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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울렁증은 ‘사회공포증’의 한 종류로, 이성 앞에서 맥박이 빨라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등 불안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유독 이성 앞에만 서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손끝이 덜덜 떨리는 사람들이 있다. 소개팅에 나가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도, 머릿속이 하얘져 엉뚱한 말로 분위기를 망치기 일쑤다. ‘이성울렁증’이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특히 연애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일명 ‘모태솔로’인 이들에게 이성울렁증이 나타나기 쉽다.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물론 있다. 다만,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기며 불안장애나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사회공포증의 일종, 이성 경험 부족이 원인
이성울렁증은 정신과적 질환인 ‘사회공포증(Social phobia)’의 한 종류다. 사회공포증은 당혹감을 줄 수 있는 특정 사회적 상황을 지속적으로 두려워하고 피하려 하거나, 맞닥뜨리면 즉각적인 불안 반응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한림대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병철 교수는 “흔히 공연이나 발표를 할 때 불안하고 긴장되며 자연스럽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회공포증이 나타나는데, 이성 앞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불안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며 “사회공포증이 정신과 질환 중 유병률이 가장 높은데 실제로 치료받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이성울렁증이 있으면 이성의 시선 앞에서 행동해야 할 때 맥박이 빨라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떨리고, 입이 마르는 등 불안 증상이 나타난다. 자연스러웠던 손동작과 발음, 시선 등에도 문제가 생겨 평소보다 부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이성울렁증의 주원인은 아무래도 경험 부족이다. 발표 경험이 없는 사람이 낯선 곳에서 처음 발표를 할 때 덜덜 떠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병철 교수는 “특히 남중-남고-군대처럼 남초 혹은 여초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 연애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성울렁증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5월 채널A 예능 프로그램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는 ENA, SBS 플러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나는 솔로' 12기에 출연한 모태솔로 광수와 영수가 이성울렁증 진단을 받기도 했다. 이병철 교수는 “특히 최근에는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았던 이전과 달리, 사회적·감정적 교류가 많이 없어지면서 이성울렁증이 있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이성울렁증인지 알고 싶다면 이성울렁증 진단 테스트를 통해 점검해볼 수 있다. ▲이성을 만날 수 없는 남초 혹은 여초 환경에서 성장했다 ▲외모에 자신감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성과 단둘이 밥을 먹는 게 긴장된다 ▲이성과 눈을 제대로 마주치기가 힘들다 ▲이성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게 어렵다 ▲지나치게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이성에게 심하게 놀림당했던 적이 있다. 이 7가지 중 4가지 이상에 해당하면 이성울렁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비현실적인 사랑에 대한 고정관념 깨고 마음가짐 바꿔야
이성울렁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인드컨트롤이 가장 중요하다. 이성 앞에서 긴장되고 부자연스러운 행동은 남녀관계에 대한 무거운 마음가짐에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연애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비현실적인 사랑을 접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만날 때 ‘무조건 결혼을 해야 한다’ ‘서로 전적으로 헌신하는 것이 사랑이다’ ‘헤어지면 배신하는 거다’는 고정관념을 갖기 쉽다. 이병철 교수는 “처음부터 이렇게 심각한 목표를 그리다 보면 부담스러워지고, 자신을 자꾸 경직되게 해 결국 관계를 형성해나갈 수 없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를 몇 번 경험하다 보면 두려움이 커져 또 거절당할까 긴장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하지만 사람을 만난다는 건 드라마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가장 불확실한 일이다. 자신의 감정과 믿음을 가지고 가는 것뿐이다. 이병철 교수는 “남녀가 꼭 정해진 길을 가는 게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한다”며 “그냥 잠시 여행을 가는 중에 방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나란히 길을 가다가, 길이 다르면 자연스럽게 헤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마음가짐을 바꿔 이성을 만날 기회를 찾다 보면 이전보다 부담이 덜해져 덜 긴장되고, 만남과 이별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들 수 있다.

그럼에도 이성을 만날 때 불안함이 계속된다면 정신과에서는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시행할 수 있다. 사회공포증의 약물치료로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나 항불안제가 사용된다. 인지행동치료는 실제 불안함을 느끼는 상황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 노출시키는 치료로, 불안·두려움을 줄여주고 자신감을 실어주며 상황에 적응시키는 훈련이다. 이병철 교수는 “계속 환경을 피하다 보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중요한 자리에서 울렁증이 생길 수 있다”며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서 많이 경험해보고 숙달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