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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어릴 때 간접흡연에 노출되면 세대를 넘어 자녀의 폐 기능까지 손상돼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버지가 어릴 때 간접흡연에 노출되면 세대를 넘어 자녀의 폐 기능까지 손상돼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만성폐쇄성폐질환은 기도가 좁아지고 폐의 탄성이 줄어 호흡이 어려워지는 진행성 호흡기 질환으로, 완치가 어렵고 증상이 악화하면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

호주 멜버른대 샤말리 다르마지 교수 연구팀은 간접흡연 노출의 세대 간 영향을 규명하기 위해 태즈메이니아에서 진행된 ‘태즈메이니아 종단 건강연구’ 데이터를 분석했다. 연구에는 아버지와 자녀 890쌍을 포함한 어린이 8000여명이 참여했으며, 아버지의 어린 시절 간접흡연·직접 흡연 여부, 자녀의 간접흡연 경험과 폐 건강이 장기간 추적됐다.

자녀들은 7세부터 53세까지 여러 차례 폐활량 검사를 받았고, 인구학적 특성과 호흡기 증상·질환 이력도 조사됐다. 2010년까지 생존해 추적할 수 있었던 부모 7243명 중 5111명이 재조사에 응해 본인의 부모가 흡연했는지 보고했다. 이 가운데 아버지의 사춘기 이전 간접흡연 경험과 자녀의 53세까지 폐 기능 데이터가 모두 확보된 890쌍이 최종 분석에 포함됐다.


그 결과, 아버지의 69%와 자녀의 56.5%가 어린 시절 간접흡연에 노출된 경험이 있었다. 자녀의 절반(49%)은 중년에 이르기까지 흡연 경력이 있었고, 이 시점에 만성폐쇄성폐질환 진단을 받은 비율은 약 5%였다. 특히 아버지의 어린 시절 간접흡연 노출은 다른 요인을 보정하더라도 자녀의 평생 폐 기능 저하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었다.

세부 지표를 보면, 간접흡연에 노출된 아버지의 자녀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숨을 들이마신 뒤 처음 1초간 내쉰 공기량(FEV1)이 평균 이하일 위험이 56% 높았다. 하지만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끝까지 내쉴 수 있는 공기량인 전체 호기량(FVC)과는 관련이 없었다. 또 아버지의 간접흡연 노출은 자녀의 FEV1/FVC 비율(폐 기능 지표)이 더 일찍 낮아지고 빠르게 감소할 가능성을 2배 높였다. 이 비율의 급격한 감소는 기도 협착(기도가 좁아져 공기가 폐로 드나드는 길이 막히는 상태)이나 폐 탄성 저하를 의미하며, 만성폐쇄성폐질환 발병 위험 신호로 해석된다. 아버지가 어릴 때 간접흡연을 경험했고 자녀 역시 어린 시절 간접흡연을 겪은 경우, 자녀가 평균 이하의 FEV1을 보일 확률은 2배 이상 커졌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는 흡연이 당대뿐 아니라 자녀와 손주 세대의 폐 기능에도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아버지가 사춘기 이전에 간접흡연에 노출된 경험이 있더라도 이후 자녀 곁에서는 흡연을 피하는 것이 미래 세대의 위험을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찰연구라 인과 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 “사춘기 이전은 남아 발달에 특히 중요한 시기여서 이때 해로운 물질에 노출되면 유전자 발현과 회복 메커니즘이 바뀌고, 이는 다음 세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흉부(Thorax)’에 지난 8월 27일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