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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여읜 외동에, 결혼도 안 했는데… “보호자 없어서 수술 못 받나요?”

오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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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50대 여성 A씨는 지난해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부모님을 모두 여의게 됐다. 형제, 자매도 없고 결혼하지 않아 남편과 자녀도 없다. 그렇게 혼자 살다가 최근 건강검진을 받았고 검진 결과, “뇌동맥류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수술할 단계가 아니니 일단 지켜보자”고 했지만 A씨는 걱정이 앞섰다. 수술을 받으려면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다고 알고 있는데 이를 작성해줄 가족이 없었기 때문이다. 평소 왕래가 없던 사촌 동생에게 동의서를 쓰러 3~4시간 걸리는 서울까지 올라오라고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난감한 상태다. A씨의 우려처럼 보호자가 없으면 병원에서 수술을 못 받는 걸까?

◇보호자 동의라는 명목 하에 연대보증 요구
의료법에 따르면, 만 19세 이상 성인이고 의사 결정 능력이 있다면 본인이 직접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고 수술을 받을 수 있다. ▲미성년자 ▲의식 불명 ▲치매 및 정신질환으로 인한 판단력 저하가 심한 경우에만 법정대리인의 서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병원에서 수술이나 입원을 앞둔 환자들에게 ‘연대보증’의 형태로 보호자 동의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2017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수술약정서에 연대보증인을 요구하는 행위는 환자의 정당한 진료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해 개선을 권고했지만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관계자 B씨는 “병원마다 양식은 다르지만 보호자 동의라는 명목 하에 연대보증을 요구하는 관행은 근절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과거에 비해 줄기는 했지만 보호자 동의를 요구하는 병원에 대한 민원이 종종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진료비 못 받았을 때 대비하는 성격도
병원들이 불법을 자행하면서도 환자에게 보호자 동의를 요구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환자 상황이 악화했을 때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전신마취가 필요한 수술을 하다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자리에서 의료진과 의논해 다음 단계를 결정할 수 있는 건 법정 대리인뿐이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가정의학과 교수는 “수면 내시경만 하더라도 가벼운 혈압 저하부터 사망까지 여러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며 “상황이 안 좋게 됐을 때를 대비해서 보호자 동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이유는 진료비 수납이다. 환자가 돈이 없거나 사망해 진료비를 받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연대보증인의 동의를 받아 놓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몇몇 대형 병원은 ‘진료비 후불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일부 의료기관에 불과하다.

◇수술 동의할 수 있는 보호자 범위 넓혀야
보호자 동의를 요구하는 게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다만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보호자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정대리인은 통상 민법이 규정하는 ‘부양 의무자’인 부모, 직계 존·비속, 배우자, 생계를 같이하는 친족 등으로 해석된다. 이 때문에 오랜 시간 동거한 친구나 사실혼 관계에 있는 배우자는 수술 및 입원에 대신 동의할 수 없다. 10년을 같이 살았든, 20년을 같이 살았든 법적으로 연결돼 있지 않다면 소용이 없다.

안기종 대표는 “서로 돌봐주는 노인들이 많은데 이들이 서로를 지정해 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필요해 보인다”며 “아울러 혼자 사는 노인은 동사무소 사회복지사 등이 수술에 동의할 수 있게끔 하는 방안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 국무총리 소속 소비자정책위원회는 “법정 대리인이 없는 환자가 자신을 대신해 수술 동의 등을 할 수 있는 대리인을 사전에 지정할 수 있도록 의료법에 근거를 마련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그 이후 2022년, 국회에는 환자가 사전에 지정한 사람이 법정대리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진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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