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외국 제약사들 “혁신 신약 ‘코리아 패싱’ 막기 위해서는…”

정준엽 기자

국내 진출 글로벌 제약사 ‘차기 정부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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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신약의 가치 평가에서 정부와 업계 간 의견 차이가 아직 남아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21대 대통령 선거가 2주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글로벌 제약업계 또한 국내 정세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제약사들은 어떤 후보가 당선되든 국내에서 원활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을 원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차기 정부에 바라는 점을 들어봤다.

◇"혁신 신약 빠른 도입 필요… 협상 기간 줄여야"
글로벌 제약업계가 차기 정부에 가장 크게 바라는 정책 개선은 '혁신 신약의 빠른 국내 도입'이었다. 혁신 신약이란 기존에 치료제가 마땅하지 않았던 질병을 고치는 신약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질병 부담이 심각한 질환에서 기존 치료법 대비 임상적으로 상당한 개선을 보여주는 치료제가 포함된다.

업계는 신약의 빠른 도입을 위해 약가 협상 시 신약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신약의 적절한 가치를 보상하는 약가가 책정돼야 회사가 개발에 투자한 원금을 회수할 뿐만 아니라, 다음 신약을 추가로 개발하는 데도 동력을 얻기 때문이다.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우리나라의 약가 제도가 지속적으로 가격을 인하하는 구조라는 점이다. 현재 한국은 신약에 보험급여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다른 OECD 국가의 약가를 참조해 가장 낮은 수준에 수렴하도록 책정하거나, 경제성 평가(신약이 기존 약 대비 치료 효과가 개선되는 정도를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증가하는 정도와 비교하는 제도)를 하더라도 불확실성에 대해 보수적으로 판단해 약가를 낮은 수준으로 책정한다.

급여 적용 후에도 여러 사후평가를 통해 지속적으로 약가를 인하하고 있다. 이는 기업들이 한국 시장 진출을 주저하는 '코리아 패싱'이 벌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A 제약사 관계자는 "약가를 낮은 수준으로 책정하는 구조로 인해 외국 규제당국이 한국의 약가를 참조하는 사례가 증가했다"며 "한국 약가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고 말했다. B 제약사 관계자 또한 "신약의 가치가 너무 낮게 평가되면 국내 시장에 진출하도록 글로벌 본사를 설득하는 것이 어려워진다"며 "혁신 신약의 임상적 가치나 사회적 파급력, 희귀성을 잘 반영할 수 있는 평가 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부·업계 간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혁신 신약의 도입이 다른 나라보다 늦어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C 제약사 관계자는 "신약 하나가 한국에서 급여를 적용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균 약 4년으로 길어 실제 신약을 적시에 사용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다"며 "약가 협상 기간을 단축하고,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성 평가 유연화 필요"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기업 간 협의체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장 개선을 바라는 영역으로는 ▲'ICER(점증적-비용 효과성 지표) 임계값' 탄력 적용 ▲경제성 평가 면제 범위 확대 ▲적응증별 약가 적용 등과 같은 ‘경제성 평가 제도’를 꼽았다. ICER란 환자에게 특정 신약을 사용하면 생존 기간이 1년 늘어난다고 가정했을 때 국가가 이를 위해 추가로 부담할 수 있는 비용을 말한다. 가령 그동안 항암제의 임계값 상한선은 5000만원가량이었는데, 이를 초과하는 약제의 경우 급여 적용 논의 자체가 쉽지 않았다. D 제약사 관계자는 "혁신성을 인정받은 신약이나 희귀질환 치료제는 적절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ICER 임계값이 좀 더 유연하게 적용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경제성 평가 면제는 약가 비교가 가능한 약제가 없어 일반적인 경제성 평가로 약가를 정하기 어려운 희귀질환 치료제에 한해 경제성 평가를 면제해 주는 제도다. 다만 조건에 맞게 면제를 받을 수 있는 약제가 극소수에 불과해, 혁신성이 높은 약제를 경제성 평가 면제 대상으로 추가 지정하자는 논의도 진행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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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사진=헬스조선DB
적응증(효능)이 여러 개인 약의 경우 적응증별로 약가를 다르게 책정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A 제약사 관계자는 "여러 적응증에 사용이 가능한 약제일 경우, 적응증에 따라 환자 수, 치료 효과, 재정 영향 등에 모두 차이가 있으나 일괄 약가를 적용하고 있어 일부 적응증으로는 급여를 확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며 "적응증별 약가 제도 도입을 통해 필요한 치료 선택지가 국내에 도입되지 못하는 경우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백신 NIP 정책 정비에도 관심을…"
초고령 사회 진입에 맞춰 백신의 국가예방접종사업(NIP)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E 제약사 관계자는 "초고령화 사회에 대응해 성인 대상 예방접종 정책의 확대가 질병관리청의 업무 계획에도 포함된 만큼, 성인의 질병 부담이 큰 질환에 대한 NIP 포함이 시급하다"며 "사회적 논의를 통해 적시에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질환을 관리하면, 장기적으로 합병증 예방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비용·질병 부담 감소, 달라진 인구 구조에 따른 국민 건강 증진 도모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제약사 간 소통 방식 개선을 희망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F 제약사 관계자는 "정부에 비슷한 민원을 반복적으로 제기하고는 있으나, 아직은 점진적으로 느리게 이뤄지고 있다"며 "그 사이에 환자들이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선 환자가 필요한 약을 먼저 사용하게 하고 정부와 제약업계가 사후적으로 방법을 찾는 방안도 논의가 되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고 했다.


◇"임상시험 지원 시급… 경쟁력 유지에 도움"
한국은 그동안 글로벌 제약사들 사이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하기 매력적인 시장으로 평가받아 왔다. 하지만 최근 임상시험 유치 경쟁이 심해지면서, 약가를 낮게 책정하거나 임상시험 관련 규제가 까다로운 국가에 대한 투자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 제약업계가 전 세계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임상시험의 꾸준한 한국 유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C 제약사 관계자는 "국제 기준에 따라 해외에서 이미 승인받은 연구는 중복되는 규제를 최소화하고, 임상시험계획(IND) 심사 기간 단축을 통해 신속한 착수를 지원하면 글로벌 임상시험 유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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