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정부, 필수 의사들 ‘낙수 의사’ 취급… 숫자보다 시급한 건”

전종보 기자

지방 필수의료 담당 교수 5명 심층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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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의대 증원 배분 발표를 한 지난 20일 한 대학병원 수술실 앞에서 시민들이 한덕수 국무총리의 의대 증원 배분 관련 대국민 담화를 지켜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DB
정부가 의대 정원을 확대하고자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의사 수를 늘려 위기에 빠진 국내 필수 의료, 지역의료를 살리겠다는 의도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정작 필수 의료, 지역의료를 맡고 있는 대다수 의사들은 이번 정책을 두 팔 벌려 ‘막고’ 있다. 정부는 전체 의사 수를 늘림으로써 수도권 미용·성형 의사 외에 필수 의료, 지역의료까지 인력이 보충되는 이른바 ‘낙수 효과’를 기대하지만, 당사자들은 사명감 하나로 버텨온 자신들이 경쟁에서 도태된 ‘낙수 의사’ 취급을 받고 있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다. 전공의 사직 후 당직과 진료·수술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지방 병원 교수들에게 정부 의대 증원 정책, 지역·필수 의료 문제 해결방안 등에 대해 물었다. 흉부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신경과, 산부인과 교수 5명이 인터뷰에 참여했으며, 지난 <전공의 5인 인터뷰> 때와 마찬가지로 이름, 소속 등은 밝히지 않는다.

◇“정부, 근거 없는 공염불 남발… 총장 증원 요청? 본인들 업적만 생각”
“수술하는 의사는 수술 전까지 환자의 검사결과들을 종합해 수술 계획을 세운다. 사람마다 해부학적 구조가 다르고 수술하면서 예기치 못한 상황들을 마주할 수 있기에 여러 변수와 대안까지 생각하고 수술을 진행한다. 한 명의 생명을 다룰 때도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는데, 정부 자료집은 5000만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정책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빈약한 계획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무 중인 곳의 상황은 어떤가?
응급의학과 A교수(이하 A교수):
전공의는 사직서를 제출했고, 교수는 1명이 주·야간 나눠서 근무하고 있다. 응급실 근무 의사가 수련의와 전공의 포함 17명에서 5명으로 줄었다. 적극적인 환자 수용이 어렵고 다른 진료과도 인력 부족으로 야간 입원이 불가능하다. 계속된 야간 근무로 인해 사직 생각도 해봤다.

소아청소년과 B교수(이하 B교수): 원내 전공의 90%,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100% 사직했다. 오래 전부터 예약된 환자나 급한 환자 외에는 외래 진료를 줄였다. 기존에 인턴·전공의들이 맡았던 CT 검사 동의서, 튜브 삽입, 심전도 측정 등 모든 업무를 교수들이 하는 것은 물론, 한 달 내내 야간 당직도 섰다. 주 80시간조차 교수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많은 필수의료 교수들은 이번 사태 전에도 24시간 콜을 받았다. 다들 지쳤다. (전공의 사직 후)한 달을 어떻게 버텼는지도 모르겠다.


흉부외과 C교수(이하 C교수): 원내 전공의 모두 사직한 상태다. 전공의가 없는 과는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이나, 전공의가 많았던 과들은 입원환자 수술, 시술 등에 차질을 빚고 있다. 정부는 브리핑 때마다 ‘어디에 지원하겠다’, ‘어떻게 개편하겠다’ 등 말이 많은데, 공염불 남발인 것 같다. 현 사태에 대한 해결방안은 모두 수도권병원, 국립대 병원을 위한 것이라서 지방사립대는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분위기다.

신경과 D교수(이하 D교수): 진료과 전공의 6명 모두 모두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나갔다. 부족한 인력으로 그럭저럭 운영되고 있지만 쉽지 않다. 과 특성상 중환자가 많다보니 남은 전문의들까지 병원을 떠나진 않을 것 같다.

