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HIV 신약은 왜 ‘주사’로 개발됐을까?
정준엽 기자
입력 2025/04/04 18:07
이달부터 보험급여가 적용되는 '보카브리아(성분명 카보테그라비르)'·'레캄비스(성분명 릴피비린)' 병용요법은 두 달에 한 번 맞는 HIV 주사다. 해당 치료법은 알약이 아닌 주사제임에도 환자들의 복약순응도를 높였다고 평가받는다. 어떻게 이런 평가가 나올 수 있었을까. 실제 약을 사용하는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그 이유에 대해 물었다.
◇매일 복용 부담·사회적 낙인에… 장기지속형 주사 수요 증가
사실 HIV 치료제는 주사제가 등장하기 전까지도 많은 발전이 이뤄졌다. 최초 치료제가 등장했을 당시에는 경구제를 한 번에 5알씩 3회, 하루에 총 15알을 먹어야 할 만큼 번거로웠지만, 각각 치료제의 성분을 복합한 신약이 등장하면서 1일 1회 1알만 복용하면 되게끔 편의성이 개선됐다. 대표적인 약으로는 GSK의 2제 복합제 '도바토(성분명 돌루테그라비르·라미부딘)'와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3제 복합제 '빅타비(성분명 빅테그라비르·테노포비르알라페나미드·엠트리시타빈)'가 있다.
여기까지만으로도 HIV 치료제가 충분히 발전한 것은 맞다. 다만, 주사제가 새롭게 등장한 것은 환자들 사이에서의 추가적인 미충족 수요와 관련이 있다. 환자들은 ▲약을 매일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강박을 느끼거나 ▲주변 사람에게 약을 먹다 들켜 질환에 대해 추궁받거나 ▲병원에서 받아오는 약의 개수가 많아 숨기는 데 불편함을 겪거나 ▲약을 복용할 때마다 자신이 HIV에 감염됐다는 사실에 좌절하는 사례가 있었다.
◇매일 복용 부담·사회적 낙인에… 장기지속형 주사 수요 증가
사실 HIV 치료제는 주사제가 등장하기 전까지도 많은 발전이 이뤄졌다. 최초 치료제가 등장했을 당시에는 경구제를 한 번에 5알씩 3회, 하루에 총 15알을 먹어야 할 만큼 번거로웠지만, 각각 치료제의 성분을 복합한 신약이 등장하면서 1일 1회 1알만 복용하면 되게끔 편의성이 개선됐다. 대표적인 약으로는 GSK의 2제 복합제 '도바토(성분명 돌루테그라비르·라미부딘)'와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3제 복합제 '빅타비(성분명 빅테그라비르·테노포비르알라페나미드·엠트리시타빈)'가 있다.
여기까지만으로도 HIV 치료제가 충분히 발전한 것은 맞다. 다만, 주사제가 새롭게 등장한 것은 환자들 사이에서의 추가적인 미충족 수요와 관련이 있다. 환자들은 ▲약을 매일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강박을 느끼거나 ▲주변 사람에게 약을 먹다 들켜 질환에 대해 추궁받거나 ▲병원에서 받아오는 약의 개수가 많아 숨기는 데 불편함을 겪거나 ▲약을 복용할 때마다 자신이 HIV에 감염됐다는 사실에 좌절하는 사례가 있었다.
한양대병원 감염내과 김진남 교수는 "그동안 치료법이 발전했지만, 환자들이 일상생활을 매일 먹게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약을 먹는지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사회적으로 HIV에 대한 낙인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장기지속형 주사제가 복약 편의성을 개선했다고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HIV 주사, ‘나노서스펜션’ 기술 활용… 약효 2개월까지 연장
보카브리아·레캄비스 병용요법은 약물의 내약성을 확인하기 위해 주사 시작 전 1개월(최소 28일) 동안 동일 성분의 경구제 두 알(릴피비린 1정, 카보테그라비르 1정)을 1일 1회 식사와 함께 복용한다. 경구 투여 마지막 날 첫 주사를 투여하며, 1개월 후 주사를 한 번 더 투여한다. 그 이후부터는 2달마다 한 번씩 투여하면 된다.
새로운 주사제의 핵심은 '장기지속형'이라는 점이다. 레캄비스와 보카브리아는 약물입자를 아주 작게 쪼개고 분산시킨 뒤 초미세 가루로 만들어 약효를 높이는 '나노서스펜션' 기술이 적용된 주사제다. 이 기술을 적용한 주사제는 ▲물에 잘 녹지 않는 성질 ▲몸에서 오래 유지되는 성질(반감기 약 40시간) ▲강력한 항바이러스 효과를 가진다.
