리, 뇌 기증은 ‘진단 및 연구’ 목적으로 쓰인다. 미국, 네덜란드 등에서는 활발히 시행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부정적 인식이 지배적이다. 뇌 기증이 왜 필요한지 짚어봤다.
◇뇌 기증, 치매 극복의 ‘열쇠’ 될 것
세브란스병원 뇌은행장 예병석 교수(신경과)는 “퇴행성 뇌질환의 가장 정확한 진단은 부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생전 진단과 사후 진단에는 여전히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사후에 기증된 뇌는 질병 원인 규명과 신약 개발에 기여한다. 가장 필요한 게 대표적인 퇴행성 뇌질환 중 하나인 치매다. 특히 치매는 알츠하이머와 루이소체 치매가 동시에 나타나는 ‘혼합형 치매’가 적지 않다. 국내에서는 관련 연구가 부족하다. 예 교수는 “서구에서는 뇌 기증이 활발해 혼합형 치매 사례가 풍부하게 축적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뇌조직 데이터가 부족해 치료제 개발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루이소체 치매나 전두측두 치매처럼 생전 진단이 어려운 질환은 사후 뇌조직 연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뇌은행을 중심으로 축적된 기증 뇌를 활용해 치매 진단법 개선, 알츠하이머 발병 기전 규명 등 성과를 내고 있다. 예병석 교수는 “알츠하이머 진단 기술이 현재 95% 정확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뇌 기증 덕분”이라며 “치매 가족력이 있는 경우, 부검은 환자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중요한 정보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뇌 기증에 대한 인식 바뀌어야”
현재 국내에서는 생명윤리법에 따라 인체유래물 은행 허가를 받은 12개 기관이 뇌 연구 자원을 수집·관리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뇌은행 네트워크에는 한국뇌은행, 가톨릭대, 강원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인제대, 전남대병원, 충남대병원 등 8개 기관이 참여한다. 또한 질병관리청이 운영하는 치매뇌은행에는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부산대병원, 명지병원이 포함된다. 뇌은행은 뇌 기증 희망자로부터 뇌 조직과 관련 자원을 기증받아 이를 보존·관리하며, 연구자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세브란스병원 뇌은행 윤희중 코디네이터는 “신경과, 법의학과, 병리과, 진단검사의학과 등 다학제 전문가가 협업해 기증 과정을 관리한다”며 “기증된 조직은 ‘뇌 클러스터 전문 포털’에 등록돼 심의를 거친 연구자들이 활용한다”고 말했다. 뇌 조직 외에도 혈액, 소변, 뇌척수액 등 다양한 임상 자원이 환자 동의하에 수집된다. 다만, 우리나라는 유교적 문화와 낮은 인식 탓에 기증 건수가 적은 편이다. 윤 코디네이터는 “한국뇌은행 네트워크를 통해 뇌 기증을 받기 시작한 2015년 이후 국내 뇌 기증 사례는 누적 362건에 불과하다"며 “홍보와 인식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뇌 기증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로 뇌은행 네트워크를 구축해 사후 6시간 이내에 조직을 수집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은 국립보건원(NIH)을 중심으로 6개 대학과 30여 개 부검센터가 연계된 전국적 뇌은행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며, 일부 병원은 1000명 이상의 기증자를 확보하기도 한다. 매년 5월 7일을 ‘뇌 기증 인식의 날’로 지정해 기증자와 가족을 기린다. 일본은 부검 문화가 활성화돼 있고, 브라질은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정부 주도로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뇌 기증, 치매 극복의 ‘열쇠’ 될 것
세브란스병원 뇌은행장 예병석 교수(신경과)는 “퇴행성 뇌질환의 가장 정확한 진단은 부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생전 진단과 사후 진단에는 여전히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사후에 기증된 뇌는 질병 원인 규명과 신약 개발에 기여한다. 가장 필요한 게 대표적인 퇴행성 뇌질환 중 하나인 치매다. 특히 치매는 알츠하이머와 루이소체 치매가 동시에 나타나는 ‘혼합형 치매’가 적지 않다. 국내에서는 관련 연구가 부족하다. 예 교수는 “서구에서는 뇌 기증이 활발해 혼합형 치매 사례가 풍부하게 축적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뇌조직 데이터가 부족해 치료제 개발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루이소체 치매나 전두측두 치매처럼 생전 진단이 어려운 질환은 사후 뇌조직 연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뇌은행을 중심으로 축적된 기증 뇌를 활용해 치매 진단법 개선, 알츠하이머 발병 기전 규명 등 성과를 내고 있다. 예병석 교수는 “알츠하이머 진단 기술이 현재 95% 정확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뇌 기증 덕분”이라며 “치매 가족력이 있는 경우, 부검은 환자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중요한 정보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뇌 기증에 대한 인식 바뀌어야”