산부인과 E교수(이하 E교수): 원내 전공의들 100% 사직서를 제출했다. 꼭 필요한 분만, 응급수술, 암 수술 등과 같이 당장 급한 수술 외에는 미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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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전공의 7000여명에 대해 면허 정지 등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발송한 지난 5일 한 대형 병원에 의료진이 걸어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DB
-사태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A교수: 소수 전공의가 필수과를 선택한 이유는 자신이 살린 환자를 보면서 느끼는 기쁨 때문이었다. 이득과 손해만 따졌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거다. 그런 전공의들 입장에서는 누린 것 없이 고생만 하다가 장래까지 어두워졌다고 느낄 수 있다. 지금도 답답한데 앞으로는 더 답이 없는 현실을 알게 된 거다.

C교수: 지금 젊은 세대는 자기만족과 노력에 대한 보상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현재 전공의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 앞으로 살아갈 30년을 준비하기 위해 인턴·전공의 기간 5년을 참았지만, 그들이 기대한 미래는 과도한 기대로 부정당했다. 어차피 부정당할 보상이라면 불필요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고 한시라도 빨리 전환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사직한 것 아닐까.

D교수: 개인적으로는 대한의사협회의 정책적 안목 부재가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모든 정권이 의대 증원을 추진했는데 의협은 무조건 반대만 했다. 정부의 대체적인 기조가 그랬다면 어느 정도가 적정선인지 끊임없이 대화·조율하고 증원에 대한 정부 지원을 끌어내는 전략을 구사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고 여태껏 모든 의협 지도부가 반대하다가 ‘2000명 증원’이라는 초강수를 얻어맞았다.

-증원에 반대하는 이유는?
A교수: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필수의료에 지원하지 않는 이유는 특정 진료과에 지원하기 위해, 또는 안전하게 수련하고 전공과 관계없이 개원하기 위함이다. 지역 의료의 경우 기본적으로 지방 생활이 수도권에 대한 비교우위가 거의 없고, 자본과 수요가 부족해 개인이 빚을 내서 개원하기엔 부담이 크다는 게 문제다. 이런 문제는 덮어두고 숫자만 늘리면 건강보험 재정이 유지되기 어렵다. 곧 건강보험 재정 적자가 시작되는데, 의사 수를 늘리면 개개인이 지급하는 비용이 감소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전체 의료비는 증가한다. 지금도 10월 정도면 의료보험 지급이 내년으로 밀린다. 이대로라면 지금 전공의들이 나중에 큰 피해를 볼 거다. 개인적으로는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AI 로봇 등 기술 발전으로 일반적인 의사에 대한 수요 또한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C교수: 정부는 ‘10년 뒤에는 의사 수가 부족해 증원이 없으면 필수의료패키지 정책을 성공시킬 수 없다’고 못박은 후 물러서지 않고 있다. 그러나 10년 뒤를 대비한다는 정부 시책의 자료집은 19페이지짜리 하나밖에 없고, 그 자료집에도 자세한 재원 마련 방안이나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대안은 자세히 나와 있지 않다. 매년 2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는데, 2조원이 1년 의료재정의 1% 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아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100%에서 101%가 된다 한들 얼마나 티가 날지 의문이다.


E교수: 필수의료의 문제점을 의대 증원만 하면 해결되는 것처럼 포장했다. 효과가 나타나려면 최소 10년이 걸리는데, 증원된 학생들이 의사가 된 후 필수의료 현장에서 일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건강보험 재정이 3~4배 들어가는데,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증원만 답인 것처럼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증원해야 할까?
A교수:
지방 의사를 증원해야 한다면 지역의사제(지역의사 특별전형으로 입학해 의사 면허를 취득한 후 특정 지역에서 10년간 의무 복무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게 방법이 될 수 있다. 얼마나 늘려야 할지는 기술발달과 수요를 연구한 뒤 결과에 따라야 한다.

B교수: 현재까지 자료들은 ‘증원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또는 ‘오히려 과잉이다. 줄여야 한다’ 등 서로 의견이 반대된다. 증원이 필요하다면 좀 더 객관적인 자료로 설득해주면 좋겠다. 의료계뿐 아니라 국민과 정부 모두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지금은 각 대학들이 당장 내년에 증원할 준비도 돼있지 않을 거다. 증원할거면 대학 시설, 인력 등을 먼저 지원하고 교육에 대한 준비가 된 상태에서 증원을 이야기하는 게 순서다.

