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질환

조류 인플루엔자의 ‘팬데믹 징후’ [따져봤다]

이슬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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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 팬데믹 전에도 비상등이 몇 번 켜졌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슨'에 중국 말굽박쥐가 가진 바이러스가 야생 동물 시장을 통해 인간을 감염시킬 수 있고, 그 위해성이 '폐'에 집중될 수 있다고 예측한 논문이 이미 2015년에 게재됐었다. 또 중국 네 개 농장에서 2만 4700여 마리 새끼돼지가 대규모 폐사한 적이 있었는데, 2018년에 권위있는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서 박쥐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돼지 급성 설사 증후군을 일으킨 게 원인이라고 봤다. 이 연구팀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공중 보건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박쥐 코로나 바이러스의 다양성과 분포를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최근 마찬가지로 팬데믹 징후를 보이는 바이러스가 있다. 바로 조류 인플루엔자다. 조류를 넘어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까지 종간 감염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심지어 올해 초에는 미국에서 첫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와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은 코로나 팬데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조류 인플루엔자 팬데믹 위험성과 대응전략'이란 주제로 공동 포럼을 지난 12일 개최했다. 결론적으로 전문가 말을 종합해보면, 조류 인플루엔자 유발 가능성을 예측할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WHO는 “낮다”고 본 팬데믹 가능성, 대책 마련 왜 필요한가
조류 인플루엔자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조류에서 생기는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다. 조류에서 인간까지는 전파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바이러스가 팬데믹을 일으키려면 '사람'에서 '사람'으로도 감염시킬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이 장벽을 넘지 못했는데, ▲돌연변이가 발생하거나 ▲유전자가 재조합되면 앞으로는 모를 일이다.

일단 유엔 식량 농업 기구(FAO)·세계보건기구(WHO)·세계동물보건기구(WOAH)에서는 현재 조류 인플루엔자의 팬데믹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사람 간 전염이 가능하려면, 바이러스가 넘어야 할 장벽이 꽤 높기 때문이다. 바이러스가 조류나 사람 같은 숙주의 체내에 진입하려면, 숙주 세포의 수용체에 달라붙어야 한다.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헤마글루티닌(HA) 단백질은 'α-2,3 시알산 수용체'에 달라붙는다. 이 수용체는 조류에 많은데, 사람의 코나 목 등 상기도에는 'α-2,3 시알산 수용체'이 아닌 'α-2,6 시알산 수용체'가 주를 이룬다. 당연히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체내 침입하기 어렵고, 상기도에 머물지 못해 사람간 전파가 생기기 어렵다. 간혹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되는 사람은 하기도에 일부 존재하는 'α-2,3 시알산 수용체'를 통해 바이러스가 진입한 것이다. 지금까지 보고된 조류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은 축산업에 종사한 사람이었다. 서울대 의대 감염내과 김남중 교수는 "돌연변이 등으로 상기도 수용체에 붙을 수 있어 사람간 감염이 가능해지더라도, 이때는 하기도 까지 내려가기 어려워 중증도는 낮을 가능성이 크다"며 "변이 발생을 추적하면 예측도 가능해, 기관에서 현재 조류 인플루엔자 팬데믹 가능성은 낮다고 본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돌연변이는 감시가 가능하다.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표면에 주목해야 하는 단백질은 두 가지인데, 한 가지는 앞서 말한 HA이고 나머지는 뉴라미니디아제(NA)다. NA는 증식한 바이러스가 세포를 뚫고 몸 속으로 깊숙이 진입하도록 한다. 현재 고병원성이고 사람에게 감염된 적 있는 HA 5형·NA 1형인 H5N1 바이러스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빨리 복사해서 널리 퍼지는 게 중요한 RNA 바이러스라, 돌연변이를 쉽게 일으킨다. 가지치듯 진화하는 과정을 계통수로 따라 명명하고 있다. 최근에는 H5N1중 2.3.4.4b형이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기관과 달리 전문가들 대다수는 조류 인플루엔자의 팬데믹 가능성을 꽤 높게 전망한다. 지난해 유럽 임상 미생물학·전염병 학회(ESCMID)에서 세계 57개국 감염병 전문가 187명을 대상으로 팬데믹 가능성이 큰 병원체를 물어본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는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1위로 꼽혔다. 이유는 '유전자 재조합'이라는 변수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조류 인플루엔자는 유전정보를 8조각 형태로 갖고 있다. 8권의 책으로 유전정보를 보관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 숙주에 여러 인플루엔자가 동시에 감염되면, 각 인플루엔자의 유전정보 몇 조각이 섞여서 새로운 조합의 바이러스가 생길 수 있다. 이걸 유전자 재조합이라고 한다. 김 교수는 "유전자 재조합은 발생을 예측하기 어렵다"며 "현재 조류 인플루엔자의 팬데믹 가능성이 낮아도 대책 방안을 마련하고 있어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조류→포유류→사람, ‘스필 오버’ 현상 일어나
이론적으론 조류 인프루엔자 팬데믹 가능성이 커보이지 않지만, '추세'는 다르다.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포유류로 넘쳐 흘러, 인간에게 까지 도달하는 '스필오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21년 유럽과 미주 지역을 중심으로 조류 인플루엔자가 급격히 확산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조류 2억 8000만 마리가 폐사했고, 점점 포유류 감염이 증가하고 있다. H5N1 바이러스는 최소 200건 포유류 감염이 나타난 것으로 조사된다. 여우, 고양이, 흰족제비, 물개, 돌고래 등 55종 이상에서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됐다. 인간 감염도 지속하고 있는데, 2023년 이후 22개국에서 893명이 감염됐다.

