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의학과

"수 만개 의료장비 척척 수리... 병원 안 '맥가이버'로 불립니다"

전종보 기자

[우리 병원 언성히어로] ① 고려대 구로병원 김용호 의공기사

스포츠 뉴스 기사를 읽다보면 ‘언성히어로’라는 단어가 자주 나옵니다. 주로 경기에서 돋보이진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며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들을 이렇게 부르곤 합니다. 언성히어로(unsung hero)는 우리말로 ‘보이지 않는 영웅’을 뜻합니다. 사회 곳곳에는 우리가 모르는 언성히어로들이 많습니다. 병원도 마찬가집니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무사히 진료 받을 수 있도록, 의사들이 환자를 잘 진료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각자 위치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 병원 언성히어로’는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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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구로병원 김용호 의공기사가 의공실에서 의료기기를 수리하고 있다./사진= 고려대 구로병원 제공
한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의료 현장에서 장비의 정상 작동은 변수가 아닌 상수다. 생과 사를 오가는 중환자실, 수술실 등에서 장비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긴박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늘 그렇듯 당연하지 않은 걸 당연하게 만드는 데는 많은 이들의 노고가 들어간다. ‘의공기사’도 그들 중 하나다. 병원에서는 작은 수술 도구부터 환자들이 사용하는 휠체어, 침대, 첨단 검사·수술 장비 등 모든 의료 기재·장비가 의공기사의 손을 거친다. 온갖 고치는 기술에 능하다보니 병원 내부에서는 이들을 ‘병원 안 맥가이버’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려대 구로병원 김용호 의공기사는 “전기적·기계적인 부분은 물론, 소프트웨어적 문제도 점검하고 수리한다”며 “의공기사는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만 개 의료 기재·장비 관리… 수술방 긴급 출동도
국내 상급종합병원에는 한 곳당 수만 개에 달하는 의료기재와 장비가 들어서있다. 김용호 의공기사가 근무 중인 고려대 구로병원의 경우 현재 약 3만5000개 이상 의료기재·장비를 사용 중이며, 이를 모두 의공실에서 1차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대다수 기재·장비는 의공기사가 직접 수리·점검하고, 자체 수리가 불가능한 기재·장비는 외부 업체에 수리를 맡긴다. 외부 수리 의뢰와 확인, 재고 관리, 의료 기기 폐기, 유지·보수 계약, 의료진 대상 관리·사용법 교육 또한 의공기사의 업무다. 김용호 의공기사는 “망치나 드라이버만 들고 뚝딱 수리하는 게 아닌, 통신, 신호 전송 문제와 소프트웨어 문제까지 모두 점검하고 수리해야 한다”며 “과거와 달리 기계적·전기적 수리뿐 아니라 네트워크 통신 점검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물품이 고장 나면 모니터, 수액 주입기기 등은 의료진이 의공실을 찾아가 수리를 맡길 수 있지만, 내시경 장비나 소독기, 세척기, 로봇 수술기 등은 이동이 어려워 의공기사가 직접 방문해 수리해야 한다. 수술 중 갑자기 화면이 먹통이 되거나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등 수술방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의공기사가 긴급하게 현장으로 출동해야 할 수도 있다. 김용호 의공기사 역시 과거 약 3년 간 수술방을 전담한 경험이 있다. 그는 “잘못하면 의료진에게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수술방에 들어갈 때는 아무래도 더 불안하고 긴장된다”며 “그럼에도 수술은 1분 1초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불안함을 무릅쓰고 최대한 빨리 들어가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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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의공기사가 출동할 때 쓰는 가방. 일명 ‘맥가이버 가방’/사진= 고려대 구로병원 제공