한국GSK 관계자는 "보카브리아·레캄비스 병용요법은 나노서스펜션 기술의 핵심 성분인 나노크리스탈 기술을 적용해 만들었다"며 "보카브리아의 주성분인 카보테그라비르는 물에 잘 녹지 않고 몸에서 천천히 분해되며 높은 녹는점을 가진 덕분에 장기지속형 주사제로 개발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의료진 "복약 일정 지키기 어려운 환자 혜택 클 것"
의료진에 따르면, 장기지속형 주사제는 일상생활 사정이나 질환에 대한 낙인 등으로 매일 경구제를 복용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출장이 많아 약을 매일 챙기기 어렵거나, 약을 먹을 때 주변의 시선에 큰 부담을 느끼는 환자들이 대표적이다. 이 경우 장기주사제로 투약 방법을 바꿔 매일 약을 먹지 않아도, 자신이 HIV 환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아도 치료를 이어갈 수 있다.
반면, 병원에 자주 방문하기 힘든 환자도 많아 경구제의 선호도 역시 계속 높을 전망이다. 경구제는 병원 방문이 늦어지더라도 기존에 받은 여유분이 있으면 대신 복용하면 되지만, 장기지속형 주사제는 2개월의 투여 간격을 지켜야 한다. 앞뒤로 1주일 정도는 괜찮지만, 그 이상을 벗어났을 때는 경구제 복용부터 1개월 간격 주사까지의 과정을 다시 거쳐야 한다.
의료진은 환자들의 일상 여건에 따라 제형 선호도가 서로 다르다고 설명한다. 김진남 교수는 "경구제에서 주사로 바꾼 환자들은 좋았다는 의견을 주는 경우가 많았고, 실제로 언제 도입되는지 묻는 환자들도 있었다"면서도 "2개월마다 연차를 사용하고 병원에 오기 어려워 주사제 사용을 고려하기 어렵겠다고 말한 환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HIV 주사, ‘나노서스펜션’ 기술 활용… 약효 2개월까지 연장
보카브리아·레캄비스 병용요법은 약물의 내약성을 확인하기 위해 주사 시작 전 1개월(최소 28일) 동안 동일 성분의 경구제 두 알(릴피비린 1정, 카보테그라비르 1정)을 1일 1회 식사와 함께 복용한다. 경구 투여 마지막 날 첫 주사를 투여하며, 1개월 후 주사를 한 번 더 투여한다. 그 이후부터는 2달마다 한 번씩 투여하면 된다.
새로운 주사제의 핵심은 '장기지속형'이라는 점이다. 레캄비스와 보카브리아는 약물입자를 아주 작게 쪼개고 분산시킨 뒤 초미세 가루로 만들어 약효를 높이는 '나노서스펜션' 기술이 적용된 주사제다. 이 기술을 적용한 주사제는 ▲물에 잘 녹지 않는 성질 ▲몸에서 오래 유지되는 성질(반감기 약 40시간) ▲강력한 항바이러스 효과를 가진다.
한국GSK 관계자는 "보카브리아·레캄비스 병용요법은 나노서스펜션 기술의 핵심 성분인 나노크리스탈 기술을 적용해 만들었다"며 "보카브리아의 주성분인 카보테그라비르는 물에 잘 녹지 않고 몸에서 천천히 분해되며 높은 녹는점을 가진 덕분에 장기지속형 주사제로 개발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의료진 "복약 일정 지키기 어려운 환자 혜택 클 것"
의료진에 따르면, 장기지속형 주사제는 일상생활 사정이나 질환에 대한 낙인 등으로 매일 경구제를 복용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출장이 많아 약을 매일 챙기기 어렵거나, 약을 먹을 때 주변의 시선에 큰 부담을 느끼는 환자들이 대표적이다. 이 경우 장기주사제로 투약 방법을 바꿔 매일 약을 먹지 않아도, 자신이 HIV 환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아도 치료를 이어갈 수 있다.
반면, 병원에 자주 방문하기 힘든 환자도 많아 경구제의 선호도 역시 계속 높을 전망이다. 경구제는 병원 방문이 늦어지더라도 기존에 받은 여유분이 있으면 대신 복용하면 되지만, 장기지속형 주사제는 2개월의 투여 간격을 지켜야 한다. 앞뒤로 1주일 정도는 괜찮지만, 그 이상을 벗어났을 때는 경구제 복용부터 1개월 간격 주사까지의 과정을 다시 거쳐야 한다.
의료진은 환자들의 일상 여건에 따라 제형 선호도가 서로 다르다고 설명한다. 김진남 교수는 "경구제에서 주사로 바꾼 환자들은 좋았다는 의견을 주는 경우가 많았고, 실제로 언제 도입되는지 묻는 환자들도 있었다"면서도 "2개월마다 연차를 사용하고 병원에 오기 어려워 주사제 사용을 고려하기 어렵겠다고 말한 환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환자들도 장기지속형 주사 환영… "질환 인식 개선돼야"
환자들도 대체로 장기지속형 주사제의 도입을 반기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경구제를 더 선호하는 의견도 나온다. HIV/AIDS 감염인 커뮤니티 '러브포원' 박광서 대표는 "환자들은 새로운 치료 선택지가 등장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환영하는 입장"이라면서도 "다만 두 달에 한 번 병원에 가야 하더라도 주사제를 맞겠다고 하는 환자도 있고, 두 달에 한 번 병원에 가는 게 오히려 힘들어 차라리 약을 먹겠다고 하는 환자도 있다" 고 말했다.
