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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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트넙병 증상이 나타난 손./사진=OnlyMyHealth
세상에는 무수한 병이 있고, 심지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질환들도 있다. 어떤 질환은 전 세계 환자 수가 100명도 안 될 정도로 희귀하다. 헬스조선은 매주 한 편씩 [세상에 이런 병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믿기 힘들지만 실재하는 질환들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피부 발진이 일어나면 보통 피부병을 의심한다. 그런데, 체내 대사 문제 때문에 피부에도 영향을 받는 희귀질환이 있다. 온몸에 붉은 발진을 일으키는 ‘하르트넙병(Hartnup Disease)’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하르트넙병은 아미노산 대사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희귀질환이다. 이 질환은 5번 염색체 단완(동원체를 중심으로 짧은 부위)에 위치한 SLC6A19 유전자 변이에 의해 발병하며, 상염색체 열성으로 유전된다. SLC6A19 유전자는 필수 아미노산인 트립토판(Tryptophan)을 운반하는 과정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생산한다. 트립토판은 비타민 B군에 해당하는 나이아신(Niacin) 보충에 중요하다. 그런데, SLC6A19 유전자 변이가 발생하면 트립토판을 신장과 소장에서 흡수하지 못하고 배출시켜 체내 아미노산 부족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대장으로 유입된 과도한 양의 트립토판이 장내 세균에 의해 분해되면서 중추신경계에 독성 작용이 나타나고, 그로 인해 여러 증상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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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트넙병 때문에 다리에 발진이 퍼진 모습./사진=Medbullets
하르트넙병은 환자마자 증상이 다르게 나타나며, 아예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은 대부분 3~9세 사이에 처음 증상이 나타나지만, 드물게 성인이 된 후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주로 피부, 시력, 위장관계, 신경계 이상을 겪는다. 대표적으로 광과민증을 겪어 얼굴과 팔다리, 목덜미 등 햇빛에 노출되는 피부에 광과민성 발진이 생긴다. 두통, 피로, 설사가 나타나기도 한다. 심할 경우 갑작스러운 실조증이 발생하기도 하며,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나 말더듬증도 동반된다. 근육 운동을 조절하지 못해 근육 위축이나 일시적인 혀와 손의 경련이 나타나기도 한다. 일부 환자는 사물이 두 개로 보이는 복시나 윗눈꺼풀이 처지는 안검하수도 겪는다. 하르트넙병은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경련발작, 지능저하, 환각 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신속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하르트넙병은 환자의 아미노산 수치가 상승했고, 소변에서 ‘인디칸(Indican)’이 발견될 경우 의심한다. 인디칸은 트립토판이 부패해 생성된 ‘인돌’이 다시 변환된 것으로, 정상 소변에도 소량 함유돼 나온다. 그런데, 하르트넙병 환자들은 다량의 인디칸이 발견된다. 최근에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진단하는 경우가 많다. SLC6A19 유전자 변이가 관찰되고, 광과민증과 실조증 등이 나타난다면 하르트넙병을 진단한다.


하르트넙병은 환자들의 증상에 따라 치료법을 실시한다. 우선 환자들은 태양광선을 최대한 피해 피부 병변을 완화해야 한다. 근육 운동 이상이 있다면 재활 치료를 진행한다. 환자들은 식이요법으로 부족한 트립토판을 보충해야 한다. 닭고기, 연어, 곡물, 콩류 등 고단백 식이를 섭취해야 한다. 옥수수와 밀은 나이아신 생체 이용률을 낮추기 때문에 피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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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트넙병 때문에 얼굴과 다리에 증상이 나타난 모습./사진=Semantic Scholar
하르트넙병 환자 수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하르트넙병병은 남녀에게서 같은 비율로 발생하며, 소아기에 증상이 시작될 경우 성인기까지 계속 증상이 반복된다. 환자들은 대부분 식이요법과 꾸준한 관찰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소수의 환자에서 섬망 등 정신과적 증상이 관찰되기도 한다. 또, 햇빛에 반복적으로 노출돼 피부 병변이 계속 발생한다면 색소 침착을 남길 가능성이 있다. 드물게 경련발작이 심해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하르트넙병은 1956년에 영국 병리학자 D.N. 배런이 하르트넙 가문에서 8명 중 4명에게 이 질환이 나타난 것을 발견하면서 알려졌다. 배런은 세계적인 의학저널 ‘Lancet’에 사례를 보고하며 “피부 발진과 아미노산 결핍이 모두 관찰된 유전질환”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