서울대 수의과대 송대섭 교수는 "지금까지 젖소는 관찰과 실험을 통해 조류 인플루엔자에 잘 감염되지 않는 축종으로 간주돼 왔다"며 "지난해 전례 없이 미국 15개 주 473개 농장의 젖소에서 H5N1 감염이 확인됐고, 감염된 젖소의 우유를 마신 고양이가 폐사하는 사례까지 나타났다"고 했다. 이어 "젖소에서 사람에서만 나타나던 바이러스 유전형도 섞여 나타나고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사람에서 동물로 감염되는 역인수공통감염병이 포유류 내에서 돌연변이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송 교수는 "특히 돼지는 조류 인플루엔자와 사람 인플루엔자 모두에 감염될 수 있는 수용체를 갖고 있어 관리·감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국내 돼지에서도 두 바이러스가 무작위로 재조합돼 돌고 있는 게 확인됐다"고 했다.

◇외국에서 야생 동물 봤는데 '결막염' 생겼다면, 검사 받아야
가장 중요한 건 그래서 지금 치료제가 있는가이다. 있다. 지금까지 개발된 인플루엔자 치료제 모두 조류 인플루엔자 감염을 억제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치료제는 ▲M2 이온 채널 억제제(체내 들어온 바이러스의 RNA 방출을 막아 복제 시작하지 못하게 막음) ▲뉴라미니다제 억제제(복제된 바이러스가 세포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억제) ▲엔도뉴클레이즈 억제제(단백질을 만들지 못하게 막아 복제 차단) 등으로 나뉜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건 뉴라미니다제 억제제인 '타미플루'다.

국내 조류 독감이 퍼질만한 사각지대가 있다면, 외국을 통해 들어오는 경로다. 우리나라 축산업 종사자들은 질병관리청, 농식품부, 환경부의 관리 적극적인 관리를 받고 있다. 유사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검사를 진행한다. 질병관리청 신종감염병대응과 여상구 과장은 "해외에 다녀온 국민을 대상으로도 무료 공항 검사를 제공하고 있다"며 "병든 닭, 야생동물 등과 접촉하고 호흡기 증상이 있다면 자발적으로 검사를 받길 권고한다"고 했다. 의심할 수 있는 증상으로는 발열, 기침, 콧물, 목아픔, 두통, 근육통, 복통 등이 있다. 특히 결막염과 눈 충혈이 조류 인플루엔자 감염에서 나타날 수 있는 특이한 증상인데, 각막에 'α-2,3 시알산 수용체'가 있기 때문이다. 공항을 나온 뒤 증상이 의심되면 빠르게 의료진을 찾아야 한다. 1339번으로 질병관리청에 신고할 수도 있다.

서울대 의대 이찬미 교수는 "인플루엔자 치료제 기전 상 바이러스를 없애는 게 아니라 증식을 억제하는 약이므로, 빠르게 약을 먹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게다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초기 24~48시간에 폭발적으로 증식해, 약을 먹는 시간을 앞당길수록 치료 속도도 앞당길 수 있다. 이 교수는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치료제의 감수성이 저하할 수 있으므로, 정부에서는 항바이러스제 내성과 관련해 주기적으로 감시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백신도 있다.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사람용 조류 인플루엔자 백신 개발 확보를 완료한 상황이다. 임상 결과 높은 면역원성과 안전성이 확인됐다. 질병청은 "재 H5N1 백신은 국내 개발된 상태여서, 하위 아형으로 대유행이 발생할 경우 균주를 변경해 90일 만에 백신을 개발할 수 있다"고 했다. 대유행 조기 탐지를 위해 동물과 사람 모두 감시하는 원헬스 통합관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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