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계획서 법적 효력 발동 시기 애매하고
의식불명 등 작성 불가능한 상황도 부지기수

연명의료결정법 도입으로 연명 치료를 법적으로 중단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됐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여전히 ‘DNR(심폐소생술 불원서)’이 널리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법이 보장하는 절차가 있음에도 병원들이 DNR에 의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법적 서류 놔두고 임의 동의서 활용하는 병원들
DNR은 ‘Do Not Resuscitate’의 약자다. DNR을 작성한 환자는 응급상황 시 심폐소생술이나 기관 내 삽관 등의 연명 치료를 받지 않는다. 다만 DNR은 의료기관에서 자체적으로 활용하는 임의 서식이라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작성 주체 및 작성 방법 등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 2018년,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등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법적으로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연명의료결정법’을 도입했다. 의식이 없을 걸 대비해 건강할 때 연명 치료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작성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헬스조선 취재 결과, 상급종합병원을 포함한 대다수 의료기관에서 여전히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DNR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법적으로 보호되는 서류가 있는데도 임의 동의서가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한 상급종합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의 허점이 크다 보니 그런 것”이라며 “DNR을 사용하지 않는 병원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효성 부족한 연명의료결정법 때문
의료 현장에서 DNR이 계속 사용되는 까닭은 연명의료법을 적용할 수 있는 상황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정하는 연명 치료 중단 가능 시기는 ‘말기’가 아닌 ‘임종 과정’이다. 의학적으로 말기는 수개월 내 사망이 예상되는 상태이고, 임종 과정은 사망이 임박한 때다. 의료진 2인 이상이 임종 과정이라고 판단해야만 연명의료계획서의 법적 효력이 발동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환자가 말기인지 임종 과정인지 정하는 건 어렵다. 질환 및 환자 상태에 따라 기대 여명이 크게 차이나기 때문이다. 통상 말기 암은 수개월 내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심부전이나 만성 폐쇄성 폐질환 등은 갑작스럽게 임종 과정에 돌입하기도 한다. 반면, 치매나 파킨슨병 등은 천천히, 수년에 걸쳐 악화한다.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이 아예 불가능한 사례도 많다. 현행법에서 환자의 의사결정 능력이 없다면 연명의료계획서는 직계가족 전원의 동의하에 작성해야 한다.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유신혜 교수는 “의식이 없는 환자인데 가족 중 일부와 연락이 닿지 않거나 가족관계가 단절된 경우 등 연명의료결정법을 아예 적용할 수 없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환자들이 인지 능력이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은 요양병원에서는 입원 전에 사전 조건으로 DNR을 요구하는 실정이다.
◇DNR, 환자 아닌 보호자가 작성하는 경우 많아
DNR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측면이 있다. 환자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거나 의사 능력이 없을 때 보호자에 의해 작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연세암병원 완화의료센터 박중철 교수는 “연명의료계획서를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환자의 상태가 급변하면 의료진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법적 안전장치로 DNR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결국에는 이때 환자가 아닌 보호자가 DNR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DNR이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작성하는 서식이다 보니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컨대 119 구급대가 DNR 문서의 효력이나 진위 확인을 못 해 환자 의사와 반대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연명의료결정법 폭넓게 적용해야”
◇법적 서류 놔두고 임의 동의서 활용하는 병원들
DNR은 ‘Do Not Resuscitate’의 약자다. DNR을 작성한 환자는 응급상황 시 심폐소생술이나 기관 내 삽관 등의 연명 치료를 받지 않는다. 다만 DNR은 의료기관에서 자체적으로 활용하는 임의 서식이라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작성 주체 및 작성 방법 등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 2018년,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등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법적으로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연명의료결정법’을 도입했다. 의식이 없을 걸 대비해 건강할 때 연명 치료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작성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헬스조선 취재 결과, 상급종합병원을 포함한 대다수 의료기관에서 여전히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DNR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법적으로 보호되는 서류가 있는데도 임의 동의서가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한 상급종합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의 허점이 크다 보니 그런 것”이라며 “DNR을 사용하지 않는 병원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효성 부족한 연명의료결정법 때문
의료 현장에서 DNR이 계속 사용되는 까닭은 연명의료법을 적용할 수 있는 상황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정하는 연명 치료 중단 가능 시기는 ‘말기’가 아닌 ‘임종 과정’이다. 의학적으로 말기는 수개월 내 사망이 예상되는 상태이고, 임종 과정은 사망이 임박한 때다. 의료진 2인 이상이 임종 과정이라고 판단해야만 연명의료계획서의 법적 효력이 발동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환자가 말기인지 임종 과정인지 정하는 건 어렵다. 질환 및 환자 상태에 따라 기대 여명이 크게 차이나기 때문이다. 통상 말기 암은 수개월 내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심부전이나 만성 폐쇄성 폐질환 등은 갑작스럽게 임종 과정에 돌입하기도 한다. 반면, 치매나 파킨슨병 등은 천천히, 수년에 걸쳐 악화한다.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이 아예 불가능한 사례도 많다. 현행법에서 환자의 의사결정 능력이 없다면 연명의료계획서는 직계가족 전원의 동의하에 작성해야 한다.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유신혜 교수는 “의식이 없는 환자인데 가족 중 일부와 연락이 닿지 않거나 가족관계가 단절된 경우 등 연명의료결정법을 아예 적용할 수 없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환자들이 인지 능력이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은 요양병원에서는 입원 전에 사전 조건으로 DNR을 요구하는 실정이다.
◇DNR, 환자 아닌 보호자가 작성하는 경우 많아
DNR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측면이 있다. 환자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거나 의사 능력이 없을 때 보호자에 의해 작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연세암병원 완화의료센터 박중철 교수는 “연명의료계획서를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환자의 상태가 급변하면 의료진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법적 안전장치로 DNR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결국에는 이때 환자가 아닌 보호자가 DNR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DNR이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작성하는 서식이다 보니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컨대 119 구급대가 DNR 문서의 효력이나 진위 확인을 못 해 환자 의사와 반대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연명의료결정법 폭넓게 적용해야”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려면 연명의료결정법을 폭넓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유신혜 교수는 “연명 치료 중단 가능 시기를 임종 과정에서 말기로 앞당기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비율이 늘어나면 의료 현장에서 DNR에 의존하는 경향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을 고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의료 소비를 둘러싼 문화적 측면을 재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중철 교수는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은 존엄한 죽음을 위한 법이라기보다 법적 책임을 나누기 위한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며 “주치의 제도 등을 도입해 환자들이 대형병원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 현재 의료 소비 행태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법을 고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의료 소비를 둘러싼 문화적 측면을 재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중철 교수는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은 존엄한 죽음을 위한 법이라기보다 법적 책임을 나누기 위한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며 “주치의 제도 등을 도입해 환자들이 대형병원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 현재 의료 소비 행태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