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일반

[아미랑] 막내를 향한 엄마의 마지막 사랑

기고자=김태은 일산차병원 암 통합 힐링센터 교수

<암이 예술을 만나면>

이미지

그림
호스피스 병동에서 3개월째 입원중인 엄마를 돌보는 40대 초반의 여성이 계셨습니다. 환자분의 나이는 89세로, 보호자는 막내딸인 ‘엄마의 늦둥이’였습니다. 그 늦둥이 따님은 엄마 귀에 대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고 따뜻한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드리는 등 지극정성으로 어머니를 돌보셨습니다. 간병인이 오는 시간에는 집에 가서 본인의 가정을 챙기는 바쁜 일상을 3개월째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환자의 상태가 점점 악화됐습니다. 의사소통도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병동에 처음 입원할 때 환자분은 ‘나는 충분히 살았다. 후회가 없다.’ 라며 병을 수용하셨습니다. 그런데 “자기 삶도 바쁠 텐데 모든 것을 뒤로 하는 막내딸이 걱정”이라며 “내가 여기에 있는 동안 우리 막내가 나를 보낼 준비를 잘 하면 좋겠다”며 되레 딸을 걱정하셨습니다.

환자의 바람과는 달리 보호자는 항상 “우리 엄마 언제 좋아질까요?” “상태가 호전된 것 같지 않나요?”라며 어머니와의 사별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강하게 부정하는 상태였습니다.

따님은 미술치료는 한사코 거절하셨는데요. 그날따라 비가 내려서 계획했던 운동을 못 나가게 됐다면서 잠시 앉아서 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가슴 깊은 곳에 있는 서운함으로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언니 오빠들은 어쩜 전화로 그냥 안부만 묻는지. 마치 엄마 언제 돌아가시는 지를 묻는 것 같아서 정말 서운합니다.” 환자분께는 아들 셋, 딸 둘이 있는데 엄마를 돌보는 자신을 제외하고는 모두 60대 중반이 넘었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오빠와 언니들은 자신보다 엄마와 더 많은 것을 했고 엄마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서 이런 상황에 엄마를 자주 보러 오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습니다. 저는 보호자분의 이야기에서 두 가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거의 50살이 다 돼 자신을 낳으신 엄마와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아쉬움, 홀로 엄마를 돌보느라 소진된 마음입니다.

미술치료를 거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그런 작업을 하면 정말 엄마가 떠날 것 같아 무섭다고 했습니다. 아이처럼 눈물을 흘리고 계셨고, “엄마가 돌아가실까봐 너무 무섭다”는 말만 연신 내뱉으셨습니다. 딱 3년만 더 자신의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고요.

저는 앞으로 3년 동안의 어머니 생신 축하 카드를 미리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마치 엄마가 계속 건강히 살아계신 것처럼 2024년 생신카드, 2025년 생신카드, 2026년 생신카드를 꾸미고 사랑하는 마음을 글로 적어 넣자고 했습니다. 작업을 다 마치고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을 때, 막내따님은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 세 장의 카드는 병실 한 곳에 놓였습니다. 시간이 초월되는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나는 언제까지고 엄마를 사랑할거다’라는 마음이 상징적으로 보이는 생일카드였습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던 엄마와 딸의 연결고리가 바로 눈앞에 있는 듯했습니다.

제가 환자분 귀에 대고 “따님을 얼마만큼 큰 사랑으로 키우셨는지 알겠어요”라고 얘기하자, 보호자분은 “엄마의 사랑은 자기 삶의 자양분이 되었고,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란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라고 말하며 신이 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따님은 제게 조용히 “선생님과 만든 생신 축하 카드를 엄마 납골당에 넣어드리려고 해요”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조금 놀랐습니다. 엄마와의 사별 이후에 대해 스스로 언급하는 게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수용의 단계로 들어가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나흘 뒤, 환자분은 돌아가셨습니다. 따님은 많이 우셨지만 호스피스 병동에서 3개월간 엄마와 붙어 있으면서 둘만의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모든 시간은, 어쩌면 환자분이 막내딸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었을 겁니다.

언제까지고 귀여울 막내딸이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시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가 되도록 엄마가 기다려준 것만 같았습니다.

사랑은 분명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는 않습니다. 사랑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림으로, 글로 표현하면 사랑의 마음이 실재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주변에 가족과의 사별을 앞두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이 계시다면, 그분의 사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불안이 줄고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질 겁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의 하루가 평안하길 바랍니다.



✔ 외롭고 힘드시죠?
암 환자 지친 마음 달래는 힐링 편지부터, 극복한 이들의 노하우까지!
포털에서 '아미랑'을 검색하시면, 암 뉴스레터 무료로 보내드립니다.



헬스조선 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