C교수: 우리는 이미 서남의대와 관동의대처럼 부실 교육으로 의대가 없어지는 걸 목격했다.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학교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을 잘 파악해야 한다. 대학 총장들이 어마어마한 숫자의 증원을 신청한 것과 달리, 각 의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의대 학장들은 350명 이상일 경우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고 했다. 누구보다 현장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의대 학장들의 의견은 ‘같은 의사 무리’라는 이유로 묻히고, 학교 등록금이나 자신의 업적으로 삼을 수 있는 총장들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현 상황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E교수: 의약분업 당시 줄였던 350명을 늘리고, 이후 약 500명 내외로 추가 증원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된다. 특히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지역 인재를 늘리는 것에 동의한다. 향후 교육의 질 관리 또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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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후 대구 동성로에서 대구시의사회와 경북도의사회 소속 회원들이 정부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이 포함된 ‘의료개혁 4대 패키지 정책’ 추진을 비판하는 대시민 설명회를 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DB
◇“면허 정지한다는데 어느 교수가 제자 설득하나… 지금이라도 대화해야”
“‘돌아오지 않으면 면허를 정지시키겠다’, ‘면허정지 후에도 전공의 신분이다’, ‘개업하는 것을 법적으로 막겠다’고 이야기하고, ‘지방의료 살리겠다’면서 지방 소외지역 공보의를 차출해오는 모습 등은 정말 우리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이 맞나 싶다. 길게는 수십 년씩 일한 교수들이 직장을 떠나겠다며 집단 사직까지 거론하는데, 일단 멈춘 뒤 현장에서 일하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상황이 장기화되는 것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큰데?
A교수:
정부가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를 계속 추진하면 수련병원 의사들은 과로에 시달리다 사직하고, 전공의는 면허가 정지될 것이다. 의대생은 유급할 것이며, 3차 병원 진료가 필요한 환자들은 진료가 연기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 필수의료·지역의료를 위한 제도 변경으로 인해 필수의료·지역의료 종사자들과 환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이다. 정부는 아예 새롭게 시작하려는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의료는 계속되지 않으면 피해가 발생한다. 장래를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

B교수: 상황이 장기화되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승자 없는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미 정부, 국민, 의료계 모두 패자다. 정부는 대안이라며 공보의를 파견했지만, 공보의가 자리를 비운 지방 소외지역 주민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의료계 내부 균열 조짐도 보이고, 단체든 개인이든 사직이 점차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E교수: 이대로라면 학생들은 대량 유급하고 전공의들은 연차 승급을 못한다. 새로운 인턴, 전공의 1년차가 들어오지 않아서 병원은 시스템이 무너질 것이며, 교수들이 번아웃돼 도미노처럼 의료 시스템의 붕괴될 수 있다.

-정부 입장이 강경하다.
B교수:
성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공감대를 형성해서 함께 논의해야 하는데 무슨 이유인지 논의를 피하는 모습이다. 정부가 증원을 결정한 후 병원과 의료진에게 내놓은 대책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C교수: 당장 2025년에 의대 정원이 증원되면 정부는 수험생, 학부모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10년 후 그들이 의사가 됐을 때는 현재 제기되는 의료비 증가, 건강보험 재정 고갈 등의 문제가 발생해도 지금 정책을 추진한 사람들은 은퇴하고 없다. 그렇기 때문에 뒤를 생각하지 않고 정책을 추진하는 거다.


E교수: 정부는 국민들에게 의사들을 설득하겠다고 이야기하는데, 실제로는 겁박해서 해결하는 방법만 이야기하고 있다. 얼마 전 환자들을 전세기에 태워 외국에서 진료 받게 하겠다고 말하는 걸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한 번이라도 외국에서 진료를 받아봤다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거다.