현재 국내에서는 생명윤리법에 따라 인체유래물 은행 허가를 받은 12개 기관이 뇌 연구 자원을 수집·관리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뇌은행 네트워크에는 한국뇌은행, 가톨릭대, 강원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인제대, 전남대병원, 충남대병원 등 8개 기관이 참여한다. 또한 질병관리청이 운영하는 치매뇌은행에는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부산대병원, 명지병원이 포함된다. 뇌은행은 뇌 기증 희망자로부터 뇌 조직과 관련 자원을 기증받아 이를 보존·관리하며, 연구자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세브란스병원 뇌은행 윤희중 코디네이터는 “신경과, 법의학과, 병리과, 진단검사의학과 등 다학제 전문가가 협업해 기증 과정을 관리한다”며 “기증된 조직은 ‘뇌 클러스터 전문 포털’에 등록돼 심의를 거친 연구자들이 활용한다”고 말했다. 뇌 조직 외에도 혈액, 소변, 뇌척수액 등 다양한 임상 자원이 환자 동의하에 수집된다. 다만, 우리나라는 유교적 문화와 낮은 인식 탓에 기증 건수가 적은 편이다. 윤 코디네이터는 “한국뇌은행 네트워크를 통해 뇌 기증을 받기 시작한 2015년 이후 국내 뇌 기증 사례는 누적 362건에 불과하다"며 “홍보와 인식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뇌 기증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로 뇌은행 네트워크를 구축해 사후 6시간 이내에 조직을 수집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은 국립보건원(NIH)을 중심으로 6개 대학과 30여 개 부검센터가 연계된 전국적 뇌은행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며, 일부 병원은 1000명 이상의 기증자를 확보하기도 한다. 매년 5월 7일을 ‘뇌 기증 인식의 날’로 지정해 기증자와 가족을 기린다. 일본은 부검 문화가 활성화돼 있고, 브라질은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정부 주도로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등록 절차 간단… “의학 발전 위한 나눔을”
뇌 기증은 생전 누구나 생전 희망 등록을 할 수 있다. 병원 코디네이터와 상담 후 동의서를 작성하면 ‘뇌 기증 희망등록증’이 발급되며, 등록은 언제든 철회할 수 있다. 매년 약 300명이 뇌 기증 희망 등록에 참여한다. 다만, 실제 기증으로 이어지려면 ▲사후 24시간 내 부검 가능 여부 ▲심한 외상성 손상이나 뇌사 판정이 아닐 것 ▲보호자 동의 확보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현재 법적으로 무연고자의 기증은 불가능하다. 기증자가 사망하면 전문 부검팀이 부검을 진행하며, 기증된 뇌는 철저히 익명성과 윤리적 절차를 지켜 보관·활용된다. 시신은 본래 모습으로 복원돼 유가족에게 인도된다. 윤 코디네이터는 “부검 후에는 외관상 변화가 없어 훼손에 대한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실제 상담에서는 긍정적인 반응도 많다. 윤 코디네이터는 “뇌 기증을 통해 가족력 질환의 원인을 밝히고 미래 세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흔쾌히 동의하는 이들이 많다”며 “간병으로 고통을 겪은 가족이 기증을 선택하거나, 기증을 경험한 보호자가 주변에 권유해 새로운 기증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었다”고 했다.
예병석 교수는 “뇌 기증은 단순한 기증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같은 고통을 겪지 않도록 돕는 길”이라며 “의학을 발전시키고 삶을 완성하는 값진 나눔”이라고 말했다. 이어 “퇴행성 뇌질환으로 고통받은 환자와 가족의 아픔이 헛되지 않고, 연구를 통해 치료제로 이어진다면 더없이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뇌 기증은 생전 누구나 생전 희망 등록을 할 수 있다. 병원 코디네이터와 상담 후 동의서를 작성하면 ‘뇌 기증 희망등록증’이 발급되며, 등록은 언제든 철회할 수 있다. 매년 약 300명이 뇌 기증 희망 등록에 참여한다. 다만, 실제 기증으로 이어지려면 ▲사후 24시간 내 부검 가능 여부 ▲심한 외상성 손상이나 뇌사 판정이 아닐 것 ▲보호자 동의 확보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현재 법적으로 무연고자의 기증은 불가능하다. 기증자가 사망하면 전문 부검팀이 부검을 진행하며, 기증된 뇌는 철저히 익명성과 윤리적 절차를 지켜 보관·활용된다. 시신은 본래 모습으로 복원돼 유가족에게 인도된다. 윤 코디네이터는 “부검 후에는 외관상 변화가 없어 훼손에 대한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실제 상담에서는 긍정적인 반응도 많다. 윤 코디네이터는 “뇌 기증을 통해 가족력 질환의 원인을 밝히고 미래 세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흔쾌히 동의하는 이들이 많다”며 “간병으로 고통을 겪은 가족이 기증을 선택하거나, 기증을 경험한 보호자가 주변에 권유해 새로운 기증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었다”고 했다.
예병석 교수는 “뇌 기증은 단순한 기증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같은 고통을 겪지 않도록 돕는 길”이라며 “의학을 발전시키고 삶을 완성하는 값진 나눔”이라고 말했다. 이어 “퇴행성 뇌질환으로 고통받은 환자와 가족의 아픔이 헛되지 않고, 연구를 통해 치료제로 이어진다면 더없이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