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르기 원인 못 찾아 화장품만 바꿔
국내 ‘구식 검사법’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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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새로 산 화장품이나 염색약을 쓰거나, 새로 산 세재로 빤 옷을 입다보면 간혹 두드러기 난다. 이때 우리나라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무엇이 문제였는지 모른 채, 해당 제품을 버리고 다시는 안 쓰는 것 뿐이다. 두드러기를 대하는 이런 방식이 사실 우리나라의 접촉피부염 표준 검사 항목이 정체돼 있어서 그런 것일 수 있다. 접촉피부염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진행하는 국내 첩포검사의 표준 항원은 '30년 째' 25종에 머물고 있다.

본인에게 맞지 않는 성분이 피부에 닿으면 염증 반응이 일어나는 '접촉피부염'이 생길 수 있다. 이때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어떤 성분이 문제인지 모르므로 환자는 반복적인 재발과 만성적인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가장 효과적인 예방법은 본인에게 맞지 않는 성분을 확인하고, 해당 성분이 들어가지 않은 제품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성분을 확인하는 방법은 환자 등에 알레르기 항원이 포함된 패치를 48시간 혹은 96시간 부착한 후 피부 반응을 관찰하는 '첨포검사'를 활용하면 된다. 건강보험도 적용되는 검사다.

다만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첩포검사의 효용성이 떨어진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표준접촉항원이 단 25종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접촉항원이 446종에 달하고, 미국은 80~90종, 유럽은 32종, 영국은 69종이다.

국내에서는 항원 수가 적어 첩보검사로도 제대로 원인을 파악하기 힘들다보니, 지난 2023년 검사를 받은 환자도 5916명에 그쳤다. 알레르기 접촉피부염 환자는 423만명으로 추정되는데, 이를 고려하면 검사 받은 환자 수는 0.1%에 불과하다. 나머지 99.9%는 원인을 모른채 당장 증상만 완화하는 대증요법에 의존하고 있는 것.


대한접촉피부염·알레르기학회 이가영 회장(강북삼성병원 피부과)은 "일상에서 새로 사용하는 화학물질은 종류도 그 수도 많아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몇십년째 머물러 있다"며 "대다수 다른 나라는 자유롭게 2~3년 마다 검사해야 하는 알레르기 항원 종류를 업데이트 한다"고 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화장품에 들어가는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은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큰 물질이지만, 우리나라 첩포 검사 항목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나라 첩포검사 항목이 구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첩포검사에 사용되는 항원이 우리나라에서는 의약품으로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규 항원 도입 시 각 항원별 안전성, 유효성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국내에서 처음 사용되는 성분이라면 신약 수준의 독성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임상시험을 하기 위해 드는 비용이 국내 항원 시장에서 조성되는 가격보다 훨씬 커, 사실상 새로운 항원을 들여오기 어려운 구조다.

대한접촉피부염·알레르기학회 학술대회에서 서울대병원 피부과 이동훈 교수는 "약사법이나 화장품 법 등에서 이미 안전성이 검증된 물질이라면 항원 도입 시 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한국형 패스트 트랙'을 도입할 수 있겠다"고 했다.

이가영 회장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표준항원 확대를 건의할 예정"이라며 "다 기관 연구로 지속해서 접촉항원 첩보검사 현황과 항원별 결과를 발표해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할 방침"이라고 했다.

한편, 접촉피부염이 발생했다면 지금할 수 있는 최선은 의심되는 화장품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도 중요하다. 자신에게 맞는 화장품을 찾겠다고 추가적인 새로운 화장품을 사용하면, 오히려 피부 장벽이 무너질 수 있다. 이가영 회장은 "염증으로 피부 장벽이 다 깨지면, 나중엔 아무리 저자극 성분의 화장품을 사용해도 따갑고 화끈거린다"며 "일단 피부가 뒤집어지면 클렌징, 화장품 등을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피부과를 방문해 전문가의 조언과 함께 피부를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