-의사에 대한 비판 여론을 어떻게 생각하나?
A교수:
의사들이 옳은 말을 해도 대부분 댓글은 반응이 좋지 않다. 그동안 국민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노력이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론이 좋지 않으니 정부도 대화·타협할 생각이 없을 거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의사들이 반성·개선해야 한다. 다만 공익 때문에 노동자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현실이 맞는지 모르겠다. 평소에는 관심을 끌기 어려우니 지금이라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B교수: 이번 사태 후 언론과 댓글에서 ‘지역병원에서 진료 받는 사람은 없다’, ‘누가 지역에서 치료 받나, 다 서울로 간다’, ‘지역은 낙후됐다’와 같은 취지의 글을 자주 봤다. 이로 인해 지역 거점병원에서 밤낮없이 진료에 임하고 있는 의사들이 상처받지 않았을까 우려된다. 나 역시 지역 거점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로서 허탈함과 상실감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의료진뿐 아니라 환자에게도 상처다. ‘아무도 안가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E교수: 현장에서 접하는 환자나 보호자들은 휴가도 반납하면서 어떻게든 환자들을 지키려는 교수들이 더 많다는 걸 안다고 생각한다. 다만 교수들이 모든 것을 다할 수 없으니 시간이 많이 걸리고 속도가 느리다는 지적은 인정한다.

-사태 해결을 위해 의료계, 정부 양측에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B교수:
의사는 정부에 재논의를 요청한 상태다. 적어도 교수진들은 그렇다. 하지만 정부는 ‘증원은 재논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논의의 장을 마련해줬으면 하지만,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와서 당장 그런 모습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문제는 교수들도 그때까지 버틸 수 없다는 점이다.

E교수: 정부는 정원 숫자에 대해 협의 대상이 아니라고만 하고, 그 다음 더 중요한 의료개혁에 대한 논의는 진행도 못하고 있다. 구속, 의사면허 정지, 타기관 취업 금지 등과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느 교수가 대화의 장에 나와서 책임 있는 말을 하고 전공의들의 복귀를 독려할 수 있겠나. 정부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자리를 만들고, 의사 단체들도 빨리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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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DB
◇“소송 위험 줄이고 수가 개선하는 정책 필요”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진료 후 병원비를 500원만 내고 나온 경험이 있을 거다. 하루에 100명 이상 봐야 직원 월급주고, 월세 낸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 의료분쟁까지 엮이면 폐업 수순으로 가는 게 당연할지 모른다. 점점 위축되고 기피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른 기피과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역 필수 의료 의사로서 의대 증원이 해결책이 될 거라고 보나?
A교수:
일본처럼 지역의사제를 도입하거나 미국처럼 지역별 면허를 발급하면 정원 확대가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당장은 수도권, 비수도권만 나눠도 괜찮을 것 같다. 다만 정책이 일관되게 유지될지는 의문이다. 그 전에 필수의료 의사들의 안전도 보장돼야 한다. 응급의학과의 경우 최소 한 번 이상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고 오는 게 일반적인 일이다. 경찰서만 다녀와도 후유증이 큰데 법원까지 가면 정말 힘들다. 보험이 해결책이 되려면 고의나 과실이 아닌 경우에 대한 법적 면책이 필요하다.

B교수: 이미 많은 사람이 분석한 것처럼 필수의료 문제는 증원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필수 의료 의사들은 낙수 의사들이 아니다. 나름 소신을 갖고 일하고 있다. 그 의사들이 소신 있게 진료할 수 있도록 법적 소송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 실제 정당한 치료과정 중 발생하는 많은 일들이 소아청소년과 의사에게는 공격받는 요소가 된다. 위험도가 높은 일을 할수록 의료진이 보호받는 구조가 돼야 하는데, 지금은 각 개인 의료진들이 떠안는 구조다. 그러다보니 위험도가 낮은 분야를 선택하는 거다. 그 의사들을 비난할 순 없다.

-실질적으로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B교수: 수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이상할 정도로 검사 비용이 치료비용보다 비싸다. 치료하지 않고 검사만 하는데 의료비가 더 비싸고, 고난도의 치료를 받으면 오히려 의료비가 더 낮아진다. 참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있지만, 기형적인 모습이다.