◇의공학 전공하며 기초 의학 공부… “현장에서 큰 도움”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공기사는 대부분 의공학과 출신이다. 김용호 의공기사도 마찬가지다. 평소 의학과 기기 조립·설정 등 공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자연스럽게 의공학에 관심을 갖게 됐고, 대학에 진학할 때도 의공학과를 선택했다. 김 의공기사는 “의학과 공학이 접목된 게 의공학이더라”며 “학교에서 프로그래밍과 전기·전자 외에 인체 해부학, 생리학 등에 대한 수업을 들었고, 관련 공부를 하면서 졸업 후 의공기사 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의공학과 학생들은 전기·전자학 등과 함께 의과대학 교수가 진행하는 의학 관련 수업을 듣는다. 의공기사는 사람의 몸에 직접적으로 사용되는 특수한 기기·장비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김용호 의공기사는 “의학 수업을 통해 우리 몸의 구조·기전 등과 함께, 특정 기기가 인체에 사용됐을 때 어떻게 작용하는지, 어떤 기전을 이용하는지 배우게 된다”며 “해부학, 생리학과 같은 기초 의학을 배우지 않으면 의공학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공기사를 준비 중인 후배들에게도 “지금 배우는 프로그래밍이나 전기·전자회로 등이 의학과 연관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현장에서 문제 해결 능력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비싼 차 관리 안 하면 소용없어… 의료기기도 마찬가지”
김용호 의공기사는 올해로 9년 째 의공기사로 일하고 있다. 그에게 ‘9년 간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을 묻자 다시 한 번 수술방 이야기를 꺼냈다. 김용호 의공기사는 “수술용 현미경이 갑자기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었다”며 “긴급하게 수술실을 비집고 들어가 수리를 끝내고 나오는데 등 뒤로 모든 의료진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 뿌듯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일 할 때 ‘안전성’과 ‘신속성’에 중점을 둔다. 의료기재·장비가 잘못 작동됐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 의공기사는 “의료진은 기기에서 확인한 값을 토대로 판단을 내린다”며 “기기 오류로 측정값이 잘못 나오면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최대한 면밀하게 점검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기 부족으로 진료에 차질이 생기지 않으려면 정확하면서도 신속하게 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호 의공기사는 계속해서 다양한 의공학 기술들이 개발·도입되고 있는 만큼, 의공기사 업무와 함께 관련 기술과 지식을 기르는 일에도 매진할 계획이다. 한편으로는 의공기사로서 기재·장비 구매부터 관리·점검, 폐기까지 전 과정을 담당하면서 원내 기기들의 전 주기를 관리하고 싶은 바람도 있다. 끝으로 그는 “좋은 차를 관리하지 않으면 오래 탈 수 없듯, 좋은 의료기기도 의공기사들이 관심을 갖고 열심히 유지·관리해야 오랫동안 잘 사용될 수 있다”며 “앞으로도 안전한 의료기기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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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구로병원 김용호 의공기사/사진= 고려대 구로병원 제공
<4담: 네 가지 담지 못한 이야기>
1, 병원에서 가장 많이 고장 나는 물건은 뭘까? 김용호 의공기사에게 묻자 “특정하기 쉽지 않지만, 환자 감시장치(모니터)와 수액주입기기 등의 고장이 많이 접수되는 편이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가장 많이 사용되고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기 때문이다.

2. 대학병원 취재를 가보면 ‘미로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만큼 길이 복잡하다. 김용호 의공기사와 함께라면 길을 잃을 걱정은 없다. 기재·장비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본 덕에 내부 지리를 훤히 꿰고 있다.


3. 위와 같은 이유로 김용호 의공기사는 병원에서 발이 가장 넓은 사람 중 한 명이다. 실제로 사진 촬영을 위해 이동할 때마다 병원 곳곳에서 병원 직원, 의료진 등과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4. 김용호 의공기사는 ‘내가 수리한 기기가 내 가족에게 사용된다’는 마음가짐으로 기기를 고친다고 한다. 그런데 병원에서 일하다보니 생각보다 가족이 자주 와서, 수리한 기기가 실제로 가족에게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자의든 타의든 마음가짐이 지켜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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