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달 사이 두 명이 같은 이유로 목숨을 잃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난 22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는 이태원 참사 출동 이후 트라우마로 고통을 겪던 소방관들이 잇따라 숨진 사건과 관련해 공무상 질병 인정 확대와 국가 차원의 제도 강화를 위한 대책을 촉구했다. 소방 노조는 성명을 통해 “최근 소방공무원들의 잇따른 비극적 희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가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며 “세월호 사고, 이태원 참사 같은 대형 재난뿐 아니라 언론에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현장에서 소방공무원들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고통을 겪고 있지만, 국가적 관심과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2022년 이태원 참사 당시 구조 활동에 참여했던 인천소방본부 소속 30대 소방관 A씨는 실종된 지 열흘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한 달 전에는 같은 현장에서 활동했던 경남 고성소방서 소속(당시 용산소방서 근무) 40대 소방관 B씨가 자택에서 숨졌다. B씨는 불안장애로 오랜 기간 고통을 겪으며 질병휴직과 장기재직휴가를 반복했고, 공무상 요양을 신청했지만 지난 6월 인사혁신처로부터 불승인 통보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반복적 위험 노출로 PTSD 만성화되기 쉬워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는 충격적인 사건 이후에도 그 경험이 지속적으로 떠올라 삶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질환이다. 악몽, 회상, 극도의 불안 반응이 이어지면서 수면과 집중이 무너지고, 대인관계와 직장생활에도 큰 어려움이 발생한다. 선릉숲정신건강의학과 한승민 원장은 “PTSD는 단순히 ‘힘든 경험을 떠올리는 정도’가 아니라, 일상 전체를 흔드는 심각한 고통을 동반한다”며 “특히 소방관처럼 위험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직군은 증상이 만성화되기 쉽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2015년 서울대 간호대 연구에 따르면 소방공무원 중 심각한 증상을 보이는 비율은 9.23%로, 일반인의 평생 유병률(1~6%)보다 높았다. 이는 구조 과정에서 참혹한 장면을 반복 경험하는 특성과 관련이 있다. 2018년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 조사에서는 소방공무원이 연평균 7.8회의 충격적 현장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달에 한 번꼴로 외상 사건을 접하는 셈이다.
지난해 소방청의 ‘마음건강 설문조사’ 결과도 같은 흐름을 보였다. PTSD를 겪는 소방공무원은 4375명으로, 전년보다 0.5%p 늘어난 7% 수준이었다. 이 기간 우울 증상을 호소한 인원은 3937명, 자살 위험군은 3141명으로 각각 0.2%p, 0.3%p 증가했다.
◇다양한 지원 제도 운영 중이지만… 인력·예산·접근성 한계
소방청은 2015년부터 전문 심리상담사가 각 소방서를 직접 찾아가 일대일 상담을 제공하는 ‘찾아가는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근무지를 벗어나지 않고 심리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지만, 상담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지난해 배치된 상담사는 102명에 그쳤고, 이들이 진행한 상담 건수는 7만9000건을 넘었다. 상담사 1명당 약 780건을 소화해 충분한 상담을 이어가기 어려운 구조라는 평가다.
고위험군 소방관을 대상으로 한 ‘스트레스 회복력 강화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2025년도 예산안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참가자 10명 중 3명은 내근 인력이었다. 참혹한 현장 대원을 우선 지원한다는 취지와 달리, 실제로는 내근 부서 인력의 이용 비중이 높았다. 이에 대해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서비스 제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조직 내 분위기가 부정적이면 실제 이용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고, 전화·대면·방문 등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소방공무원에게 진료비 전액을 지원하는 사업도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관련 예산은 작년과 올해 모두 5억6000만원에 머물러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로 소방청이 지난해 실시한 ‘마음건강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방공무원의 회복 탄력성 평균 점수는 10점 만점에 5.4점으로, 전년도와 동일했다. 회복 탄력성은 외상 사건 이후에도 일상 기능을 회복하고 위기에 적응할 수 있는 심리적 능력을 뜻한다.