C교수: 증원보다 지방의료·필수의료에만 초점을 맞춘 더 명확한 개념의 정책이 필요하다.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가 문제라면 의대 정원 확대가 아닌, 노인의학을 키워서 1차 의료에서 고령 환자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필수 의료 의사들은 이 일을 ‘힘들고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힘들다는 건 몸이 많이 힘들다는 것이고, 위험하다는 것은 법적인 위험을 뜻한다. 힘든 것이야 일 자체가 그러기에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위험은 나라에서 정책으로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정책에 나온 내용들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을 참고해서 이런 식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지, 어떤 내용을 정확히 만들어 놓진 않았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정식 추진할 때 얼마든지 내용이 변하거나 효력이 없는 내용이 될 수 있다. 일각에서 나오는 우려처럼 보험회사만 좋은 일시키는 꼴이 될 가능성도 있다.


D교수: 응급환자를 보는 의료 인력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지역 거점병원에서 필수의료 전문 의료진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책적 가산 수가를 개발해야 한다. 단순히 검사 수가 등만 올리면 필수 의료진을 거점병원에 모을 수 없다. 필수 의료진 수요를 높여서 필수 의료진을 육성을 유도하고, 육성된 필수 의료진이 다른 곳으로 유출되지 않게 하는 수가 개발이 필요하다.

-지역 의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A교수:
외진 지역의 경우 보건소와 보건지소의 진료 기능을 높일 필요가 있다. 원격진료도 대안이 될 수 있고, 지역 의사제도 고려해야 한다.

C교수: 지역 의료의 최대 문제점은 그 병원을 유지할 수 있는 환자가 없다는 거다. 이미 많은 공공의료원은 적자 운영 중이고, 진주의료원은 폐업에 이르기까지 했다. 공공의료원조차 적자 때문에 문을 닫는데, 의사가 지방에 가려고 할까. 산모와 아이가 없는 곳에 산부인과, 소아과가 없는 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의사 수가 많다고 해서 지역으로 가는 게 아니다. 환자가 있어야 의사가 있다.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아닌, 족집게 정책이 필요하다.

E교수: 지역 의료 문제는 지방 인구 감소와 환자들의 수도권 대형병원 선호 현상의 영향이 크다. 이전에는 진료비에 차등을 둬서 환자가 2차 병원에 가서 진료를 본 후 해결되지 않으면 대학병원이나 3차 병원으로 갔는데, 지금은 쉽게 수도권 대형병원을 가고 실손보험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지방 병원 투자가 줄어들고 환자가 계속 감소하는 악순환이 형성된 것 같다. 이런 의료전달체계를 바로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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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의대별 정원 배정 결과가 발표된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의대 전문 홍보문이 붙어 있다. / 사진=연합뉴스DB
-정부,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A교수:
의사들이 잘못한 게 많아서 죄송하다. 그러나 이대로 가면 이국종 교수 같은 의사나 갈 곳 없는 소수의 의사만 지방 필수의료진으로 남게 된다.

B교수: 후배 교수 없이 정년을 맞는 교수들이 많은 것만 봐도 이미 매우 늦었다. 지금이라도 필수적인, 생명과 직결된 과들이 ‘기피과’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 의사는 국민의 적이 아니다.

C교수: 수련을 받는 전공의라면 필수과, 비필수과를 떠나서 타인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한번이라도 경험한 사람들이기에 그 무게를 모르지 않는다. 그런 그들의 허탈함을 이해해달라고 하지 않겠으나, 악마화하고 비난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그들은 잘못된 의료정책의 희생양이고, 수련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아 헐값에 부려졌던 사람들이다.


D교수: 이번 주에만 병원 근무시간이 100시간이 넘어가고 있다. 지금까지는 전공의 수련과정에서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근무시간을 버틴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중증응급의료가 유지됐다. 그러나 이런 희생을 강요하는 분위기에서는 후속 세대 그 누구도 필수의료를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

E교수: 15년 전 지역 병원에 온 후 시스템도 인력·시설도 없는 곳에서 버티며 여기까지 왔다. 잘 다져놓으면 후배들이 지역 환자들에게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겠다 싶어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생각으로 괴롭고 후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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