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산업
“당신의 몸에 맞춘 쿠키, 프린터로 뽑아드립니다” [푸드 테크 스타트업]
이슬비 기자
입력 2025/04/09 16:09
푸드 3D 프린터
탑테이블 유현주 대표 인터뷰
푸드 3D 프린트 기업 탑테이블 유현주 대표가 푸드 3D 프린터 관련 투자를 받기 위해 돌아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이 말들은 오히려 유 대표의 투지를 불태웠다. 유 대표는 "안 가본 길이니까 모르는 거라고 생각했고, 멈출 수 없었다"고 했다.
5년 뒤 유대표는 '탑테이블'을 국내 푸드 3D 프린터 시장에서 독보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자기가 원하는 모양대로 음식을 뽑아먹을 수 있게 됐고, 개인에게 꼭 맞는 영양소가 들어간 쿠키·양갱 등을 제작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세계 최대 규모 가전 전시회인 'CES'에서 2023년에는 사람이 제작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양을 3D 프린터로 뽑아내는 기술로 혁신상을 받았고, 2024년에는 개인에게 딱 필요한 영양 성분만 있는 영양제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최고 혁신상'을 수상했다.
식품 비전공자인 유 대표는 NGO 단체 근무 당시 탈북자 지원 타르트 매장을 운영하면서 '똑같은 모양의 디저트를 인쇄해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후 3D 프린터 시장에 직접 뛰어들어, 하나하나 공부하고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어 여기까지 왔다. 유 대표가 그린 미래 식품이란 무엇인지 들어봤다.
-탑테이블의 주력 사업은 무엇인가?
“입체 도형을 찍어내는 3D 프린터에 초콜릿, 양갱 등 식품 소재를 잉크로 넣어, 새로운 식품으로 뽑아내는 게 3D 푸드 프린팅이다. 우리 회사는 3D 프린터(하드웨어)와 프린터로 뽑기 적합하게 식품 원료를 잉크로 설정하는 방법(소프트웨어)을 모두 개발한다. 우리 비즈니스 모델은 크게 ▲관능 ▲기능, 두 가지로 나뉜다. '관능'은 처음 회사를 설립하게 된 계기에 맞게 3D 프린팅을 '푸드 아트'에 적용해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하는 게 목적이다. 우리는 '푸드테인먼트'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레터링 케이크를 원하는 대로 제작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별 모양 파스타·프릴 무늬 버터 등을 만들 수 있다. 단순히 '먹는 것'을 넘어 즐거움과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 '기능'은 개인에게 최적화된 맞춤형 식단을 3D 프린터로 제작하는 게 목적이다. 3D 프린터를 활용하다 보니, 한 사람에게 딱 맞는 물성과 양을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장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역량으로 고부가 가치를 생산하는 산업으로 확장해 보려고 한다.”
“3D 프린팅은 가로와 세로가 있는 픽셀에서 한 축을 위로 올린 '복셀'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이때 식품 소재 잉크가 중력을 버티지 못하면 무너져 내린다. 반대로 소재 물성이 너무 딱딱하면 많은 압력이 필요하다. 정교한 작업을 위해 아주 얇게, 배경을 칠하기 위해 넓게 잉크를 뽑아낼 때마다 적합한 물성이 달라진다. 각도도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파스타, 쿠키 등 어떤 식품의 반죽이냐에 따라 들어가는 소재가 달라 또 고려해야 할 범위가 넓어진다. 적층할 때도 이전에 뽑아낸 잉크가 적절히 굳어있어야 하는데, 소재마다 '적절한 정도'가 다 다르다. 소재별로 적합한 물성을 찾기 위해 밤·낮을 테스트하며 분류하기 시작했다. 이걸 체계화하기 위해, 인공지능 관련 석사 과정을 밟았고, 지금은 AI로 재료별 3D 프린팅에 적합한 설정을 도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뽑아내길 원하는 원료와 모양에 맞춰, 적합한 재료의 굵기, 온도, 노즐 모양 등 세세한 설정의 최적값을 AI가 알려준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은 어린이와 노인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조작이 쉽게 구현됐다. 사용할 수 있는 원료는 수십 종이 넘는다.”
“3D 프린터를 이용하면 한 복셀마다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넣을 수 있어, 매우 정밀한 작업이 가능하다. 개인에게 맞는 물성으로, 적당량의 기능성 원료를 넣어 제작할 수 있는 것. 예를 들어보겠다. 노화하면 호흡기 근육이 약해지면서 삼킴곤란증이 생기기 쉽다. 이땐 식도가 아닌 기도로 음식이 잘 못 들어갈 수 있는데, 폐렴 등이 생길 수 있어 위험하다. 3D 프린터로 개인에게 필요한 영양 성분을 넣어, 먹기 안전한 겔이나 필름 형태의 음식을 제작할 수 있다. 탄·단·지 외에 비타민 등 기능성 영양성분도 작은 구슬 알갱이로 잉크에 넣을 수 있다. 맞춤형 영양제가 포함된 식단을 만들 수 있는 셈이다. 이 외에도 BMI(체질량 지수), 유전·문진 정보 등을 고려한 맞춤형 식단 제공이 가능하다.”
-인체 녹는 지점까지 설정할 수 있다던데?
“바이오·제약 분야에서는 약물을 어디에서 흡수시켜야 효율이 가장 높은지를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연구해 왔고, 적절한 전달 시스템을 설계해 왔다. 우리는 이 기술을 3D 프린터와 결부시켜 활용했다. 구슬 알갱이 형태로 잉크에 넣은 이유다.”
-잉크의 인체 안전성은 확인됐는가?
“말 그대로 식품으로 만든 것이므로 당연히 먹어도 되고, 안전하다. 초콜릿, 양갱, 밀가루 반죽 등을 주사기 같은 용기에 넣어 프린터에 장착하면, 프린터가 적절한 압력, 온도 등으로 사용자가 요청한 모양과 질감대로 3D 형태의 입체 도형을 뽑아낸다.”
“레터링을 예로 들어보겠다. 1초당 10cm 정도 움직인다. 여러 기업에서 생산에 대해 문의를 해서, 한 번에 여러 개의 노즐이 움직이는 프린터를 개발했다. 'Happy birthday' 10개를 동시에 그리면 4초에 10개의 레터링을 끝낼 수 있다.”
-앞으로의 중장기적 계획은?
“관능, 기능 라인 모두 기술 개발은 끝났다. 올해부터 기업에서 요청하는 바에 맞게 B2B(기업 간 거래)로 대기업과 공장식 3D 프린팅 기술이 활용 가능한지 충분히 검증·활용할 예정이다. 맞춤형 고령화 식품 생산과 관련해서는 정부와 협력해 지속해서 개발해 갈 예정이다. 내년에는 해외로 나가는 게 목표다. 가장 한국적인 게 성공한다고 믿는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수준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테스트를 잘하고,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해 나라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 지난해 미군과 맞춤형 제품 생산에 관한 의논을 나눴다. 더 나아가 바이오테크 분야 진출도 계획하고 있다. 미국에는 약을 공장에서 맞춤형으로 제작해 배달하는 제도가 있다. 처방전을 공장으로 전달하면 일주일에서 한 달 치를 제조해 개인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3D 프린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해당 분야로 진출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