◇“국가·조직 차원의 책임 강화와 개인 회복 노력 필요”
전문가들은 소방관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의 고통으로 한정하지 말고, 국가와 조직이 장기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업무 트라우마는 산업재해와 같다”며 “건강검진처럼 정기적으로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소방과 경찰은 수요가 많아 자체 시스템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외부 창구를 보강해야 한다”며 “프로그램만으로는 부족하고, 무엇보다 직장에서 편안하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문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김형렬 교수는 “보상도 중요하지만 예방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증상을 조기에 발견해 중증화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트라우마를 겪는다고 모두 PTSD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지가 부족할 때 위험이 커진다”며 “특정 트라우마 발생 시 의무 상담과 의료 개입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개인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 한승민 원장은 “힘들다는 사실을 회피하지 말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트라우마 이후 1개월 이내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았는지가 회복 속도를 크게 좌우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규칙적인 수면, 운동, 호흡 훈련 같은 생활 습관도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지난 22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는 이태원 참사 출동 이후 트라우마로 고통을 겪던 소방관들이 잇따라 숨진 사건과 관련해 공무상 질병 인정 확대와 국가 차원의 제도 강화를 위한 대책을 촉구했다. 소방 노조는 성명을 통해 “최근 소방공무원들의 잇따른 비극적 희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가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며 “세월호 사고, 이태원 참사 같은 대형 재난뿐 아니라 언론에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현장에서 소방공무원들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고통을 겪고 있지만, 국가적 관심과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2022년 이태원 참사 당시 구조 활동에 참여했던 인천소방본부 소속 30대 소방관 A씨는 실종된 지 열흘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한 달 전에는 같은 현장에서 활동했던 경남 고성소방서 소속(당시 용산소방서 근무) 40대 소방관 B씨가 자택에서 숨졌다. B씨는 불안장애로 오랜 기간 고통을 겪으며 질병휴직과 장기재직휴가를 반복했고, 공무상 요양을 신청했지만 지난 6월 인사혁신처로부터 불승인 통보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반복적 위험 노출로 PTSD 만성화되기 쉬워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는 충격적인 사건 이후에도 그 경험이 지속적으로 떠올라 삶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질환이다. 악몽, 회상, 극도의 불안 반응이 이어지면서 수면과 집중이 무너지고, 대인관계와 직장생활에도 큰 어려움이 발생한다. 선릉숲정신건강의학과 한승민 원장은 “PTSD는 단순히 ‘힘든 경험을 떠올리는 정도’가 아니라, 일상 전체를 흔드는 심각한 고통을 동반한다”며 “특히 소방관처럼 위험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직군은 증상이 만성화되기 쉽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2015년 서울대 간호대 연구에 따르면 소방공무원 중 심각한 증상을 보이는 비율은 9.23%로, 일반인의 평생 유병률(1~6%)보다 높았다. 이는 구조 과정에서 참혹한 장면을 반복 경험하는 특성과 관련이 있다. 2018년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 조사에서는 소방공무원이 연평균 7.8회의 충격적 현장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달에 한 번꼴로 외상 사건을 접하는 셈이다.
지난해 소방청의 ‘마음건강 설문조사’ 결과도 같은 흐름을 보였다. PTSD를 겪는 소방공무원은 4375명으로, 전년보다 0.5%p 늘어난 7% 수준이었다. 이 기간 우울 증상을 호소한 인원은 3937명, 자살 위험군은 3141명으로 각각 0.2%p, 0.3%p 증가했다.
◇다양한 지원 제도 운영 중이지만… 인력·예산·접근성 한계
소방청은 2015년부터 전문 심리상담사가 각 소방서를 직접 찾아가 일대일 상담을 제공하는 ‘찾아가는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근무지를 벗어나지 않고 심리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지만, 상담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지난해 배치된 상담사는 102명에 그쳤고, 이들이 진행한 상담 건수는 7만9000건을 넘었다. 상담사 1명당 약 780건을 소화해 충분한 상담을 이어가기 어려운 구조라는 평가다.
고위험군 소방관을 대상으로 한 ‘스트레스 회복력 강화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2025년도 예산안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참가자 10명 중 3명은 내근 인력이었다. 참혹한 현장 대원을 우선 지원한다는 취지와 달리, 실제로는 내근 부서 인력의 이용 비중이 높았다. 이에 대해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서비스 제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조직 내 분위기가 부정적이면 실제 이용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고, 전화·대면·방문 등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소방공무원에게 진료비 전액을 지원하는 사업도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관련 예산은 작년과 올해 모두 5억6000만원에 머물러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로 소방청이 지난해 실시한 ‘마음건강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방공무원의 회복 탄력성 평균 점수는 10점 만점에 5.4점으로, 전년도와 동일했다. 회복 탄력성은 외상 사건 이후에도 일상 기능을 회복하고 위기에 적응할 수 있는 심리적 능력을 뜻한다.
◇“국가·조직 차원의 책임 강화와 개인 회복 노력 필요”
전문가들은 소방관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의 고통으로 한정하지 말고, 국가와 조직이 장기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업무 트라우마는 산업재해와 같다”며 “건강검진처럼 정기적으로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소방과 경찰은 수요가 많아 자체 시스템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외부 창구를 보강해야 한다”며 “프로그램만으로는 부족하고, 무엇보다 직장에서 편안하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문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김형렬 교수는 “보상도 중요하지만 예방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증상을 조기에 발견해 중증화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트라우마를 겪는다고 모두 PTSD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지가 부족할 때 위험이 커진다”며 “특정 트라우마 발생 시 의무 상담과 의료 개입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개인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 한승민 원장은 “힘들다는 사실을 회피하지 말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트라우마 이후 1개월 이내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았는지가 회복 속도를 크게 좌우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규칙적인 수면, 운동, 호흡 훈련 같은 생활 습관도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