장기지속형 주사에 대한 선호도와 복약순응도를 더 높이기 위해서는 질환에 대한 인식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론 그렇지 않음에도, 같은 공간에 머물거나 잠시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전염될 수 있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박광서 대표는 "채혈 후 의료진이 대놓고 환자 앞에서 채혈실을 소독하거나 주사실에서 다른 환자와 다르게 대하는 일이 자꾸 생기면, 환자가 병원을 자주 방문하는 게 오히려 불편할 수 있다"며 "병원 관계자들이 HIV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차별적인 행동을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주사 내성, 우리나라는 가능성 낮아… 진짜 경계할 문제는 '통증'
장기지속형 주사의 내성 발생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치료제가 많이 발전하지 않았을 때부터 감염 치료를 시작한 환자 중 치료 실패를 경험한 사례가 있어, 장기지속형 주사도 맞은 후 내성이 생길 위험이 있진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실제 장기지속형 주사의 내성은 HIV PrEP(노출 전 예방) 요법 시 보카브리아의 주성분인 카보테그라비르를 정맥주사로 투여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장기지속형 주사의 내성 문제는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내에서는 PrEP 요법으로 카보테그라비르 정맥주사를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진남 교수는 "과거에 치료받았던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현재 PrEP 요법을 받는 대다수의 국내 환자는 경구제를 사용한다"며 "보고됐던 장기지속형 주사의 내성 문제는 PrEP 요법으로 카보테그라비르 정맥주사를 사용한 외국의 사례"라고 말했다.
오히려 의료계에서 경계하고 있는 장기지속형 주사의 문제점은 주사 부위 통증이 크다는 점이다. 보카브리아·레캄비스로 치료받기 위해서는 매 치료마다 둔부(엉덩이) 근육에 두 차례 주사를 맞아야 한다. 국내 임상 시험 결과에 따르면 비율이 5% 미만이기는 하나, 통증으로 인해 투약을 중단한 사례도 있었다.
김진남 교수는 "반복적으로 투여하다 보면 강도는 줄어든다고 하지만, 국소로 투여하는 약제다 보니 근육 주사 시 통증이 크다고 알려졌다"며 "약제가 병원에 들어오게 되면 주사 방법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환자들도 대체로 장기지속형 주사제의 도입을 반기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경구제를 더 선호하는 의견도 나온다. HIV/AIDS 감염인 커뮤니티 '러브포원' 박광서 대표는 "환자들은 새로운 치료 선택지가 등장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환영하는 입장"이라면서도 "다만 두 달에 한 번 병원에 가야 하더라도 주사제를 맞겠다고 하는 환자도 있고, 두 달에 한 번 병원에 가는 게 오히려 힘들어 차라리 약을 먹겠다고 하는 환자도 있다" 고 말했다.
장기지속형 주사에 대한 선호도와 복약순응도를 더 높이기 위해서는 질환에 대한 인식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론 그렇지 않음에도, 같은 공간에 머물거나 잠시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전염될 수 있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박광서 대표는 "채혈 후 의료진이 대놓고 환자 앞에서 채혈실을 소독하거나 주사실에서 다른 환자와 다르게 대하는 일이 자꾸 생기면, 환자가 병원을 자주 방문하는 게 오히려 불편할 수 있다"며 "병원 관계자들이 HIV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차별적인 행동을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주사 내성, 우리나라는 가능성 낮아… 진짜 경계할 문제는 '통증'
장기지속형 주사의 내성 발생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치료제가 많이 발전하지 않았을 때부터 감염 치료를 시작한 환자 중 치료 실패를 경험한 사례가 있어, 장기지속형 주사도 맞은 후 내성이 생길 위험이 있진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실제 장기지속형 주사의 내성은 HIV PrEP(노출 전 예방) 요법 시 보카브리아의 주성분인 카보테그라비르를 정맥주사로 투여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장기지속형 주사의 내성 문제는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내에서는 PrEP 요법으로 카보테그라비르 정맥주사를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진남 교수는 "과거에 치료받았던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현재 PrEP 요법을 받는 대다수의 국내 환자는 경구제를 사용한다"며 "보고됐던 장기지속형 주사의 내성 문제는 PrEP 요법으로 카보테그라비르 정맥주사를 사용한 외국의 사례"라고 말했다.
오히려 의료계에서 경계하고 있는 장기지속형 주사의 문제점은 주사 부위 통증이 크다는 점이다. 보카브리아·레캄비스로 치료받기 위해서는 매 치료마다 둔부(엉덩이) 근육에 두 차례 주사를 맞아야 한다. 국내 임상 시험 결과에 따르면 비율이 5% 미만이기는 하나, 통증으로 인해 투약을 중단한 사례도 있었다.
김진남 교수는 "반복적으로 투여하다 보면 강도는 줄어든다고 하지만, 국소로 투여하는 약제다 보니 근육 주사 시 통증이 크다고 알려졌다"며 "약제가 병원에 들어오게 되면 주사 방법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