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비만약, 치매·심혈관질환에도 효과? '만능 약' 취급받는 'GLP-1'… 왜?
정준엽 기자
입력 2024/07/30 18:45
◇비만, 만병의 근원… GLP-1 수용체, ‘뇌·심장·혈관’에도?
지난 4월 일라이 릴리는 자사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성분명 티르제파타이드)’가 수면 무호흡증 완화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했다. 5월에는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가 심혈관 질환 위험을 줄인다는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연구와 함께, 만성 신부전 환자의 사망 위험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는 미국 워싱턴대의대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난 7월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노보 노디스크의 또 다른 GLP-1 제제 '오젬픽(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이 치매를 포함한 퇴행성 질환 위험 감소와 금연 효과가 있다는 결과를 소개했다.
이러한 연구 결과가 보고되는 대표적인 이유는 비만과 다른 질환 간 상관관계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비만은 지방간염과 수면무호흡증, 동맥경화, 신부전 등 다양한 질환의 발병 위험을 높이는 인자로 지목된다. 같은 맥락에서 GLP-1 제제를 통해 비만 문제를 해결한다면 다른 질환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심장이나 일부 혈관, 혈관 내피세포에 GLP-1 수용체가 분포·활성화될 경우 심혈관질환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가설도 제기된다. 아직 그 기전이 완벽하게 밝혀지진 않았으나, 실제 GLP-1 활성화가 동맥경화와 같은 심혈관질환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여러 동물 실험을 통해 확인되기도 했다.
치매의 경우 인슐린 저항성과 연관이 있어 GLP-1 제제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인슐린 저항성이란 인슐린에 대한 우리 몸의 반응이 정상적인 기준보다 감소한 것을 말한다.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이용호 교수는 "당뇨병의 중요한 발병 기전 중 하나가 인슐린 저항성인데, 치매에서도 뇌의 인슐린 저항성이 발병 기전 중 하나라고 밝혀지고 있다"며 "이 때문에 GLP-1 제제가 치매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 100% 맹신은 금물… 투여 신중해야
다만 이들 연구를 100% 맹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GLP-1 관련 연구는 표본을 주의해서 봐야 한다. 연구가 과체중이나 성인 비만 환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비만하지 않은 당뇨병, 수면무호흡증, 치매 환자 등에게는 같은 결과를 적용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권에 따라 비만 기준이 다르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권의 경우 비만 기준이 체질량지수(BMI) 25인 반면, 서양권은 체질량지수 30 이상인 사람을 비만으로 분류한다. 때문에 연구 결과만 보고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후속 연구를 지켜보는 것이 좋다.
향후 국내에도 GLP-1 제제가 도입된다면 전문가 상담을 통해 신중히 투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GLP-1에 관한 수많은 긍정적인 연구 결과가 나오곤 있지만, 구토, 설사와 같이 잘 알려진 부작용은 물론, 당뇨망막증처럼 명확한 기전이 밝혀지지 않은 부작용에 관한 연구도 다수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용호 교수는 “GLP-1 제제를 무분별하게 사용해도 된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며 “전문가가 정말 필요한 환자들에게만 쓰고, 부작용을 고려해 적은 용량부터 천천히 투여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적응증 확장 나선 제약사들…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국내 제약·바이오사들이 GLP-1 제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적응증 확장은 필수다. 적응증이 많아질수록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 시장 또한 커지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비만약 개발은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으나, 적응증 확장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국내에는 적응증 확장에 필요한 규모의 자금을 갖춘 기업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키움증권 허혜민 애널리스트는 "설령 자금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패 위험을 감수하면서 자금을 모두 사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현재로서는 자금력이 있는 대형 제약사에 기술이전을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고 말했다.
적응증 확장을 위해서는 자금력뿐 아니라 경험, 시간 투자도 중요하다. 허혜민 애널리스트는 ”임상시험 설계를 위해 경험과 노하우가 중요하다”며 “특정 적응증에 GLP-1이 제대로 작용하는가에 대한 기본 연구가 필요한 만큼,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